두려움

멈추는 용기, 혹은 나아가는 용기

by 온새미로

두려움은 나를 멈춰 세운다.

그건 나쁜 일만은 아니다.

때로는 앞으로 달려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숨을 고르게 하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두려움을 감정 중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상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는 말 앞에 붙는 수많은 가능성들.

혹시 실패하면 어떡하지,

혹시 다 떠나면 어떡하지,

혹시 나만 이렇게 뒤쳐지면...


그 수많은 가능성들 마음속에서 자라며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내가 '무언가를 정말 바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삶이 진지해졌다는 신호다


어릴 적에는 두려움을 느낄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미끄럼틀이 무서워도 친구들이 먼저 내려가면 따라갔고,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도 금방 웃으며 대화할 수 있었다.

세상은 아직 낯설었지만,

그 낯섦이 곧 설렘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은 더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 속에 두려움의 무게가 더해졌다.


이젠 어떤 선택을 하기 전,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먼저 떠올린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움은 내 삶이 더 '진지해졌다는 신호'다.

더는 대충 살고 싶지 않고,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난다.


두려움 속에는 내가 가장 간절한 것이 숨어 있다


나는 어떤 선택 앞에서 가장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할 때,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익숙한 것을 벗어나야 할 때.


그 두려움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항상 '간절함'이 있다.

거절당할까 봐 무서운 건

그만큼 그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이고,

실패가 두려운 건

정말 그 일을 잘 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그래서 무조건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다.

그 안에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가 진심을 다하는 대상,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나 자신이 숨어 있다.


두려움 앞에 서면 나는 작아진다


두려움은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고,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먼저 심는다.


나는 시험을 보기 전에도,

면접을 앞두고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기 전에도

수없이 마음속에서 무너졌다.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괜히 나섰다가 더 아플 수도 있어."


그 말들은 다른 누군가가 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끊임없이 내게 건넨 목소리였다.


멈추는 것도 용기다


우리는 흔히 용기를 '나아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멈추는 것'이 진짜 용기일 때도 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기 위해 멈추는 일.


모든 걸 해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두려움 앞에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시간은

결코 도망이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주저앉은 나를 향해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해."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줘야 했다.


두려움을 껴안는 연습


요즘 나는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감정을 '껴안으려' 노력한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마음속으로 말한다.


"그래, 무서울 수 있어."

"그만큼 이게 너에게 중요한 일이니까."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이런 말들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내 안의 불안을 많이 다독여 준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크게 외치는 게 아니라,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 나를 이해하는 시간.


두려움이 만들어주는 고요한 집중


두려움은 때로

나를 가장 정직하게 만든다.


어떤 일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나는 그 일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고,

그만큼 더 진지하게 준비하게 된다.


그래서 두려움은

집중과 몰입의 문을 여는 감정이 되기도 한다.

그 감정 덕분에 나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한다.


결국 두려움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조용한 연료'같은 감정이다.


두려움은 혼자일 때 더 커진다


두려움은 대개

혼자일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는 순간,

그 감정은 마음 한구석에서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느낄 때일수록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려 한다.


"사실 나 좀 무서워."

이 한마디를 꺼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말 이후에

"나도 그래"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두려움을 절반으로 나눠준다.


두려움은

공유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공유가

우리를 조금씩 더 단단하게 만든다.


두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의미


두려움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토록 삶을 깊이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 확신으로만 이루어진 삶이라면

그건 어쩌면 살아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두려움은 내게 계속 묻는다.

"정말 이걸 원하는가?"

"정말 이 사람을 원하는가?"

"정말 이 길을 가고 싶은가?"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방해가 아니라,

방향을 묻는 나침반이다.


나는 이제 두려움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 안에서 불안을 찾는 대신

나를 지키는 울타리를 세우는 것처럼.


두려움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 어둠을 지나고 나면

언제나 한 줄기 빛이 따라온다.

그건 내가 나를 견디며

내 안에 용기를 만들어낸 증거다.


멈추는 것도,

다시 나아가는 것도

결국 두려움을 껴안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두려움을 껴안은 채

조금씩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전 04화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