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로서의 취약성에 대한 생각
절박함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일까 마약일까?
절박함이 예술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 본다.
창작의 순간마다 나를 엄습하는 이 감정은 때론 영감의 원천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를 소진시키는 마약과도 같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의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 선택의 자유와 그로 인한 책임감은 절박함을 동반한다. 이러한 절박함은 내 존재를 확인하고, 진정한 자아를 표현하려는 강렬한 욕구를 자극한다.
절박함이 없다면 나의 글과 음악은 그 진솔함을 잃고 말 것 같다. 이 절박함은 나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어, 더 깊이 있고 진실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절박함이 과연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니체는 절박함이 예술가를 소모시키고, 창작의 순수한 즐거움을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절박함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창작 과정에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이는 결국 창의성을 억제하게 될 수 있다.
내 안의 절박함이 창작의 자유를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절박함은 때때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하며, 이로 인한 무기력함은 내가 어떤 일을 하건 방해가 되기도 한다.
지속적인 절박함은 번아웃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그나마 약에 의지해 버티고 있는 나의 정신 건강에 심각함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절박함 없이 진정한 창작이 가능할까?
절박함이 없이 지내는 상태에서의 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잔잔함에 취해 낙관적인 행동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절박함은 나를 몰아붙여 더 솔직하게 내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이를 통해 작품의 진정성을 높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절박함이 내게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이 절박함이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까 두렵다.
절박함 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한없이 깊은 우울이다. 이 우울함은 나를 사로잡고, 창작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나를 소진시키는 양면성을 가진다.
절박함과 우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나는 이 절박함 속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동시에 이 절박함이 없다면 나의 노래는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두려움도 함께 한다. 이 두려움은 나를 끊임없이 방황하게 만들고, 내면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절박함이 창작의 원동력인 동시에 파멸의 씨앗이라면,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절박함이 주는 강렬한 감정은 때때로 나를 고양시키지만, 그로 인해 느끼는 소진감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전업 예술가가 아닌 나는 그저 절박함과의 공존하며, 지금의 삶을 유지하면 되는 걸까?
내가 느끼는 절박함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불안과는 다르다.
그것은 나의 존재의식을 자극하고, 나를 끊임없이 창작의 갈증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절박함이 나를 파멸로 이끌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한다.
나는 이 절박함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내려하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 그런 나의 진실함을 담으려 애쓴다.
절박함은 나에게 창작의 원천이자, 동시에 소진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매번 이런 같은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되풀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때론 웃고 때론 떠들고 때론 진지하고 때론 나를 경멸하며 울부짖는다.
분명 절박함은 예술을 하는 모든 이에게 양면성을 지닌 존재다.
절박함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노래쟁이로서 나는 이 불안한 감정 속에서 절박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방황한다.
절박함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