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의 유예
2025년이라는 이 치열했던 한 해도 이제 12일밖에 안 남았네. 올 한 해 나는 왜 그렇게 차가운 숫자와 싸우며 살았을까?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상 속에 이미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지.
내가 원해서 이 삭막한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태어난 건 아니지만, 일단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었어. 내 안의 '연민'이라는 마음의 울림이 나를 너무 크게 흔들었거든.
기관들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쌈짓돈을 노리는 꼴을 보며, 나는 그들의 아픔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져서 외면할 수가 없었어. 마음속에 거절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이 생긴 기분이었지.
사르트르는 '사람은 정해진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어.
칼럼니스트나 분석가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느 한구석에도 없이 태어난 나였지만, 내 속의 작은 외침들을 따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매일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쪽을 선택했지.
칸트가 말했던 '올바르게 살기 위해선 신앙이라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사상은 내 안에서 '의무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어.
하지만 그렇게 꾸며진 내 모습에 스스로 떠밀리다 보니, 정작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 내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거닐어야 할 마음의 숲을 잊고 말았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속엔 잡초만 무성한 오늘과 마주하게 된 거야. 그 지도를 들고 전쟁터만 누비느라 정작 평화로운 '루미의 언덕'을 멀리 치워두고 살았던 것 같아.
나는 이제 다시 그 언덕, 그 들판으로 돌아가려 해.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 잘랄루딘 루미: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규칙보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을 소중히 여겼던 사상가.
"나 혼자라면 벌써 포기했겠지만,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일어난다"는 이 아픈 다짐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어.
이제 남은 12일은 그 무거운 갑옷을 좀 내려놓으려 해. 알지노믹스 같은 가짜 숫자들이 부리는 배짱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내 곁에 있는 실재하는 온기들에 집중하고 싶어.
딱딱한 칼럼 대신 평화로운 음악을 들으며, 다시 예전의 말랑말랑한 나로 돌아가고 싶네.
2025년의 끝은 차가운 데이터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따뜻한 숨소리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가 저 루미의 들판에서 편히 쉬는 남은 2025년의 끝자락이 되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