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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Jul 08. 2019

나를 살린 음식, 꿩 백숙

그건, 아빠의 사랑이었다.


추운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의 2월.

아직 따뜻한 봄은 아니었고, 여전히 추운 겨울도 아닌 어느 날.

아빠는 언니들이 다니던 중학교의 뒷산을 사셨다. 아마도 작은 아버지와 큰고모의 투자를 받아 사셨던 모양이다. 먼 훗날, 그 산을 정리하면서 받은 돈 문제로 형제들끼리 엄청 싸우고 감정이 상해 의절할 뻔했으니.


이제 막 11살이 된 나와 13살이 된 언니는 이른 아침부터 아빠를 따라나섰다. 아빠의 경운기는 털털 거리며 중학교 뒷 산으로 향했다. 경운기가 멈춘 곳은 산 중턱 부근의 넓은 밭이었다. 나무와 풀로 우거진 숲과 다르게, 그곳에는 흙과 돌멩이가 있었다.

아빠는 나와 언니에게 바케스(bucket)와 장갑을 주셨다. 우리는 손바닥 부분이 빨간 면장갑을 끼고 그 밭에 앉아 돌멩이를 주웠다. 바케스에 돌멩이를 담아 밭 가장자리로 옮겼다. 우리는 유자 밭을 만드는

중이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아직 북풍의 바람이 남아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니 다리와 허리가 아팠다.

엄마가 새참을 가져오셨다. 우린 그곳에서 점심을 대충 먹고 다시 돌을 골라 담았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 후에야 그 일은 끝이 났다.


다음 날, 학교에서 몸이 아팠다. 머리가 너무 아파 얼굴을 들고 있기 힘들었다. 겨우겨우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난 조퇴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 방에 누워있었다.

들에서 일을 하시다 점심을 드시러 온 아빠는 방에 누워있던 나를 보고는 화를 내셨다.

“그거 아프다고 집에 와? 얼른 다시 학교에 가지 못해?”

난 한 마디도 못하고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학교로 옮겼다.  다시 학교에 간 난, 책상에 엎드려 오후 수업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난 일어나지 못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머리를 들지도,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너무 심한 고열에 코피가 터져 베개를 빨갛게 물들였다. 난 눈을 뜨지도 못했다.

얼굴을 제외한 몸에 발진이 생기기 시작했다. 홍역이었다.

난 방 안에 격리되어 누워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렇게 누워있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날 위해 엄마는 베지밀을 사 오셨다. 그거라도 먹고 생명을 유지하길 바라셨으리라. 하지만 난 그 베지밀을 동생에게 양보했다. 아빠가 지어 온 한약도 동생에게 먹였다.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집 뒤로는 산이 있었다. 뒷산에는 여러 동물들과 새들이 살았다. 아빠는 어느 날 그 뒷산으로 향하셨다.


홍역에 걸린 지 5일째 되던 날. 엄마는 날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 죽 한 그릇을 내밀었다.

“이거 아빠가 잡아온 꿩으로 만든 거야. 이거 먹으면

낫는단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먹고 어여 정신 차리자.”

엄마는 아빠가 뒷산에서 잡아온 꿩으로 정성스레 백숙을 만들었다. 난 입맛이 없었지만 엄마, 아빠가 보고 있었기에 꾸역꾸역 죽을 입에 넣었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꿩 백숙을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홍역이 나을 때가 되어서인지 난 이틀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힘든 농사일로 매일이 고단했던 아빠.

그런 아빠가 무섭기만 했던 넷째 딸.

애정스런 말도, 사랑의 표현도 전혀 없었던 우리 사이에 꿩 백숙은 하나의 증거였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증거.


그땐 몰랐다. 여전히 아빠가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아빠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고단한 하루는 바로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홍역이 나을 때가 되어서인지, 꿩 백숙을 먹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빠가 잡고, 엄마가 끓인 꿩 백숙을 먹고 살아났다고 믿고 있다.


오늘 저녁, 꿩 백숙을 할 순 없지만 닭 한 마리 사다가 보글보글 끓여 내 가족들을 위해 백숙을 만들어야겠다. 사랑과 정성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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