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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Sep 20. 2019

2. 경상도 남자의 전라도 가족 되기

불편한 마음은 그의 몫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라도 땅을 밟게 된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런 시골이 있었어?”

“이런 시골이라니? 왜?”

“아니, 난 강원도 산골만 이런 줄 알았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 또 있는 줄 몰랐어.”


내 고향 고흥은, 조선시대 때는 유배지였고, 일제시대 때는 일본 놈들이 바다를 건너 들어온 곳이었고, 독재정권 시대 때는 소외받는 지역이었다. 개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동네 앞의 바다를 매워 간척사업을 한 후, 논을 만든 게 전부이다.

어렸을 적에는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버스만 타면 심하게 덜컹덜컹거렸다. 지금은 도로가 잘 닦아져 있지만, 길은 여전히 꼬불꼬불해서 자칫 한눈팔다간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발전이 거의 안 된 시골이기에 여전히 논에는 도롱뇽이 살고, 학이 날아다니며,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밤이 되면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다. 북두칠성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내 고향이다.


그는 내 고향이 시골이라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진짜 경상도랑 다르다. 경상도는 여기저기 개발 안된 곳이 없는데. 그런데 오히려 이런 시골이 더 좋은 것 같아. 완전 자연이잖아.”

그는 오히려 내 고향의 시골스러운 모습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은 귀농을 생각하기까지 한다.



나에게는 언니가 세 명이 있고 형부가 세 명이 있다. 큰 형부는 전라도 화순, 작은 형부는 전라도 무안, 막내 형부도 전라도 무안.

막내 사위인 그만 유일하게 경상도 사람이다.


막내 형부는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막내 사위 노릇을 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막내 사위 노릇을  벗어날 줄 알았는데, 하필 아랫 동서가 전혀 막내 사위 같지 않은 인물이 들어왔다.. 조용하고, 말도 별로 없고 무뚝뚝한 경상도 막내 사위.

형부는 여전히 막냇사위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들은 모여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이면 언니 집에 모여 놀고, 틈만 나면 만나고, 휴가 때도 함께 놀러를 간다. 그런데 우리들이 모이는 곳은 장소와 상관없이 전라도가 되어버린다.

이미 서울에 산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가족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오는 것이다. 서울 큰언니 집에 모여도, 강원도 펜션으로 놀러를 가도, 심지어 방콕 가족여행을 가도 그곳은 전라도가 되어버렸다.

“아따, 큰성님 한잔 해.”

“아이고 동상도 한잔 해.”

“아따 참말로.”

“동생아 거시기, 그것 좀 가져온나.”

“거시기, 이거?”

“응 그거.”


언니들은 여전히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큰언니는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권사님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할 때는 서울 사람처럼 말을 하다가도, 한 자리에 모였다 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만약 시골에서 엄마가 올라와 합류한 날에는 전라도 사투리 파티는 밤이 새도록 이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는 구석에 처박혀 앉아 있거나,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그러니 언니들이나 형부들이 보기에는 뭔가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다.

“야, 느그 신랑 뭐 불편한 거 아니여?”

“아니야. 냅 둬.”

“뭐야. 같이 만났으면 같이 놀아야지..”

“아, 쫌 거시기하다야.”


처음에 그는 이런 우리 집 분위기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힘들어하기까지 했다.


그는 형만 하나 있었고. 가족들이 모여도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진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다.

그저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그러는 것뿐이었다. 그는 사회성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나와는 말을 잘한다. 오히려 말이 많은 편이다. 그것도 아주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한다. 정치행정을 전공으로 했기 때문인지 정확한 개념과 사실에 근거해 말하는 그의 논리 앞에서 경험으로 이루어진 내 논리와 감정이 우선되어 나타나는 격앙된 내 목소리는 항상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생각의 말들을 쌓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말이 별로 없다가도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 농담을 잘하고, 웃기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냥 그의 성향이었다. 지극히 내향적인 그의 성향.


물속의 기름 한 방울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던 그는 어느새 전라도 가족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전라도 가족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져 말도 못 하던 그가 지금은 만나면 농담도 하고, 함께 떠들며 놀기도 한다.

재작년 엄마의 칠순 기념 태국 여행에서는 그가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는데, 영어가 서툰 언니들과 형부들을 대신해 통역을 하고, 가족들을 이끌기도 했다. 의외의 장소(해외)에서 적극적인 막내 제부의 모습을 처음 본 언니들은,

“나 오늘부터 제부 팬이야~”

“막내 제부 영어 하는 모습이 진짜 멋지다이.” 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전라도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갔고, 가족들도 경상도 막내 제부에게 익숙해져 갔다.




우리는 가끔  말이 없고 가끔은 말이 많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향적인 인간으로 살지만, 가끔은 적극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로 너무 달랐던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는  두 아이를 선물로 받았다. 아이들을 키우던 시간들은

그와 나의 내면까지도 모두 공개해야만 했던 시간이었고, 서로 몰랐던 과거의 상처를 들켰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나를, 나는 그를 이해했고, 익숙해졌고, 서로 닮아가게 되었다. 심지어 외모까지도.


“두 분이 닮았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는 얼굴이 길고 난 동그랗다. 그는 쌍꺼풀이 없고 난 진한 쌍꺼풀이 있다. 그는 코가 크고 난 표준이다. 그는 입술이 두껍고 난 얇다. 자세히 보면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말인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와 내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심지어 사진 속의 내 얼굴이 길어 보이기까지 했다. 뭐지? 정말 함께 살면 닮게 되는 것일까?


그와 내가 닮아 보인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나를 닮기도 했고 그를 닮기도 했다. 우리 둘 사이의 공통분모가 된 두 아이들은 그와 내가 닮아보이게 만들었다.

서로 닮아가는 것.

이게 가족인가 보다.

나는 더 이상 말 없는 경상도 가족들이 어색하지 않고, 그도 더 이상 말 많은 전라도 가족들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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