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5장. 평범한 일상도 특별해지는 쓰기의 날들

by 선량

거실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아들아이가 땀을 흘리며 소파에 앉았다. 배가 가려웠는지 옷 속으로 손을 넣고 박박 긁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엄마 나 몸에서 때가 나와.”

“헐……. 샤워 좀 해 제발.”

“나중에 할래.”

“지금 하면 안 될까?”

“지금은 더 놀고 싶어. 나중에 할게.”

아이는 다시 엉덩이를 들고 거실로 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씻는 걸 싫어한다. 추운 겨울엔 말할 것도 없고 땀이 나는 여름에도 씻기 싫어한다. 몸에서 냄새가 풀풀 날 때까지 씻지 않고 버티다가 잔소리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그때서야 주섬주섬 옷을 벗는다. 당연히 머리도 자주 감지 않는다. 이유는 귀찮아서라고 한다. 머리에 이 생긴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질 않는다. 사춘기가 되면 씻지 말라고 말려도 씻는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싶다.

목욕탕에 못 간 지 9년째가 되었다. 홍 군과 결혼하기 전 큰언니와 함께 다녀온 게 마지막 목욕탕 나들이였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목욕탕에 가보지 못했다.

백희나 작가님의 ‘장수탕 선녀님’ 그림책을 함께 읽다가 도대체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수영장처럼 보이는데 왜 옷을 다 벗고 있느냐며 궁금해했다. 대중목욕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말로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가보는 게 가장 좋은 일인데 인도에는 목욕탕이 없으니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인도의 일반 가정 집에는 욕조가 없다. 8년된 아기 욕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한번씩 아기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아이들을 푹 담가야 할 때가 있다. 물이 허리밖에 차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날이 있다. 바로 오늘처럼 때가 나오는 날이다.

어렸을 적 집에는 아주 큰 고무다라가 있었다. 12월이 되면 해창만에서 퍼 온 바닷물을 가득 붓고 백 포기쯤 되는 배추를 절였다. 1월 말이 되면 목욕통으로 변신했는데, 아궁이에 불일 집혀 물을 펄펄 끓인 후 다라에 부었다. 화상 입지 않을 정도로 맞춰진 그 물에 언니와 나, 동생이 들어갔다. 30분 정도 들어가 앉아 있으면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화상을 입진 않았지만 엄청나게 뜨거웠다. 동생 윤이는 뜨겁다고 엄살을 피우다 꼭 엄마한테 등짝을 맞았다. 엄마는 언니부터 차례로 때를 밀어주었다. 오랫동안 묵은 때는 지우개 가루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그렇게 통 목욕을 하고 나면 거칠었던 손등이 반질반질 해지고 얼굴에 폈던 버짐도 사라졌다.

요즘 들어 목욕탕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너무 하고 싶지만 하지 못 하는 일은 왜 더 간절해지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멍 하니 앉아 있는 일, 작은 목욕 의자에 앉아 여기저기 때를 미는 일, 냉탕에 들어가 놀다가 폭포수에 등을 내미는 일, 한증막에 들어가 숨이 막히기 직전까지 앉아있는 일, 요구르트 하나 사서 빨대 꽂아 쪽쪽 빨아 먹는 일. 이런 사소한 일들이 참 그립다.

9년 동안 때를 밀지 않으면 온몸이 때로 뒤덮일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 반대이다. 한 달에 한번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을 때는 규칙적으로 몸에 때가 생겼었다. 밀고 또 밀어도 때가 나왔다. 붉은 반점이 생길 때까지 밀 때도 있었다. 지금은 밀지 않아도 때가 별로 없다. 죽은 세포들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건 바디로션으로 충분히 없앨 수 있다. 때는 밀면 밀수록 더 생기는 것인가?

정말 하고 싶지만 하지 못 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독립출판이다. 한 번의 기획출판을 경험했다. 원고를 써서 투고한 후 계약을 하고 책을 출간했다. 출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두 번째 책을 준비하면서 여러 고민이 생겼다. 기획출판을 경험해 보았으니 또 다른 출판 경험을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해외에서 독립출판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독립출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출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만든 책이기 때문에 작가는 뿌듯하겠지만 퀄리티에 있어서는 떨어질 수 있다.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책은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필터링이 되지 않은 날것의 문장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 더 공감 가는 책이 되기도 한다. 다수의 독자에게 선택받진 못하겠지만 소수의 열성 독자들이 생길 수도 있다. 대형 서점에 전시되진 못하겠지만 독립출판물만 취급하는 마니아적인 서점에 전시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겠지만. 그걸 한번 해보고 싶다.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은 책, 필터링 되지 않은 날것의 문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

독자의 선택을 많이 받지 못한 책은 책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일까?

책을 한 번이라도 출간해본 사람이라면 절대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책 한 권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수고는 출산의 고통과 같다고 한다. 오죽하면 내 아이라고 표현할까? 작가의 고민과 수고가 고스란히 담긴 책은 그 존재로 가치가 있다. 모든 아이가 존재만으로 빛나는 것처럼.

목욕탕에 못 가는 대신 아기 욕조에 물을 담아 때를 미는 것처럼 독립출판은 못 할지라도 비슷한 것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써 놓아야 한다. 좋은 재료만 있다면 어떻게 조리해도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이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숙제이다)

아기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 아이들을 집어넣어야겠다. 몸을 불려 여기저기 묵은 때를 벗겨내야겠다. 정말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면, 지금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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