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같은 삶을 살기 위해

프롤로그 또는 다짐

by 선량

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용산역을 벗어났다. 등에는 노트북 가방이, 옆구리에는 에코백이 있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내 뒤를 따라 총총거리며 따라왔다. 아이들의 등에도 커다란 백팩이 하나씩 있었다.


용산역 바로 앞 택시 정거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맨 뒤로 가서 그 줄에 합류했다.

택시 여러 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길었던 줄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카카오”라고 써진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커다란 가방을 본 택시기사가 트렁크를 열었다. 기사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 도와주기 전에 20킬로쯤 되는 가방을 번쩍 들어 트렁크에 넣었다.

아이들은 이미 뒷좌석에 탄 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 ooo동 ooo 아파트요.”

“아이들하고 여행 다녀오시나 봐요. 짐이 많네요.”

“아…. 네….”


대답을 길게 하지 않은 의도를 금방 눈치챘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멀미가 심한 첫째 아이의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대게 한 후, “눈 감고 자.”라고 말했다.

곧이어 국회의사당과 육삼 빌딩이 보이고 한강이 보였다.


띠리링~

기사 아저씨의 전화벨이 울렸다.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 폰이었다.

“어이, 뭐해?”

“나? 운전 중이여. 자네는 잘 지내는가?”

“나야 뭐, 그저 그렇지. 자네는 어때?”

“나? 재미없어.”

“재미가 없다고?”

“잉, 사는 게 재미가 없네. 자네는 재밌는가? 아, 잠깐만….”

아저씨는 이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버튼을 눌렀다.


한참 동안 통화를 하던 기사 아저씨가 전화를 끊었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 는 아저씨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괜한 오지랖이 발동하고 말았다.


“아저씨, 저희는 곧 해외로 출국해요. 그래서 짐이 많아요. 친정에 있다가 비행기 타려고 이제 올라왔어요.”

“아, 그래요? 어쩐지 짐이 많더라니. 난 또 어디 여행 다녀오신 줄 알았죠. 어디로 가세요?”

“이탈리아로 가게 되었어요.”

“이탈리아요? 거기 너무 좋은데. 내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이탈리아만 며칠을 있었어요. 거기 어디냐, 로마도 진짜 멋있고 그 교황 사는 데 있잖아요? 바티칸? 거기도 진짜 멋지더구먼. 피사의 탑 있죠? 거기도 꼭 가봐요. 내가 프랑스부터 이탈리아로 해서 스위스까지 갔잖아요. 진짜 좋았는데….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허허허.”


아저씨는 우리가 내릴 때까지 에펠탑부터 이탈리아의 유명한 성당을 거쳐 스위스의 설산까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말하느라 바빴다.

조금 전까지 “사는 게 재미없다”라고 토로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 잘 만났네요. 진짜 좋겠어요. 가서 잘 사세요”

“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택시에서 내린 후 무거운 짐을 끌고 두 아이를 앞장 세워 언니 집으로 향했다.


삶이 여행과 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게 짐을 꾸리고,

누구를 만나든 가볍게 인사를 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나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이 또한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훨훨 어디든 떠난다면

삶이 조금 덜 무거울 것 같다.


하지만 그 끝에 남는 피로와 빨랫감도 여행의 한 단면이기에,

여행처럼 보이는 삶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이제,

짐을 싸고 푸는 일을,

그만 하고 싶다고 투덜대며,

나는 다시 짐을 싼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추억 어린 유럽 여행기를 떠올리며 불안한 마음 대신 기대감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