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학교에서 교양강의 과제로서 작성하고 제출한 글입니다. 비전문가이고 논리의 비약 등의 이유로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걸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19와 변화
2020년, 우리는 세계적 재앙을 마주쳤다. 초기에는 믿을만한 정보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않았고, 과장된 소문들도 많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큰 공포감을 가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구를 거듭해 신뢰할만한 정보들과 대응책들이 하나 둘 발표되면서 우리는 최근에 이르러 코로나19를 거의 정복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근 몇 년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개인이 사회와 둔 거리는 사회 전반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우리 개인의 마음, 정신이라는 측면에서도 피해갈 수 없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2월 한국리서치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우울 및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무려 49%나 됐다.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Maslow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욕구들, 이를테면 사회적 집단에 대한 소속감, 타인으로부터의 애정, 존중 등이 자아실현을 위해 꼭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라고 보기도 했다.
위 조사결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경험하면서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어떤 필요 관계에 의해서 형성된 인간관계가 아닌 ‘참 만남’ 관계의 사람들과의 거리두기는 큰 결핍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적어도 당장에는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이것들은 천천히 우리 자아를 좀먹고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겪은 변화
1. 불완전한 의사소통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겪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고 만나더라도 영상통화 혹은 마스크를 쓴 채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식사조차 마음 편치않은 만남을 가졌다. 의사소통에서 얼굴이 보인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Albert Mehrabian은 자신의 저서에서 많은 사람들이 Mehrabian 법칙이라고 부르는 이론을 제시했다. 상대방의 인상과 호감을 결정하는데 언어적인 뜻 그 자체보다 시각과 청각, 그중 특히 시각이 관여하는 비율이 높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의사소통은 청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외 오감을 전부 이용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은 의사소통에서 오감을 이용하기엔 제한된 환경이었다. 영상 통화에서는 시각과 청각만을 이용하고, 실제로 만나더라도 일부 시각 정보가 제외된 환경에서 의사소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화면 속’이나 ‘마스크’같은 소음들은 우리의 의사소통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가 갖는 일반적인 인간관계는 의사소통으로 상호작용하며 형성되는 관계인데, 이때 의사소통이 불완전하다면 서로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고 신뢰할 수도 없을 것이다.
‘거자일이소(去者日以疏)’라는 말이 있다. 헤어져 가는 자는 날로 멀어진다는 말이다. 이는 옛날에 지어진 시의 한 구절인데, 이 구절은 이어서 ‘내자일이친(來者日以親)’이라 한다. 와서 접하는 자는 날로 친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와서 접하는 자’, 이미 형성돼있던 관계마저도 불완전한 의사소통을 거치며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천천히 우리를 우울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2. 오랜 시간 마스크를 착용하며 마스크를 벗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
이전에 얼굴이 갖는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충분히 논의됐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생긴 새로운 경향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3년 전 코로나19가 시작됐을 때부터 최근까지 우리는 계속 마스크를 착용해 왔다. 지금은 병원이나 약국같은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소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자 답답했던 마스크를 바로 벗어던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바이러스나 미세먼지와 관계없이 여전히 마스크를 고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현상은 어린 계층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최근 한국 청소년 4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감염 예방뿐 아니라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라는 결론이 나왔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최근 들어 젊은이들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마스크를 ‘顔パンツ(가오판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얼굴 속옷’이라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얼굴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마스크를 벗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이 생겨났다는 것은 전세계적인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마스크는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가 되었을까? 나는 이 현상의 원인으로 SNS를 주목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부족해진 우리의 인간관계는 결핍이 생겼고 많은 사람들은 이 결핍을 SNS에서 해소하는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SNS는 이 결핍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SNS를 많이 이용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있다. 그래서 SNS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일부 개인에게 깊어진 고립감과 우울감은 낮은 자존감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자꾸 얼굴을 가리고 싶게 만들었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마스크로 얼굴을 더 많이 가릴수록 사회적 자존감이 낮다는 연관성을 지적했다. 결국 불필요한 마스크 착용 고집과 떨어지는 자존감은 의사소통에 방해가 된다.
3. 아동 청소년들에 대한 영향과 그것이 불러올 미래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일들은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정서(이하 자아개념)를 형성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세세한 부분이 바뀔 수도 있지만 큰 줄기는 대부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삶의 형태, 특히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변화들이 아동 청소년들에게는 자아 개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자아 개념은 특히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학습되는데 이 시기의 상호작용은 다른 시기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주로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는 여러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회라는 곳을 학습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온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이전에 논의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아동 청소년들이 자아 개념을 확립하는데 방해가 됐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아동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자아 개념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자아 개념은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큰 줄기인데, 이것이 불안정하다면 삶 그 자체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별다른 조치 없이 사회인이 된다면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에 있어 손실이 될 뿐 아니라 개인도 불행할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코로나 블루’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도들도 있다. 이미 이전에 자아 개념이 확립된 성인들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자아 개념을 확립할 시기에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아동 청소년들의 미래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모든 아동 청소년들이 이러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2에서 살펴봤듯이 분명 자존감 저하를 호소하는 아동 청소년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충분히 코로나가 아동 청소년들의 자아 개념 확립에 방해가 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 인간관계의 회복을 촉진해야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코로나19가 어떻게 우리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인간관계를 상처 내는지를 살펴봤고, 특히 마스크가 우리의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에서 시각 정보에서 소음을 일으키고 자존감 하락을 일으킨다는 점을 살펴봤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일을 겪은 아동 청소년들의 미래와 그들이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까지 예측해보았다.
코로나19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상처를 입혔고 그 상처를 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많은 개인들이 크게 체감했을 것이다. 서로 만나지 않으니 나와 관계없는 사람 같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서로가 ‘인간답지’ 않게 느껴졌다. 아동 청소년들은 하필 이런 상황에서 자아를 형성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에 놓여졌다.
그러나 상처는 회복되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회복될 것이다. 다만 상처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이 회복을 어떻게 촉진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소요를 없앨 수는 없어도 분명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국가 차원에서의 아동 청소년들은 물론 성인까지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정신적 지원 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하고 생각한다. 당장의 그 비용이 부담된다고 일을 미루다간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상상해보라. 자아가 불안정한 이들이 성인이 되고 사회로 진출했을 때 발생할 많은 비용을. 그리고 그들을 판단할 사회 기득권조차 자아가 불안정한 모습을. 그것은 말 그대로 정서 불안 사회다. 실제로 지금 우리 사회는 전례없는 각기 계층간의 갈등과 혐오 아래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이 모습이 코로나19로 인한 정신적 피해의 역할이 크다고 확신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지금의 성인들에게는 정서 안정에, 앞으로 성장할 아동 청소년들에게는 적절한 자아 확립에 도움을 줌으로써 미래의 장기적인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조 문헌
Albert Mehrabian, 『Silent Messeges』
중국 육조시대 양나라의 소명태자가 편찬한 《문선》 〈잡시〉에 수록된 지은이 불명의 고시 19수 중, 14수의 첫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