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디자인을 쾌적하게 얻는 대화법
수년 전, 클라이언트가 알아야 할, 디자이너와 잘 소통하는 법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의뢰 시 준비물, 견적에 영향 주는 요소, 콘텐츠 질의 중요성, 디자인 피드백 하는 법 등을 폭넓고 얕게 다뤘는데요. 오늘은 그중 ‘디자인 피드백 하는 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협업할 때, 더 쾌적하게 소통하며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고 싶은 분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디자인에서 좋은 결과물은 오로지 작업자 개인의 역량으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의뢰자와 목표 및 방향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상호작용과 협력을 통해 완성됩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피드백이 나올 수 있고, 그 피드백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죠. 피드백의 질이 결과물의 질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피드백을 어떻게 하느냐가 의뢰자, 작업자 둘 다에게 중요합니다.
불필요한 오해, 감정적 스트레스, 헛수고와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정신 위생과 적정한 결과물을 위해, 디자인 피드백에 비폭력적이고 분석적인 언어 사용을 제안합니다. 프로젝트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피드백 프레임 삼총사를 소개합니다!
➊ 인상평 말고 맥락 공유하기 (근거 말하기)
➋ 좋은 점도 말하기 (균형 있는 디렉션)
➌ 닫힌 지시 말고 열린 제안하기 (함께하는 대안 모색)
다음의 세 가지 원칙 설명에는 ‘디자이너’ 대신 ‘작업자’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클라이언트 또는 관리자는 ‘의뢰자’라고 씀) 예문은 그래픽 디자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 틀 자체는 디자인 분야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서요. 단순한 실무 팁이 아니라 언어적 태도이기에 다른 다양한 분야의 작업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맘에 안 들어요” “내가 원했던 게 아니에요” “별로예요” “임팩트가 약해요” “어디서 본 것 같아요” 등처럼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한 피드백은 객관성이 부족해 기준이나 해결책을 세우기가 어렵고 프로젝트의 방향을 흐립니다. 객관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기에 작업자가 갈피를 잡기 어렵게 하며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죠. 막연하고 압축된 인상평으로 심판을 내리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렇게 느낀 이유(근거)와 추구하는 점(의도)을 함께 설명해주세요. 예를 들어 “촌스러워요”라고만 말하기보다는 “이 색 조합이 브랜드의 젊은 이미지를 표현하기엔 약하게 느껴졌어요”처럼 왜 그렇게 느꼈는지와 어떤 방향을 원하는지를 함께 전하면, 대화의 질뿐 아니라 작업 속도가 달라집니다.
프로젝트를 의뢰자와 작업자의 이인삼각 경기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이 경기는 결승선까지의 길이 무수히 많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특수한 규칙이 있습니다. 이때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어떤 경로로 나아갈 것인지 합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발을 내딛자마자 고꾸라질 겁니다. 즉 의뢰자와 작업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대화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의 도구가 바로 정확한 언어를 사용한 맥락 공유입니다. 맥락 이해가 서로 일치할 때, 넘어지거나 딴 길로 드는 불상사를 줄이고 더 빠르고 자연스럽게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또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평가의 언어는 때때로 비난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작업물을 깎아내리는 듯한 말은 생산성과 거리가 멀고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작업자를 위축시키는 언어는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피드백은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드백은 작업의 방향성과 맥락(의도)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대화여야 합니다.
맥락을 어떻게 언어화하는지 아직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아래 구조를 토대로 생각해보세요. 작업물의 구성 성분 중 ●어떤 요소의 ■어떤 성격으로 인해 ▲어떤 현상(결과로 나타나는 인상, 분위기, 메시지, 경험, 행동)이 나타나는지, 관찰하고 포착한 것을 말로 정리하는 겁니다.
예) ●정보량이 | ■너무 많아서 | ▲복잡해 보인다
예) ●일러스트의 표현이 | ■설명적이어서 | ▲호기심 자극이 약하다
가끔은 내가 받은 인상이 어떤 요소의 어떤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잘 파악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단조롭고 활력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요” “중요한 메시지가 묻히고 있는 것 같아요” “무게 중심이 불안정하게 느껴져요”처럼 현상(인상) 부분만이라도 최대한 정확하게 설명해보세요.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정확히 표현하기만 해줘도 작업자가 해석을 통해 이유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섣불리 평가 내리기 전에 “~한 이유가 있을까요?”라며 작업자의 의도를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질문은 맥락의 대화를 시작하게 해줍니다. 작업자가 의도를 설명하게 만들고, 서로의 기대치를 조율할 수 있는 단서를 줍니다.
고칠 점, 아쉬운 점을 이야기할 때 맥락을 함께 공유하자는 것이 이 꼭지의 요지이지만, 이 원칙은 고칠 점 피드백뿐 아니라 다음에 나올 ‘좋은 점도 말하기’, ‘닫힌 지시 말고 열린 제안하기’라는 원칙에도 바탕이 되는 올타임 전제 조건입니다.
막연한 한줄평 대신
이렇게 말해보세요
➔ “사용된 색이 차가운 느낌이라서, 프로젝트의 따뜻한 느낌과는 달라요.”
➔ “여백이 많고 대비가 약해서, 정보가 너무 적고 힘이 없어 보여요.”
➔ “요소 간 차이가 적어서, 어디를 먼저 봐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요.”
➔ “형태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모호한데,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지면 좋겠어요.”
➔ “핵심 요소에 집중하고 담백하면 좋겠는데, 이 요소가 반복되는 게 불필요해 보여요.”
디자인 피드백에서 단점과 고칠 점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장점과 좋은 점을 함께 짚어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단순 칭찬이 아니라 ‘지속할 방향을 시사하는 디렉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작업자가 피드백을 통해 확인하는 것에는 고치거나 없애야 하는 점 외에도 유지하거나 증폭, 발전시킬 점도 포함됩니다. 작업자는 피드백을 통해 작업 방향성을 체크하면서 중심을 잃지 않고 기준을 재설정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 피드백에서 수정할 부분에 집중하느라고 좋은 점에 대한 논의를 놓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작업자가 좋은 점에 대한 피드백을 얻지 못하면, 작업물에서 유지하거나 발전시킬 영역이 모호해져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작업자가 수정 작업을 하면서 의뢰자가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변경해, 장점이 희미해질 수도 있죠. 그러니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핵심 톤이나 전략적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좋은 점에 대한 피드백도 필요합니다.
이는 작업자가 더 열린 마음으로 피드백을 수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개선할 부분이 있지만, 유효한 부분도 있다’는 균형감 있는 피드백은 의뢰자의 관점과 태도가 설득력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죠. 심리학적으로 장점만 말하거나 단점만 말할 때보다, 장점과 단점을 함께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 발화 내용의 신뢰성과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작업물의 장점을 인정받은 작업자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긍정하며 안정감, 성취감, 자신감을 느낄 수 있고, 이는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기도 합니다. 스트레스가 적다고 항상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스트레스와 좌절감이 좋은 결과물을 낳기는 어렵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죠. 경험 상, 프로젝트에 대한 작업자의 좋은 감정이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기분을 위해 칭찬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작업 흐름과 집중도를 지켜주는 이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1번에서 이야기한 맥락 말하기의 중요성은 좋은 점 말하기에도 해당합니다. 단순히 “예뻐요”라고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어떤 점이 예쁘다고 생각했는지 그 맥락을 함께 설명하면 작업물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수정할 점만 늘어놓기보다는
이렇게 말해보세요
➔ “처음 보는 폰트인데 이 프로젝트의 실험적 느낌과 잘 맞아요.
➔ “색 조합이 이 콘텐츠의 정서와 잘 어울려요.”
➔ “이 구성은 어디를 먼저 봐야 하는지가 명확해 보여서 좋아요.”
➔ “이 질감이 우리 브랜드의 무드와 잘 어울려요.”
➔ “무겁고 단단한 느낌의 서체와 시원하고 큰 여백의 대비에서 오는 임팩트가 좋아요.”
“바꿔주세요” “빼주세요” “키워주세요” “옮겨주세요”처럼 맥락이 빠진 지시형 피드백은 작업자의 자율성을 제한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작업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더 나은 해결책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때문이죠. 작업자가 ‘왜’라는 설명 없이 행동만 요구받을 때, 문제의 본질을 검토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본래 의도보다 얕은 해결에 그치게 될 수가 있습니다.
피드백은 통제가 아니라 협력적인 탐색이 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면, 그 아이디어를 이미 결정이 끝난 ‘요구’로서 제시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맥락 설명과 함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제안’으로 말해보세요. “이렇게 해주세요”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이런 방향이 어떤가요?”는 작업자의 판단과 해석력을 존중하는 언어입니다.
작업자가 의뢰자의 일방적 요구에 매몰되지 않고 그 함의를 이해할 때, 종종 근본적이고 더 나은 해결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의뢰자가 “이 버튼을 상단으로 옮겨주세요”라고 하는 대신 “이 버튼은 좀 더 눈에 띄어야 해서, 상단에 배치하면 사용자의 시선 흐름에 더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하면, 작업자는 그 제안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작업자가 그 제안을 수용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맥락에 맞추어 세부 사항을 조정하거나, 혹은 그 제안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관점을 공유하고 함께 대안을 찾는 태도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한 다양한 대안 속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을 확률이 높겠죠.
‘지시’ 대신 ‘제안’을 하자는 것이지, 피드백할 때 제안을 꼭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면 때로는 작업자에게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시선의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있는데 해결할 수 있을까요?”처럼 느낌의 맥락을 전달하기만 해도 작업자가 문제를 파악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이렇게 해주세요” 대신
이렇게 말해보세요
➔ “무게 중심이 조금 불안정해 보여서, 이 요소를 오른쪽으로 옮겨보면 어떨까요?”
➔ “메시지의 중요도에 비해 전달력이 약해 보여서, 이 텍스트를 더 두껍게 써보면 어떨까요?”
➔ “의도했던 것보다 부드럽고 장식적인 느낌이 들어서, 조금 더 직선적인 폰트로 바꾸면 어떨까요?”
➔ “보다 균질하고 꾸밈없는 느낌을 원해서, 이쪽의 정렬을 통일하면 어떨까요?”
➔ “자유분방한 배치가 산만한 인상이 주고 있어서, 그리드에 조금 더 맞춰볼 수 있을까요?”
요약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이해했다면 이제 우리는 비폭력적이고 분석적인 피드백을 할 수 있습니다. 맥락에 집중한 피드백은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고, 좋은 점도 함께 말하는 피드백은 길을 잃지 않게 해주고, 해결책을 열어두는 피드백은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게 합니다. 이중 중요한 기반은 1번 ‘맥락 말하기’입니다. 개선할 점(아쉬운 점)을 말할 때도 맥락을 설명하고, 좋은 점을 말할 때도 맥락을 설명하고, 제안을 할 때도 그 맥락을 설명하는 겁니다.
이 피드백 프레임이 익숙하지 않다면 좋/맥/제를 기억하세요.
(앞에서는 기본 원칙인 ‘맥’을 먼저 소개했지만, 실제 피드백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글의 순서와는 다르게 ‘좋’을 앞에 두었습니다)
좋/맥/제 예시
·좋· (장점 + 맥락) “그래픽이 설명적이면서도 뻔하지 않은 스타일이라, 친절하면서 신선해서 좋아요.”
·맥· (단점 + 맥락) “그래픽도 큰데 제목도 커서, 둘의 힘이 부딪히는 느낌이 드네요.”
·제· (제안 + 맥락) “그래픽에 힘을 몰아주고 대비되도록, 제목의 크기를 확 줄여보면 어떨까요?”
맥락 설명이 익숙하지 않다면 요/성/현을 기억하세요.
요/성/현 예시
●여백이 / ■부족해서 / ▲답답해 보여요.
●모양이 / ■비슷하게 반복돼서 / ▲단조롭고 지루해 보일 수 있어요.
●이미지 톤이 / ■전체 톤과 어울리지 않아서 / ▲이질감이 느껴져요.
●스타일이 / ■너무 귀여워서 / ▲신뢰도가 낮아 보일 수 있어요.
●디테일 표현이 / ■투박해서 / ▲완성도가 낮아 보일 수 있어요.
어떤 것을 왜 느꼈고, 어떻게 개선되기를 원하는지 예리한 언어로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맥락과 의도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도 물론 많겠지요. 그래도 ‘나는 왜 그렇게 느꼈지?’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했지?’를 자문하며, 서툴더라도 최대한 설명하려 노력해보세요. 실마리를 조금만 풀어줘도 작업자가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요.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는 분을 위해 다음 편에서는 디자인 피드백에 사용할 수 있는 실전 키워드를 정리하여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