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에 처박힌 굼벵이는 일천팔백이십오 일을 참아 매미가 된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 가장 매력적인 울음이 암컷 매미를 울린다. 수컷 매미는 자기 몸의 반절 이상을 비워 소리를 낸다. 콘트라베이스에 활을 그으면 구슬픈 현악 음을 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들은 울부짖는다. 하루하루 죽어갈 것이다. 목도리처럼 좁은 앞 가슴등판과 뒷 가슴등판은 생기를 잃고 쪼그라들고 장대한 가운데 가슴등판은 미라처럼 앞뒤 등판에 늘러 붙을 것이다. 일천팔백이십오 일을 버틴 굼벵이는 매미가 되어도 운다. 그렇게 최대 삼십일을 산다.
패션모델이 된 지 열흘 만에 첫 단추의 튿어짐을 직감했다. 스물넷 여름. 꿈과 현실은 달랐다. 기쁨은 휘발성이 짙다. 소속사 사이트에 내 얼굴이 올랐을 때 나는 잠깐 기뻤고 오래 슬펐다. 그 해 여름 매미가 많이 울었다. 올해 태어난 매미는 작년까지 땅 속에 파묻힌 굼벵이다. 그들이 묻혀있는 땅을 밟고 패션모델 타이틀 따내려 열일곱 명의 모델 지망생은 강남구청역 근처 모델 아카데미에서 구십일 간 레슨을 받았다. 겨울바람은 따가웠고 비쩍 마른 몸이 안쓰러웠으며 군인 티를 탈피 못한 얼굴은 앳되었다.
모델 아카데미 정규 과정은 단순 반복이 많아 월화수목 아까웠지만 금요일 포토 포즈 시간이 있어 참았다. 그 정도는 나도 하겠다, 는 함수가 이게 네 현실이야, 로 결과값을 내는 소리. 사진기 셔터를 누를 때마다 현재의 한계가 모두의 눈앞에 드러난 탓이다. 열일곱 명의 모델 지망생 중 가장 맏형은 스물다섯이었다.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짓는 맏형의 몸이 셔터 음에 맞춰 구겨진다. 다음 친구와 교체되며 나오는 맏형은 항상 기껏해야 한두 살 어린 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은 구긴 종이가 펼쳐지듯 어색했고 나는 그의 꿈은 아카데미 수강 자체에 있다 생각했다.
삼 개월의 정규 수업의 꽃은 마지막 날 오디션이다. 우리 열일곱 명은 오직 소속사 계약을 위해 이백만 원의 수강료를 내고 구십일 동안 찬바람 맞으며 굼벵이가 묻힌 땅을 딛고 강남구청역으로 출근했다. 오디션 최종 과제는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런웨이로 이어진 긴 통로 끝에는 소속사 당락을 결정지을 대표가 앉아있었다. 우리는 각자 결연한 몸뚱이로 모델처럼 걸었다. 런웨이 끝에 다다르면 포즈를 짓는다. 기억도 안 나는 어색한를 포즈 짓는 찰나에 나는 대표의 공허한 동공을 쏘아봤을 것이다. 무언의 외침이 오갔다. 대표의 동공에 생기가 터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몸을 돌려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나는 떨어짐을 확신했다.
오디션의 끝은 동기들과의 헤어짐을 의미했다. 백스테이지에서 런웨이로 나아갈 때의 얼굴은 노인의 그것이었으나 돌아오는 얼굴은 앳되었다. 모두가 웃으며 만남을 기약할 때, 맏형은 웃지 않았다. 백스테이지 가장 구석에 기대어 서있었다.
매미가 된 건 열일곱 명의 동기들 중 나 혼자였다. 스물넷 여름 매미가 울었다. 일천팔백이십오 일을 참아 매미가 된 소수는 최대 삼십일을 산다. 어느 날 나무즙액을 먹다 떨어져 개미 밥이 된다. 축축하고 캄캄한 구덩이에 파묻힌 굼벵이가 그린 매미의 청사진은 이런 모양이 아니었을 것이다. 몸이 굳어 산채로 개미에게 살점을 뜯길 때 매미는 생각했다, 실패를 깨닫고 소속사 바깥에서 활동할 때 받은 문자에서, 맏형은 결국 꿈을 이룬 거냐며 매미를 칭찬했고,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소속사를 나온 건 다시 겨울이었다. 나는 굼벵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