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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적인 염세주의자로 살아가기

02. 딱 거기까지만 친하게 굴어주세요

by Anavrin

살다살다 역병때문에 사회가 영향을 받는 건 조선시대 이후로 끝난 줄 알았는데

코로나라는 질병 때문에 일상생활 모든 것이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생존형 외향주의자인 나에게 이번 코로나 사태는 한편으론 나에게 편한 점을 가져다 주었다.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합법적인 거리두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한 면이지만, 나는 누군가가 갑자기 훅 내 공간에 들어오려고 하면 왠지 모를 반감이 쑥 나타나버린다. 예를들어 매일 가는 카페 사장님이 내 이름을 외워 'ㅇㅇ씨 오늘은 별 일없나봐?'라고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거나, 헬스장 트레이너가 '회원님 그때는 이거 못하시더니 이제 잘 하시네요?'라는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말을 한다거나 하면 한편으로는 그들의 호의와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내 마음 속 저 깊은 언저리에선 '앗 아는척 안해줬으면 좋겠다.'는 심보가 고개를 든다.

내가 꼬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걸 티내지 않고 살아왔는데 얼마 전 P와의 대화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P는 내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가장 차분하고 포용력이 있는 친구다. 색깔로 말하자면 연베이지 색깔의 느낌을 가진 친구다. 그 친구가 얼마 전 시장에서 과일가게 아주머니한테 그런 마음이 들었다며 이게 코로나 블루인가? 라며 내게 운을 띄웠다.

'아니 친구야 나는 코로나라는 게 존재하기 전부터 그랬단다.' 라는 말을 삼키고

그래 그 마음이 뭔지 나는 너무 잘 알아. 근데 그건 네가 이상한게 아니야 왜 사람이 이따금 훅 들어오면 놀라는 경우가 있잖아. 그래서 반감이 든 걸거야. 아니면 그날 퇴근하면서 네가 너무 피곤했던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을 받아주려면 일단 네가 여유가 있어야 하잖아. 등의 말들을 해줬다.

세상에 가장 그럴 것 같지 않은 친구가 나랑 같은 기분을 느꼈다니!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서 아쉽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 마음은 나만 먹는 건줄 알았는데, 나만 꼬인 사람이라서 그런 건줄 알았는데 꽤나 보편적인 감정이잖아? 쳇 하는 기분이었달까.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건 정말이지 어렵다. 어제는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그러고 싶은 기분이 아닌걸! 물론 그런 내 변덕까지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인 사람이겠지만 나는 염세적인 사람이지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이 아니니까 속으로만 되뇌인다.

앗 제발 거기까지만 친하게 굴어주세요 더 이상은 부담스러워요! 저는 당신과 스몰토크를 하기 싫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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