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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미야의 글빵 연구소 졸업 작품 발표회

by 유연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불과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저는 수험서의 세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오로지 합격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수많은 공식과 판례들을 기계적으로 외웠습니다. 모든 문장들은 제게 감정 없이 명확한 정답만 요구했습니다. 왜,라는 의문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이해를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성미의 저로서는 이런 규격화된 논리들이 오히려 비논리적으로 보였습니다.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시험 준비를 그만두었습니다. 함께 수험 공부를 하던 남동생은, 언젠가는 후회할지도 모르니 며칠만 더 생각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동생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잊을만하면 꼭 한 번씩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혹시'라는 물음표를 던질 거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후회할 일은 없을 거라 대답했습니다. 주어가 '세법', '회계'인 수험서보다 언제나 '나'로 시작하는 따스한 글을 만나고 싶었고, 언젠가는 저도 사유의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가 저의 출발선이었습니다. 매일 일기를 연재해 오다가 글을 발행한 지 백일쯤 되었을 때 브런치 스토리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습니다. 블로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글을 쓰면서도 자꾸만 위축되고 작아져가는 제 자신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블로그에서 나름 인기가 좀 있는 편이라고 우쭐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깊은 사유가 깃든 다른 작가님들의 글에 비하면 저의 글은 그야말로 옹알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쏟아낼 이야기로 한가득인데 정작 하얀 배경 위로 나타나는 글자들은 몇 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문장을 억지로 꺼내 마침표를 찍어보아도 늘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글은 많이 써야 는다는데, 매일 글을 써도 나만 고여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재능도 없으면서 괜히 글을 쓴다고 까불었나, 하는 생각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중, 우연히 미야 작가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akefamily


작가님의 수필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저의 추구미를 그대로 옮겨놓은 글이었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작가님의 연재글을 차례대로 읽어 나갔습니다. 이런 글을 쓰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많이 쓰는 만큼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걸까.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브런치에 접속할 때마다 작가님의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평소에 흠모하던 짝사랑 상대를 남몰래 훔쳐보는 여고생처럼요.


운명 같은 걸 믿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제게 운명과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글이 올라왔을지 기대하며 들린 작가님의 글방에서, '미야의 브런치 글빵연구소' 개업 소식을 접했습니다. 더 이상 혼자 헤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댓글에 수강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렇게 저와 미야 작가님, 그리고 수강생 작가님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miya/100



글을 쓴다는 건 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저는 어디에서 정식으로 글을 쓰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제게 글빵 연구소의 강의들은 신세계나 다름없었습니다. 기초부터 시작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수필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고, 문장에 감정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윤문'과 '퇴고'라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있게 배워나갔습니다. 더 나아가, 내성적인 제가 용기를 내어 합평 모임에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글빵연구소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겪어보지 못했을 일들이었습니다.


제 휴대폰 카메라 화질이 많이 유감스럽네요..


기나긴 배움의 여정을 지나, 2025년 10월 11일. 드디어 졸업작품 발표회날이 다가왔습니다. 이날의 으뜸판은 우기 작가님의 문학사 족집게 강의와 졸업 작품 합평이었습니다. 쟁쟁한 실력을 가진 작가님들과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성장한 듯했습니다. 물론 제 글쓰기 실력은 성장을 논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작년 이 맘 때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분명 많은 것이 변해있었습니다. 사실 이날 목감기로 몸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모인 작가님들에게서 느껴지는 긍정적인 기운 덕분인 걸로 생각합니다.


이 날 합평에서도 역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에겐 두 번째 합평이었는데요, 다른 작가님들의 시선으로 저의 글을 따라가니 그동안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보완점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한없이 안타까웠다.'는 제 문장이 그랬습니다. 수필에서는 직접적인 감정 표현 대신 은유와 비유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표현이 너무 과해서도 안 됩니다. 블로그 일기를 꾸준히 쓰며 어느 정도 문장력을 갖추긴 했지만, 말 그대로 일기를 쓰는 것이었기에 '좋았다.' '신이 났다.'는 식의 표현에 익숙해져 있던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죠. 게다가 기초부터 쌓아 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 문장이 남들에게 예쁘게 보일까'만 신경 썼던 것이 오히려 수필을 쓰는 데 독(毒)이 되었습니다.



합평을 통해 저만의 독(毒)을 발견했다면,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통해서는 진정한 수필의 미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정의 맥을 끊지 않으려면 어떤 징검다리 문장으로 연결해야 할 것인지, 여운을 남기는 수필이란 무엇인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묘사법은 어떤 것인지, 독자를 한눈에 사로잡는 제목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 것인지까지.. 이렇게 쓰는 중에도 감히 제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지만 작가님들의 글 자체만으로도 제게는 훌륭한 교보재가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좋은 의미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 머릿속을 차지했던 고민은 모임 때 다른 작가님께서 말씀하셨던 고민과도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최근 들어 제 글이 다 똑같이 보이기도 하고 자꾸만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아 일주일 넘게 글쓰기에서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감기에 걸리기도 했고요. 간신히 써낸 저의 졸업작품조차 사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합평 시간에 저의 글을 낭독하면서 수필을 어설프게 따라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작년 겨울, 다이어리에 써놓았던 일기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잔뜩 주눅이 들어서 일기장에 '호흡이 긴 글을 쓰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긴 글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조차 몰랐습니다. 브런치 초반에 썼던 글과 지금의 글을 같이 읽으면 분량에서 꽤나 큰 차이가 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 제 안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저는 매 순간 저의 글을 마주하며 좌절합니다. 넘어질 수 있을지언정 그대로 꺾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래오래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좌절감도 막막함도, 잘 거쳐가 보려고 합니다. 제가 원하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도록요. 더군다나 저의 글쓰기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요.







부족한 저를 이끌어주신 미야 작가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빨리 모임 후기를 올리고 싶어서 우선 완성한 대로 발행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 역시도 계속해서 다듬어 나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작가님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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