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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독방 늙은이 Apr 22. 2016

멘토링을 강요하는 사회

자아 불안의 시대

멘토링(mentoring)(출처 위키백과)


*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1:1로 지도와 조언을 하는 것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말로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멘토(mentor)라고 하며 조력을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라고 한다. 멘토링은 일반적으로 기업체, 학교 등에서 우수한 경력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선배가 후배나 신출내기들의 능률과 조교사나 대학에서 교사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예비교사)들을 돕는 것에 활용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의미가 많이 포괄적으로 변하여 단지 1:1로 지도하고 조언하는 것이 아니어도 선배가 후배에게 조언을 하는 자리 나 행사, 프로젝트 등에 모두 멘토링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멘토링의 의미가 점점 많은 곳에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어제 끄적거렸었다.

경험이 풍부한(물론 검증된) 사람의 조언 또는 도움을 받을 때는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것이나 앞으로 계획한 것이 큰 문제없이 진행이 될 건지에 대한 도움 정도면 될 듯 싶다. 해봤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고. 후배님들하~ 그러니 너무 새로운 것에 대해선 물어보질 마셔~ 그건 당신들이 더 잘할 테니까.


페이스북이 생활의 일부가 되다 보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뉴스, 포스트 들이 친구들을 통해서 타임라인에 공유가 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이 아마도 멘토, 깨달음에 대한 정보인 듯 싶다. 물론 통계는 없다. 주관적이다.


각자 개인의 타임라인이야 자신의 영역(이지만 페친들과 공유하는 공간이기도 함)이기에 어떤 글을 쓰고 공유하던 자유지만 간혹 가다 보면 특정 인물이나 특정 문구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것도 그 사람 자유의지이니 내가 뭐라 왈가불가할 부분은 아니지만 아는 지인일 경우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인지도 있는 사람의 그런 글을 공감한다는 의미로 공유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자기 자신은 공허하고 부족하고 고민되고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도가 심해져 맹목적일 경우에는 그 걱정이 배가 된다.


맹목적(盲目的)


말 그대로 눈이 먼다는 것이고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고 배타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난 그래도 좋아...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이나 피해를 주지는 않길 바란다.


힘들고 고민스럽고 걱정되고 답답한 상황은 살아있는 동안에 계속된다. 해결하고 싶지. 그러다 보니 누군가 해결해 줄 수 있는(멘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에는 오프라인에서만 직접 면대면으로만 하던 멘토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도 누구나 가능하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답답한 사람 입장에서는 실낱같은 희망의 끈으로 보였을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나?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있다. 자신의 멘토라고 맹목적인 따르던 사람이 도덕적,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이성보다는 감성적 판단으로 감싸고 덮어주려 한다. 정작 그 멘토라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마음이 편안해 질까? 아니겠지... 


그리고 멘토가 꼭 사람이어야 하고 유명인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또 해본다. 현대 사회의 불안한 상황들이 대중이 멘토를 찾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도 모르게 멘토를 갈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영화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만화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 술을 마시다... 그 어떤 상황, 어떤 사물에서라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너무 큰걸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고자 한다면 맹목적 멘토링에서 벗어나 보면 어떨까 싶다.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정주행을 했었는데 재미도 있지만 나름 의미 있는(물론 나에게) 장면들도 꽤 많았다. 이런...(원펀치맨 중 한 장면) 장면들. 



현재 나의 상황, 심리 등에 대한 부분이 공감이 되거나 그래!!라고 무릎을 칠 수 있는 것들은 도처에 깔려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상황인지 조차 모르고 있으니 타인이 좋다고 하는 사람, 글, 영상을 아무런 필터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공감을 강요하는 것은 상당한 실례이다. 엇?!? 그런데 어찌 보면 이 글도 공감을 강요하는 글이 될 수도 있으려나? :( #그런거아님요 


그만큼 힘든 세상이라는 걸 반증하는 것이라... 힘이 되는 누군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 자신의 주관을 잃을 정도의 맹목적이지만 말자. 나 역시.


-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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