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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Aug 14. 2018

텅 빈 충만

몽골, 아무것도 없는 곳이 남긴 것들

 열흘 남짓의 몽골 여행기는 여기까지다. 이후 우리는 몽골 제2의 도시이자 아므라의 처가(;;)가 있는 에르넷을 거쳐 울란바토르로 돌아왔다. 역시나 뜻밖의 모험이었지만 그것까지 풀자면 너무 방대해질 것 같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 세 가지가 있어 남기려 한다.


말 타고 처음 달려본 썰

 사극을 많이 봐서 그런지 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옷을 갖추고 말에 오른 그런 것 (정유라각)말고 탁트인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 말이다. 몽골을 찾은 구체적인 이유가 있진 않았지만 '초원에서 말을 탄다'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홉스골에 도착했을 때 기회가 왔다. 여행 초반부터 아미에게 끊임없이 '말사랑'을 어필한 덕에 아미가 홉스골 일정 첫 날 바로 마부 아저씨를 소개시켜줬다. 아미와 안면이 있었던듯 아저씨는 나를 바로 말에 태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달리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것들을 전수받긴 했지만 좀 빠른감이 있었다)

 오토바이를 처음 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그것보단 더 높고 더 빨랐지만 생각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마부 아저씨가 자신의 말을 타고 앞에서 달렸고 내가 뒤를 따랐다. 몰랐는데 옆에서 아저씨의 검고 큰 개가 함께 달리고 있었고, 옆으로는 나무들이 휙휙 지나갔다.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랄까. 말르가즘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보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일단 시승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갔던 건데 아저씨의 인도에 따라 숲 속 어딘가에 내리고보니 마부 아저씨 집이었다.(;;)


아미와 마부아저씨, 그리고 아저씨 집 ㅋㅋㅋㅋ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마부 아저씨는 그날 낮부터 술을 한잔 걸쳤다. -잃어버린 말 한 마리를 찾으러 옆동네에 마실갔다가- 그래서 또 마누라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듣게 될 상황이었는데 그게 싫어 나를 말에 태워 호수 뒤편에 있는 본인의 집까지 동행했던 것이었다. 손님을 데려가서 순간을 모면하겠다는 전통적인 면피법.

 나는 영문도 모른채 좋다고 달렸다가 어리둥절한 채로 아저씨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아줌마가 따라주는 수태차도 한 잔 얻어마셨다. 그리고 또 쿨하게 나와 다시 말에 올라 본진으로 돌아왔다. 본의 아닌 넌씨눈 ㅎ

 말이란 동물이 잘맞았다. 개나 고양이처럼 얼굴이 귀엽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근육질로 몸이 탄탄한 게 매력있고 무엇보다 사람을 태우고 달린다는 게 참 기특하다. 말도 잘들어서 엉덩이를 살짝 들면서 쵸-쵸- 이러면 귀신 같이 알아듣고 잽싸게 달린다. 그러고보면 말은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애용한 이동수단인데 너무 빠르게 자전거나 자동차에 밀려난 감이 있다.

 그 이후로도 며칠간 말을 타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취미로 승마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으나 여지껏 승마는커녕 말 구경도 못하고 있다. 여기서 어찌 어찌 말을 탄다고 해도 몽골에서 탈 때 같은 기분이 들까 싶기도 하다.   

 


별 헤는 밤

 몽골에 오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몽골에 온 이유로 초원에 누워 별을 보는 걸 꼽는다. 나는 이상하게 별이 그렇게까지 막 땡기지는 않았다. 다른 눈호강할 것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별이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래도 밤만 되면 별 생각에 뛰쳐나가지 않았을 뿐이지 남들만큼 하늘을 보며 별을 찾았다.


  그런데 날씨가 안좋아 별을 보기 힘들었다. 여행 막바지에나 별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카메라에 담은 건 정말 막바지에 에르넷, 아므라의 처가집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해변의 아므라

 우리의 드라이버였던 아므라는 가이드일을 취미삼아 한다는 것 치고는 우리를 챙기는 것에 참 열심이었다.   

(아므라의 과거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운전을 하면서도 틈틈히 사람들 표정을 살피며 불편한 게 있는 건 아닌지 묻기도 했고 밤이 찾아오면 우리 게르에 들려 춥진 않은 지 확인하고 불을 지폈다.

 잘 먹이겠다는 의욕도 대단해서 아침에 식빵 하나를 먹어도 자기 식으로 이것저것 샌드위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돌리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one more?"를 외치며 흐뭇해했다. 어머니 마인드..

 한번은 아므라 혼자 김치찌개를 준비하고 있길래 아므라가 한국인 가이드를 많이 해봐서 김치찌개도 할 줄 아는구나 역시.. 했는데 알고보니 그 날 유튜브를 보고 시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아므라가 냄비에 김치를 넣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김치찌개..ㅋㅋ it`s my first time.."   

물론 맛있었다.

고기 손질하는 아므라

 이렇게 아므라는 매순간 우리를 진심으로 대했다. 프로같았던 아마추어 가이드 아므라. 어쩌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더 진정성있게 우리를 가이드했는지도 모르겠다. 부자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기로 한 아므라도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했다. 아므라는 홉스골에 땅을 사서 캠프를 차리고 울란바토르와 그 캠프를 오가는 소소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 홉스골 일정중에 아므라는 땅을 계약했다;;)  여행 중 아므라는 딱봐도 비싸보이는 옷들을 많이 입고 가지고 다녔는데 한번은 게르 안에서 방금 갈아 입은 자신의 폴로 셔츠를 바라보며 또 혼잣말로 "휴 이제 이런 비싼 옷 못 사 ㅠ" (몽골말, 아미통역)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처연하면서도 귀여웠는지. 캠프를 차리는 걸 보면 어디까지 내려놓으려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아므라가 이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랄 뿐이다.

물에 빠진 차랑 사람 구하려 양말 벗는 아므라. 박세리 인줄 알았다..
주로 바라보기만 하는 동시통역사..가 아니고 우리의 가이드 아미

 아므라는 영어도 그렇게 유창한 편은 아니었고 한국말은 물론 거의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잘하는 말 "괜찮아!!") 그래서 동시통역사 아미가 옆에서 아므라의 말을 수시로 통역해줬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깊이 있는 대화를 자주 나누진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한번 아므라가 우리 모두에게 긴 이야기를 해준적이 있다. 별을 보러 잠시 나갔던 우리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았는데 어쩌다 아므라가 호수를 등지고 서서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러 호수에 파도가 일었다. 해변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남긴다.    


  "예전의 나였다면 가장 좋은 차를 타고와서 가장 비싼 숙소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모든 것을 과학으로, 논리로 풀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어야할 때도 있다. 종교를 떠나서 여러분도 돈과 논리에 얽매이기보단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아라. 그럼 삶이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물질적으로 화려했던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그 이면의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홉스골
Amar sanna, 33세. 이 날 땅샀다.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꽉 찬 도시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그 곳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채울 수 있었고 그야말로 텅 빈 충만이었다. 한국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에게 몽골 여행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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