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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Aug 04. 2018

홉스골은 호수다

관광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곳

홉스골로 가는 길

 어린 시절 베이징 여행을 패키지로 하고 나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맛없는 식사도 반강제로 들리는 기념품 가게도 아닌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이리저리 날 끌고 다녔던 단체 버스였다. 사실 의지가 있다면 지도를 보고 행선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한두 번 편안히 버스에 오르다 보면 그런 의지는 금세 사라지고 곧 잠이 들게 마련이다. 편안함에 길들여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그렇게 다 다니고 난 뒤에야 내가 어디를 어떻게 다녀왔는지 다시 돌이켜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결국 나는 베이징 시가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만리장성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 곳인지 지하철 요금은 얼마이며 어떻게 타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여행을 끝내야 했던 것이다.


UB(1박) -> 엘승타사르하이(1일) -> 허르허링,어르깅호수(2일) -> 쳉헤르온천(3일)-> 아르항가이, 춀로트(4일) -> 홉스골(5,6,7일) -> 에르넷(8일)
 적어도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는 숙지했다

 

 몽골 여행은 비록 투어였지만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도를 꼼꼼히 살폈고 적어도 내가 어디를 거쳐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정도는 숙지했다. 몽골은 정말 컸고 홉스골은 멀었다. 도로가 촘촘하지 않았던 탓에 우리는 종종 오프로드를 달려야 했고 여러 번 오갔다는 아무라조차 길을 헷갈려했다. 아무라가 켜놓은 내비게이션은 수시로 수신 불가 지역임을 알렸다. 그렇게 우리는 모험을 하듯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을 유지한 채 몽골 초원을 달렸다. 그리고 몽골 제국 시절 수도였던 허르허링(혹은 카라코쿰)과 오아시스 같은 온천 쳉헤르, 아르항가이라 불리던 협곡을 지나 울란바토르를 떠나 온 지 5일째 되던 밤, 홉스골에 도착했다.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호숫가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다들 지쳐있었다.    

허르허링에서 만난 몽골 아이.  센베노만 해도 까르르 웃어줬다. 아이 눈에도 외국인은 외국인 ;;


 우리는 홉스골에서 3일간 머물렀다. 홉스골은 정말 크다. 내가 아는 호수는 멀리 응시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 바 라보면 대강의 시작점과 끝 언저리가 보일락 말락은 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홉스골 호수는 차를 타고 아무리 달려도 끝이 나지 않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때때로 바다라고 느껴진다. 워낙 거대한 탓에 잔잔히 파도가 일기도 하고 실제로 몽골 사람들은 홉스골을 어머니의 바다라고 부른다. 그만큼 홉스골은 몽골인들에게도 단순 휴양지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곳인 셈이다.


 그런데 홉스골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있진 않다. 가장 일반적인 건 말을 타고 호수의 일부의 일부를 둘러보는 것 정도. 정말 그걸 하고 나면 할 게 없다. 사실 휴양지라는 게 그렇다. 그냥 그곳의 공기를 쐬고 바라보고 걷거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지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심심했는지 뭘 자꾸 만든다. 가령 보트를 띄운다거나 번지점프를 한다던가,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집을 짓고 식당을 차리고, 다양한 이름의 편의시설을 들인다. 그렇게 고요하고 고고하던 하나의 풍경은 사람의 손때를 타며 관광지가 된다.



 그런 점에서 홉스골은 관광지라기 보단 그냥 홉스골 호수였다. 어느 관광지들처럼 줄지어 늘어선 맛집도 없고 전망대도 없고 호수에서 손님들을 모객 하는 놀이기구들도 없었다. 대신 탁 트인 하늘과 잔잔히 물이 들이치는 호숫가, 그곳에서 풀을 뜯는 물소들, 동물들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일행들도 그 어딘가에 드러누워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간 지나왔던 초원에서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 좋았다. 이렇게까지 탁 트이는 기분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다. (사실 돌이켜보니 호수 가운데 있는 작은 섬-관광지였다-을 오가는 모터보트가 한 대 있기는 했는데 딱히 미관을 해친 것도 아니고 운행 시간도 제한적이어서 있는지도 몰랐으니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했다. 호수가를 산책하거나 발에 물을 담그거나 숲에 가보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홉스골의 풍경들


아이들과 노는 것이었다


미셰르와 기간쵹

 아이들과 노는 것이었다. 우리가 묵던 캠프- 호숫가를 따라 게르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일종의 민박집을 운영하듯 음식을 팔고 잠을 잘 수 있는 게르를 제공했다. 이곳을 여기선 캠프라고 불렀다 -는 자매인 몽골 아주머니 두 분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이상하게 딸들이 많았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큰 여자애도 딸이었고 그 애가 늘 업고 다니는 갓난애도 딸이었고 중간에 있는 5-6살 아이들도 모두 딸이었다.


 그중 유독 활달해서 시끄럽게 굴었던 게 바로 미셰르와 기간쵹이다. 두 아이와는 둘째 날부터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내가 먼저 이름과 나이 같은 걸 묻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나를 아주 좋아했다. 미셰르와 기간촉은 각각 5살, 6살 난 애들로 사촌 지간이었는데 늘 붙어 다녔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지 둘 다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스타일이었다. 그렇다고 뭘 달라고 떼를 쓰거나 들러붙는 것도 아니었고 뭘 주면 딱히 거절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순수한 몽골 아이 들었던 것이다. 둘이 붙어 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습이 귀여워 그림을 그려줬는데 그때부터 아이들을 완전히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셀카 찍기, 그림 그리기, 간단 한국말 연습 등을 하며 거의 반나절을 함께 보냈다. 얼음땡을 할 땐 너무 힘들어서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 나는 한국말을 아이들은 몽골말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말이 잘 통했던 그 순간들 말이다. 




 몽골도 사람이 먼저


여행을 떠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이국적이고 멋진 그곳의 풍경들이다. 특히 몽골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휴식이 됐던 곳이다. 사진으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푸른 초원과 수십수백 마리의 가축들이 늘어져있는 모습.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호숫가의 돌들과 청명한 바람을 타고 온 풀향기는 홉스골이 아니면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림 같았던 홉스골의 풍경들은 이제 아른아른 해지고 있지만 깔깔거리며 온종일 웃던 아이들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다. 마지막 날 홉스골을 떠나며 헤어지던 순간 왜 울지 않고 아무런 미련 없이 손만 흔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워낙 광활한 자연에서 뛰어오는 아이들이니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겠지.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내가 먼저 센 베노-를 외치며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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