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미식가처럼 어느 가게는 맛이 어떻고, 식초는 겨자는 넣어야 하는지 아니 그러한지 하는 것까지는 잘 모른다. 연애할 적 아내가 좋아해서 가까운 몇몇 집들 먼저 맛보기 시작하였는데, 누군가 표현한 '행주 빤 물' 같은 슴슴한 육수와 고소한 메밀향이 괜찮았다. 워낙 메밀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시큼하지도 달달하지도 않은 데서 오는 편안한 느낌이 좋아 가끔 찾게 되었다. 그뿐이다. 평양냉면집만 까다롭게 찾아다니거나 줄을 서거나 하는 정도는 못되고,덥고 어쩌다 생각이 나면 한 번 가 보는 정도다. 날이 더워 가게 회전율이 높아지면 많은 양을 삶아내느라 맛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말에, 한겨울까지는 아니고 찬바람이 꽤 불 적에 찾아가서 냉면을 맛본 적도 있었다. 행주 빤 국물을 떠먹으며, 심심하면서도 간이 밴 애매함을 즐기게 된 모양이다.
영화관이 딸린 건물 2층의 식당가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내의 직장에서 가까운 곳이라 가끔 가곤 했는데, 얼마 전에 평양냉면집이 하나 생겼다. 접근성이 좋아 가게 되었는데 깔끔한 시설과 괜찮은 맛에 이후로도 종종 찾곤 했다. 많지 않은 지점을 둔 프랜차이즈 냉면집이었다. 6월부터 최고기온이 35도를 찍었던 날, 여느 때처럼 이곳을 방문했다. 가게는 모처럼 분주했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브레이크타임이 끝나고 저녁 장사를 막 시작한 이른 시간에는 작은 매장이 다 차는 경우가 없는데, 이날은 단체 예약이 있는 듯 같은 상차림으로 손님 없는 테이블마다 버너 위에 불고기 전골냄비가 끓고 있었다. 단체 예약석을 제외하고 입장한 손님들이 서너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게 되었는데, 다행히 우리는 마지막 남은 2인용 테이블의 비좁은 공간에 웨이팅 없이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이날은 단체손님 탓인지 평소보다 직원이 많았는데, 누구보다 분주한 사람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작은 키, 작은 체구에 멀끔한 차림새, 여유 있고 날렵한 몸놀림으로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우렁차고도 친절한 목소리로 손님을 응대하는 중년 남성이었다. 목소리와 손동작에서 자신감 같은 것이 절로 묻어나는 것을 보아서는 누가 보아도 사장이라 여길만 했다. 그간 몇 번 방문하였을 적에는 서빙하는 젊은 아르바이트생들만 있었지 사장이라 할 만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키오스크로 물냉면 하나와 비빔냉면 하나를 시킨 채로 입장하였는데, 냉면보다도 먼저 시키지 않은 지진 손만두 한 접시가 나왔다. "서비스입니다."여기서 서비스 음식을 받아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단체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해 보이는데 무슨 서비스까지 주나 싶었다. 서비스 메뉴는 전 테이블에 놓였다.오늘 무슨 날인가? 꽤 대단한 사람들이 오는 모양인데.
"죄송합니다. 오늘 봉사를 하는 날이어서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바쁘게 움직이며 명랑하고 큰 목소리로 연신 말했다. 봉사라는 단어에서 유독 힘이 들어갔다. 식당에서 할 수 있는 봉사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글지글 끓고 있는 저 빈 테이블의 불고기의 주인을 향한 것일 게다.
답은 금방 나왔다. 떼 지은 아이들의 소란하고도 익숙한 소리가 매장 바깥을 메웠고, 크고 작은 아이들이 줄지어 식당에 들어섰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부터 중고생까지 여러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좁은 매장을 순식간에 채웠다. 봉사의 성격이 명확해졌다.이토록 다양한 연령대를 보면 일반적인 학교는 아닐 것이고, 아마도 보육원 등에 소속된 아이들일 것이다. 그들의 한 끼 맛있는 저녁식사가 끓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불고기 전골 외에도 냉면이나 만두와 같은 것들이 연이어 테이블 위를 채워나갔다. 봉사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던 사장의 목소리는 아이들이 오자 한결 더 우렁차졌다. 날쌔게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아이들에게 음식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냉면은 어떻게 먹고 불고기는 어떻게 먹으면 되고... 차디찬 평양냉면을 먹었던 시끄러운 저녁 식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냉면을 사 먹는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카운터에 매달려 있는 적십자 후원 명패가 다시 보였다.
ChatGPT에게 평양냉면 먹는 남자를 고전주의 화풍으로 그려달라고 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그리스 남자가 평양냉면을 먹게 되었다. 다소 충격적이지만 묘하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꿈은 세계 정복이었다. 여러 픽션 속 여타 악당들과 같은 목표를 가졌던 그의 포부 덕택에 그전까지 도시국가 폴리스(polis)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진정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최초로 세계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우주/질서(kosmos)라는 말과 국가(polis)가 합쳐진 세계(kosmopolis)라는 단어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표현이었다.
세계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곧 개인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계를 만나기 전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존재를도시국가 공동체에서 찾았다. 개인은 공동체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공동체는 개인의 모든 것이었다. 폴리스마다 수호신이 있었다. 아테네는 지혜와 전쟁의 신 아테나, 스파르타는 달과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 코린토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가호를 받았다. 역사 그 자체로 여겼던 신들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근원과 존재의 이유, 그들의 과거 연원을 설명해 내기에 충분했다. 미래도 신의 손에 달려 있었다. 신탁을 통해 주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은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적어도 벌어지고 있는 또는 앞으로 나타날 현상에 관해 별다른 의문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개인은 폴리스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으며, 폴리스를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의를 실행하기 쉽지 않다고.
그랬던 그들 앞에 놓인 새로운 세계는 혼란의 근원이 되기 충분했다. 작은 폴리스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드넓은 세계가 있었다. 세계의 거대함에 경탄하는 것도 잠시, 고민은 결국 '나'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드넓은 세계 속에서 개인은 실로 먼지 같은 존재였다. 폴리스 공동체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 여겼는데, 폴리스 바깥에 훨씬 어마어마한 것이 있었다. 새로운 세계는 개인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인식되던 개인은 무의미했다. 폴리스를 벗어난 나 자체는 과연 무엇인가? 세계라는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공동체를 벗어난 자신의 정체성, 존재 이유와 나아갈 길에 관해 사유하는 철학이 발달했다. 스토아학파와에피쿠로스 학파가 그것이었다.
키티온의 제논과 에피쿠로스
새로운 철학의 목표는 개인의 행복이었다. 진리의 목소리 다이모니온(Daimonion)에 귀 기울이던 소크라테스,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 이데아를 설정한 플라톤의 시기 철학의 주제는 진리 탐구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뛰어넘는 실제적인 철학이 필요했다. 새로운 세계를 사는 불안정한 개인은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 개인의 행복을 도시국가의 행복과 더는 등치 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키프로스 출신의 제논이 창시한 스토아학파는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의 지고한 힘에 관심을 기울였다. 운명, 제우스, 섭리, 자연...이 힘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도 무방했다. (여기에서의제우스는 그리스 신화 주신의 이름만을 빌려왔을 뿐, 세계를 움직여나가는 지고한 존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하늘과 땅과 만물의 모든 것, 인간의 영혼까지도 이 힘 곧 자연에서 나왔다. 인간 본성은 신을, 자연을 이미 닮아 있었다. 행복은 가진 것과 원하는 것이 일치할 때 발현되는 법이다.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은 이미 내면에 덕을 지녔기에 자연에 일치하는 삶,신의 뜻을 따르는 삶, 덕을 행하는 삶의 자세가 행복의 길이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본질과 배치되는 것, 즉 감정이나 정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욕주의'가 여기에서 나왔다.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했다. 흔히 이들을 '쾌락주의'로 표현하기에 스토아학파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쾌락주의로만 설명한다면 오해의 소지가 생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이란 '고통의 부재' 상태를 의미했다. 고통이 없는 상태로서의 쾌락은 '몸의 쾌락'과 '정신의 쾌락' 모두 중요한데, 고통이 없는 신체의 상태는 아포니아(aponia),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난 마음의 평안함은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고통 없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세계를 단지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보고, 개별적인 인간의 행복을 탐구하는데 집중하였던 에피쿠로스 학파는 개인의 경험을 대단히 중요시했다.보다 개인주의적이었던 그들의 해답은 단순했다. 무언가를 행하였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기에 이것을 추구하면 된다. 행복이란 즐거움이요, 즐거움이란 하나의 진정한 '선'이 된다. 직접 경험하여 본 결과 감각적인 즐거움보다는 지적인 즐거움, 즉 아타락시아를 추구하였을 때 가장 행복한데, 이러한 최상의 행복은 선을 행하는 것, 덕을 실천하는 데서 나온다.
덕에 관한 입장 차이가 두 학파에서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나타나는 지점이다. 스토아학파의 덕은 목적인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의 덕은 수단이다. 스토아학파가 덕을 인간의 본질이자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는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덕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덕을 실천했더니 즐거웠다는 경험이 중요할 뿐이다.
그렇다면 봉사를 외치던 냉면집 사장님의 환한 미소의 출처는 과연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자연을 닮은 그의 선한 본성과 선행의 실천이 합일하는데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정기적인 봉사라는 선행을 통해 얻게 되는 진정한 즐거움, 아타락시아가 발현되는 것이었을까? 냉면 한 그릇 사 먹으며 덩달아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괜시리 마음이 좋아지던 내 기분은 또 무슨 관계가 있을까?
참고자료
-민석홍, <서양사개론>, 삼영사, 2012.
-백경옥,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문화>>, <서양고대사강의>, 한울아카데미, 2011.
여담이지만 세계와 개인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크리스트교라는 세계 종교의 확산으로 이어진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대목이다. 세계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절대자 유일신이 인간 개개인을 지독히도 사랑한 나머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신 그 자체이기도 한 그의 독생자를 희생시킨다는 스토리텔링은 새로운 세계와 개인의 존재에 관한 의문 모두를 벽하게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동방에서 들어온 신비 종교가 여러 박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일 듯 로마라는 세계 제국을 집어삼킨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