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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스토리덩어리예요

by 해처럼



여기 있는 나 자신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귀하 자신이 ‘나‘라고 느끼는 그 존재를 일컫는 말은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자아’는 자신이 무심코 혹은 우연히 혹은 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쌓아온 스토리텔링의 결과라고 한다. 스토리텔링. 스스로가 기억 속에 누적해 온 스토리덩어리가 곧 자아라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스토리는 자신이 구축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만일 어떤 조치랄까, 전환이랄까를 취하지 않고 계속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기억하고 스토리를 쌓아간다면 자아는 똑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몸집을 불린다. 작은 눈덩이를 뭉쳐서 계속 굴려 커다란 눈덩이를 만드는 것처럼.

흔히 말하는 MBTI 역시 그렇게 쌓아온 자신의 태도,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자신의 스토리텔링이 어떤 종류인지 보여주는 것이고 말이다.

만일 그러한 자신의 자아에 대해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이제부터는 다른 눈뭉치로서의 자아를 굴리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 희망적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심리학자에게 털어놓는 것을 듣고 앗, 너무 나 같잖아 싶었다. 상담자는 자신을 백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색으로 물드는 자신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내면은 각자의 색으로 뒤덮여 다양한 색채를 담게 된다고. 그러고 나면 필연적으로 타인들의 색을 지우는 작업을 -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매우 피곤하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 비슷한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책의 저자도 비슷한 성격인지 자신의 성격이야기를 하며 ‘백지 같은 사람‘ 비유와 아주 유사한 ‘카멜레온 껍질‘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접하는 환경에(사람에) 따라 자신의 색깔이 변해간다면서. 이렇게 찰떡같은 비유라니!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맞춰주는 식으로 모든 상황을 조정해 간다. 장소를 고를 때나, 메뉴를 정할 때도, 화제를 이끌어갈 때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끊임없이 배려하고 있는 나를 느낀다. 그렇게 만남을 갖고 나면 즉각적으로 엄청난 피로의 덩어리에 펀치를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것들을 인식한 것도 최근이고, 이전에는 왜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그렇게 커다란 피로의 뭉텅이를 느끼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만남을 줄여나가고 있었던 거다.







Illustrated by eehee 해처럼의 일러스트


심리학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종의 인정 욕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인정 욕망?? 오 그럴 수 있겠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충격도 받았다.

인정욕망이 심화된 버전이 인정중독이라고 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괴로워지고 불행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인정중독이다. 다른 이들을 만나 (나름 배려하느라) 피곤한 것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이 심리 역시 인정욕망에 해당된다. 사실 인정욕망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다고 한다.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는 평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솔직히 말해 늘 칭찬 듣는 것에 무척 익숙해져 있는 어린이였다. 친척집에 가도 어디나 환영받았다. 어른들이 예뻐했다. 그런 방식으로 자연스레 나의 자아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온 것이다. 그것이 지금 여기까지 이르렀지.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다 보면 과정과 결과와 평가의 순서가 어느 순간 뒤섞여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자아가 길들여진다. 다른 것이 아닌’ 타인의 평가에 의해’ 말이다. 지금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중요하다. 그간 ‘난 왜 그러는 걸까 ‘ 하며 이에 대해 그저 타고난 성격이라고 안타까워했을 뿐이었다. 성격이 아니라 행동의 패턴이고 그렇게 마음의 길을 닦아왔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그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뜻이다. 변화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스스로가 어떠한 상황을 겪으며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인정욕망 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정욕망은 그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나하나 점검해 가며 내 스토리텔링을, 스토리덩어리를 만들어가고 싶다. 새로운 스토리를.

자아라는 것이 스토리, 스토리들의 뭉치를 굴려가며 만들어지는 것임을 잘 기억해야지. 눈뭉치를 굴리는 방식, 그 길에 쌓여있는 것들을 취하는 방식들에 변화를 준다면 조금은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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