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이었다. 성격이 고약했던 한 친구가 어느 날 매우 무례하게도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던졌다.
“넌, 센스가 없어.”
응? 넌센스? 얘가 지금 나더러 넌센스가 없다는 건가? 잠시 혼동했으나, 아니었다. 그건 ‘센스가 없다’고 하는 노골적인 비난의 말이었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째서 그런 말이 그 입에서 도출되었는지 전후 맥락은 전혀 기억에 없다. 오직 문장만 남았다. 센스가 없다, 고 하는 그 엄연한 하나의 정의 말이다. 그 친구와는 이후 더 가까워질 일이 없었지만 그 문장만은 이상하게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아마 내 내면의 어떤 부분이 그 말에 심히 찔렸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센스’라는 개념은 오래도록 나를 쫓아다녔다. 꽤 자주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나는 ‘센스’라는 말을 묵상했다. 그리고 그 말을 싫어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고 노트북이 필요해 구매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트북의 이름은 ‘센스’였다. 그 지나치게 센스 없던 노트북 ’센스’는 잦은 오류로 인해 밤샘 작업한 원고를 제로로 만들어버리곤 하며 나를 괴롭혔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센스라는 말과 나는 앙숙이 되었다.
노트북 센스를 버리고 다른 것으로 마련하고도 한참 지난 어느 시점에 또다시 문득, 그 ‘센스’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육성되고 고양되는 걸까. 나는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시 그 두 글자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 우선 센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책을 뒤졌다. 물론 ’센스에 관한 ‘ 책은 아니었다.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저자의 결과물들을 흡수하듯 읽으며 문득문득 ‘센스가 없다 ‘는 말을 떠올리는 정도였다. 왠지 ‘센스‘에 대한 직접적인 책을 읽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그런 것을 다루는 책조차 찾을 수 없었지만.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살기 시작한 무렵, 서점가를 어슬렁거리다 잡지 코너에 우뚝 섰다. 한국에서였다면 잡지 코너 같은 건 무시하며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모름지기 당시의 나에게 서점이라는 곳은 신성한 문자를 읽고 그것이 발산하는 가치를 발견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림과 사진이 글자보다 더 우선시 되는 잡지라는 장르는 당연히 무시해야 할 무엇이었고 미용실에서나 뒤적거리는 장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단 이야기다. 하지만 일본의 한 서점에서 마주친 잡지 코너에 서서 나는 사막의 오아시스에 닿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매력적인 표지의 한 잡지 위에 손을 내밀고 나도 모르게 책을 열어 정신없이 내용을 ‘보고’ 있었다. 읽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사진을 보며 사진과 글의 배치를 관찰했다. 그때 돌연 문제의 그 단어가 내 안쪽에서 들려왔다.
아?
아아!
아아아~~!!
잡지라는 것의 궁극적 존재 이유가 바로 혹시 내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센스’ 인지도 몰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영역에서 작고 큰 센스를 알려주는 책, 그것이 바로 잡지라는 세계구나. 인테리어 잡지라면 인테리어 센스를, 패션 잡지라면 패션 센스를, 요리 잡지와 자동차 잡지는 각 영역에서의 센스를, 라이프 전반을 다루는 잡지라면 삶의 방식에 대한 센스를! 그랬다. 잡지들이 가리키고 있는 바는 명확했다. 그것들이 손가락을 뻗어 하나같이 가리키는 지향점은 넓고 광활한 우주에서 오묘하게 빛나는 ‘센스’라는 별이었다!
잡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바로 그 시점부터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잡지를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쉽게 집어들 수 있는 책의 한 종류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 않을까.
잡지의 ‘잡(雜)’이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것들을 섞어서 한 데로 모은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 잡지 안에서 각각의 소재들이 하나로 만나 나름의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많은 것들이 섞여 새롭게 하나의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그리하여 잡지 한 권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니게 된다. 영어로 잡지를 뜻하는 magazine은 원래 아랍어로 ‘저장소’를 뜻하는 مخازن(makhāzin)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후에 유럽에서 ‘지식을 모아둔 저장소‘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일본에서는 서양의 문물을 자신들의 말로 번역하던 시기, 매거진을 잡지(雜誌)라는 말로 번역했다고 한다. 단순히 여러 기록들을 모아둔 책을 넘어서서 정기 간행물로서의 잡지 개념도 일본에서 확립했다고 한다. 잡지는 그 이름의 유래처럼 시대와 언어를 넘어 무언가를 담고, 모으고, 보여주는 그릇의 기능을 해왔다. 그릇의 형태가 책이든, 웹사이트든, 혹은 디지털 매거진이든 말이다.
일본에서 오래도록 머물면서도 여전히 이 나라의 언어에 대해서는 수줍음과 소심함이 매일매일 더 커져가는 나로서는 서점에 가면 우선 잡지 코너를 향한다. 일본의 잡지 시장은 그 장르가 상상 이상으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볼거리가 풍부하다. 패션 잡지라고 하면, 나이가 어린데 엄마가 된 이들을 위한 패션지, 영유아 엄마들을 위한 패션지, 초등생 이상 엄마 패션지, 중년의 패션지, 노년의 패션지, 유럽 패션만 다루는 패션지 등등 겨냥하는 독자층도 다양하다. 또 인테리어 잡지라면 내추럴풍 인테리어부터 북유럽, 엔틱, 일본풍 인테리어 등 세세하게 나뉘어 있다. 카페에 대한 잡지도 카페의 지역별, 종류별로 나뉘어있고, 스포츠, 자동차, 여행 등등 모두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엄청난 물량과 테마를 자랑한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이 대개는 그중 한 두 개와는 일치하는 지점이 있는 법인지라 잡지들은 어떻든 잘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잡지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보통의 책이 이성과 지성의 영역을 건드린다면 잡지라는 장르는 감성을 터치한다. 개인적으로는 감성을 넘어 오래도록 헤매오던 ‘센스’의 영역까지 다루어주고 있어 고맙지 뭔가. ‘센스를 기르는 책’으로서의 깊고 풍부한 잡지의 세계를 비로소 발견했다. '잡지'야 말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자 센스 교과서이다. 책이라는 형태를 한 엔터테인먼트라 정의하면 너무 과장이려나?
그리하여,
이 시리즈에서는 일본에서 만난 풍요로운 잡지들의 카테고리 중 필자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온 잡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안에는 깜짝 놀라는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집과 장소들이 있고, 멋지고 값비싼 상품들이 있고, 단면의 모습일지라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삶의 방식들이 있다. 그리고 적어도 잡지에 소개될 정도의 독특한 매력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카테고리를 관통하는 삶의 ‘센스’가 흐르고 있다. 페이지를 팔락 팔락 넘기다 보면 행간에 숨어있는 센스 넘치는 공기를 누구든 마음껏 흡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센스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또는 센스가 넘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 어느 쪽도 관계없다. 잡지의 매력은 발견하여 그것을 움켜쥐는 사람의 것일지니~.
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