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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pr 08. 2021

강아지 독박 육아

동물에겐 사람과 마찬가지로 돌봄 노동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다짐에는 유자녀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육아를 서로에게 미루는 모습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공동행위로 생긴 자녀의 육아를 조금이나마 회피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미루는 사람들이 딱하게 느껴졌다. 내 생애 결코 겪고 싶지 않은 모습, 육아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살풍경이었다.


그런데 모카를 데려오면서 이 살풍경을 간과했음을 단 하루 만에 알아차렸다. 당시 지방에서 장기출장 중이던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낼 때였다. 남편이 월요일 새벽 출장지로 떠나고 평일에 홀로 모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자 예상치 못한 ‘돌봄 노동’의 서막이 열렸다.


일단 모카의 배변훈련이 끝날 때까지 하루에 열 번 이상 걸레질을 해야 다. 아주 어린 강아지는 하루에 소변을 8~10번쯤 보고, 콩알만 한 대변도 3~4번쯤 한다. 콩알만 하기 때문에 괜찮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자신의 소변과 대변을 밟았는지도 모른 채 해맑게 집안을 누비고 다니는 강아지 때문에 발견 즉시 물걸레질을 하고 탈취제를 뿌려야 한다. 자꾸 물이 닿으니 손은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졌다.


또 바닥에만 실례를 한다면 모를까, 발매트와 러그에도 하는 바람에 매일같이 이불빨래를 했다. 고민 끝에 훈련이 마무리될 때까지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기로 했지만 욕실 문 앞에 규조토는 치우지 못했다. 이게 화근이었을까. 모카는 규조토에 소변도 대변도 봤다. 규조토는 액체를 흡수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모카의 소변을 쑥쑥 흡수하고 대변의 수분까지 남김없이 흡수한 규조토는 아무리 닦아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규조토는 세상을 떴다.

치명적으로 귀여운 오줌싸개


이 무렵 모카는 하루에 밥을 4번 먹었다. 어려서인지 식욕이 왕성했다. 4번 밥을 먹고도 식탐이 넘쳐 뭐든 입에 넣으려 했다. 내가 먹던 커피에 입을 대려 했고,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 발목을 핥으며 자기도 먹겠다고 아옹다옹했다. 바닥에 뭐라도 떨어지면 모카 입으로 들어갈까 봐 집 청소도 매일 했다.


또 집에서 일하는 내가 서재에 앉아 업무를 보려면 발목에 엉겨 붙어 놀아줄 때까지 징징거렸다. 놀아주지 않으면 상상 초월의 행동을 했다. 일하는 내 눈을 피해 거실 테이블 다리를 갉았고, 쿠션을 물어뜯었다. 누가 늑대의 후손 아니랄까 봐 뜯고 갉는 데 재능을 드러냈다.


말썽 부리는 모카 덕에 마음 놓고 업무를 볼 수 없으니 온종일 가시방석이었다. 잠은 어찌나 빨리 깨는지, 새벽 5시면 일어나라고 하울링을 했다. 장기출장을 떠난 남편은 주말에 와서 잠깐 모카의 재롱을 보면 그만이지만 나는 평일 내내 ‘독박 개 육아’에 시달리며 업무까지 진행해야 했다.


위태로웠던 독박 육아 중 우리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지방 취재가 잡히면서 모카를 호텔에 맡겨야 할 때였다. 반려견 호텔과 병원마다 전화를 걸어보고 거절 의사를 되돌려 받던 중 너무 지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변을 돌려받았다.

“음, 그렇구나. 나는 출장 와있어서 어쩔 수 없네.”

아빠 이제 그러지 마세효... 모카도 다 들었다고효..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 전화를 걸었는데 남편은 마치 자신에게 모카를 맡길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선을 그었다. 육아에서 발을 빼고 아내에게 슬쩍 떠넘기는 남편이란 이런 건가? 개를 키우면서 사람 육아의 폐해를 경험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편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말투를 들으니 내 마음에도 작은 불씨가 지펴졌다.


“그래, 여보는 출장 중이니 어쩔 수 없지.”

“응, 나는 일정이 있어.”

“그래, 나도 일정이 있어.”

“응, 모카는 어디 맡기고 다녀와.”

“아니, 나는 일정이 있어, 여보처럼.”

“그게 무슨 말이야?”

“모카를 어디 맡기든, 뭘 하든 나 역시 여보처럼 일정이 있으니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넘어가지 말란 뜻이야.”


그리고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이럴 거면 다음 주 출장지 내려갈 때 모카 데려가서 네가 키워.”


절망이었다. 육아를 미루는 부부를 보며 학을 떼던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는 문제로 이렇게 날을 세우게 되다니. 우리는 그날 전화기를 붙들고 큰 소리를 내며 싸웠고, 이후에도 강아지 돌봄 노동을 어떻게 분배하느냐로 6개월가량 치열하게 싸웠다.


정말 유치하게도 나는 이만큼 했네, 나도 이만큼 했네, 하며 우리 부부는 똑같이 자신이 더 많이 돌봤다고 주장했다. 모카가 배변을 하면 당장 가서 치워야 하는데도 서로 모른 척하며 상대가 치우길 바랄 땐 더 절망할 구석도 없는 끄트머리라고 느꼈다.

반려견운동장카페에서. 야성미 느껴지는 모카의 달리기

돌봄 노동의 분담도 그렇지만 돌봄의 방식에 있어서도 갈등이 빚어졌다. 나는 업무시간 중 잠시 휴식하는 시간마다 모카의 노즈워크를 만들어주거나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고, 터그 놀이도 숱하게 했다.


반면 남편은 내가 모카와 놀아주라고 등을 떠밀어야 겨우 거실에 앉아서 한 손으로 핸드폰을 하면서 한 손을 휘젓는 자세를 취했다. 마치 투명한 공기 속에서 지휘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허공을 맴도는 손짓에 맞춰 모카가 놀아주길 바란 걸까? 남편이 그런 해괴한 동작을 할 때 모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분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동물을 키우며 흔히 책임감을 말한다. 하지만 그 책임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술술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책임감이라는 단어에 담긴 수많은 항목을 모두 아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래서 책임감이 결여된 이들은 반려견과 외출할 때 배변봉투와 목줄을 반드시 챙겨야 할 이유와 한겨울에는 옷가지 하나라도 걸쳐서 데리고 나가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 예방접종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와 교감하며 놀아줘야 할 필요성, 집을 비울 때 반려동물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고 돌아와서는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수많은 책임감을 깨닫지 못한다. 산책 중에 핸드폰을 만지는 행동도 얼마나 무책임한지는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한다.

요즘 모카

나 역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책임감을 모카를 키우며 깨닫고 배웠다. 반면 똑같이 반려 생활을 시작했음에도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한 손은 공기를 휘휘 젓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지금은 모카의 돌봄 노동을 분담하면서 대부분의 갈등이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한 번씩 자신이 해야 할 노동을 떠미는 남편을 볼 때면 대한민국의 천만 가구에서 터져 나오는 독박 육아의 울분이 우리 집에서도 벌어진다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살아있는 동물을 분양받아 가족처럼 대우하고 키우려면 반드시 필요한 돌봄 노동과 집 밖에서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 싫고 번거롭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지금 당장 완구점으로 가서 귀엽게 생긴 동물 인형을 사서 집안에 둘 것. 배변을 치우지 않아도 되고 목줄을 채울 필요가 없고 언제나 예쁜 얼굴만 고수하는 동물 인형을 갖는 것 외엔 반려 생활의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방법은 영영 없다. 반려동물이란 함께 하는 즐거움과 건강한 생활에 비례하는 돌봄 노동과 책임감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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