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04 _ 돈키호테 03
액자 속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풀려지는 과정에서 ‘그치, 내가 소설을 읽고 있지’ 하며 작가 세르반테스에 대해 생각한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기사소설을 쓰고는 있지만 여느 작가들과 다르다고 못 박는다.
기사소설에 대한 우려(스페인 기사소설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소설 자체의 비현실성과 환상적인 성격으로 당시 도덕학자와 신학자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면서 평가절하되었음)에 대해서 ‘돈키호테와 같은 허황된 인물이 만들어지더라도 정작 독자 본인이 우울하거나 상태가 나쁠 때에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기사소설은 허무맹랑하지만 현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시름을 잊게 하는 힘이 있으며,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소설이 어떻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기분이 좋은 대로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교만한 속인들의 황당한 비판에 매이고 싶지 않기도 했고, 많은 바보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몇 안 되는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게 낫기는 하다."
"예술이 요구하는 대로 기획되고 제대로 된 줄거리를 갖춘 작품들은 불과 너덧 명의 생각 깊은 사람들만을 이해시킬 수 있을 뿐 그 밖에는 쓸모가 없다."
"극이라는 것은 인간 삶의 거울이자 풍습의 본보기이며 진실의 이미지여야 하는데, 요즘 상연되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엉터리 짓거리의 거울이자 바보짓의 본보기이며 음탕한 영상물이다."
"편력 기사들의 일을 모두 망상이며 어리석고 정신 나간 일로만 생각할 뿐 사실은 모든 게 그 반대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다니 어찌 된 일인가." 등
그는 작가로서 시대 요구의 예술, 법칙을 지켜야 하더라도 작가가 출중하면 진정한 예술을 펼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들에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바로 그 작품들에서 작가의 훌륭한 재능이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소설에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길고도 넓은 공간으로 붓을 놀려 난파나 폭풍우나 충돌이나 전투들을 묘사할 수 있고 ~ " p.724-725 (거침없는 붓놀림-예술)
"법칙을 지켰다고 해서 작품 그 자체의 장점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사람들이 다들 즐겁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보시라는 겁니다. 잘못은 엉터리 극을 요구하는 속인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보여 줄 줄 모르는 사람들한테 있다는 것이죠." P. 728
그는 ‘그 시대 예술이라는 정의’와 ‘검열이라는 제도’ 앞에서 작가 자신이 다른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평온한 문체와 기발한 창의력으로 될 수 있는 한 사실에 가깝게 묘사한다면 그것은 곧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매듭으로 직조된 천을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끝내 놓고 난 뒤 작품이 그런 완벽성과 아름다움을 보인다면 글쓰기로써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죠." p.725
돈키호테 속 익살스런 대박 표현을 꼽자면
그의 입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총알보다도 더 세차게 뿜어져 나와 동정심 많은 산초의 수염은 토사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제1권 p. 257)
아직 아침 10시도 안 됐는데 한밤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고, 그런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느릅나무에서 배를 따다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제1권 p. 319)
당나귀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자기 귀를 때리던 돌팔매의 폭풍이 아직 그치지 않은 줄 알고 이따금식 귀를 흔들고 있었다. (제1권 P. 320)
현자가 들려주는 교훈적 내용을 꼽자면
물러나는 것은 달아나는 것이 아니며, 위험이 희망을 앞지를 때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분별 있는 행동이 아니다. 지혜로운 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삼갈 줄 알고, 하루에 모든 것을 모험하지 않는다. (제1권 P. 322)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찾아 물건을 돌려줘야 하네. 만일 우리가 그 사람을 찾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주인이 아닐까 하는 의식이 점점 더 강렬해지다가 마치 그 사람이 정말 주인인 것처럼 되어서 엄청난 죄의식이 생겨날 걸세. (제1권 P. 330)
자네 눈에 이발사 대야로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맘브리노의 투구로 보이는 걸세. 이발사의 대야로만 봤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단 말일세. (제1권 P. 357)
직무의 권위상 가끔은 겸손한 마음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걸세. 어려운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의 훌륭한 몸가짐이란 그 직책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야 하기 때문일세 (제2권 P. 637)
사랑이라는 것이 진행될 때에는 존경도 모르고 이성의 한계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조건에 있어 죽음과 똑같다는 것을 말일세. 사랑은 목동의 초라한 오두막이나 왕의 높은 성이나 가리지 않고 덮친다네. 그리고 한 영혼을 완전히 장악했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짓이 바로 두려움과 수치심을 빼앗아 버리는 일이지 (제2권 P. 706)
#돈키호테1,2(안영옥 옮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