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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l 26. 2020

담백한 주역 <15.지산겸괘地山謙卦>-괘사

겸손하라. 끝이 아름다울 것이다. 


없는 사실도 지어내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외부에 드러내라고 추동하는 PR과 브랜딩의 세상에서, 분명한 사실도 아닌 것처럼 감추고 몸을 낮추며 사는 사람의 태도는 어리석어 보이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진정 크고 높은 사람만이 자신의 허리와 무릎을 굽혀 땅과 가까워질 수 있지요. 돈의 액수와 권력의 강도를 자신의 키로 착각하는 사람은 끝이 좋기 어렵습니다. 인간이 뿌리박고 사는 땅과 갈수록 멀어지니 결국 땅에서 뿌리 뽑힌 채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謙 亨 君子有終

겸 형 군자유종


-형통하다. 군자라면 유종의 미가 있을 것이다. 



<서괘전>에 '有大者 不可以盈 故受之以謙 유대자 불가이영 고수지이겸'이라고 했습니다. '크게 가진 자는 교만하면 안 되니 지산겸괘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영盈은 '차다', '가득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지요. 가득 차 있다는 것은 곧 비우지 못한 마음 상태를 의미합니다. 덜어 내야 채울 것이 생기는 법인데 마음 안이 에고ego로 꽉 들어차 있어 타자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으니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사람은 물질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되기 쉽습니다. 소유가 누리게 해주는 안락과 쾌락, 타인들이 건네는 선망의 시선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이치, 우리가 사는 세계를 관통하는 유일한 진리라고 주역은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골고루 누려야 할 것이 잠시 자기에게 몰려왔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 부富란 다만 일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 머물기만 하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밤거리를 휘황찬란하게 채운 조명들은 유혹과 과시, 세뇌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현란한 인공의 빛들은 소유를 목적으로 그곳에서 그렇게 반짝이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얻기를 바라는 동안 우리는 함께 잃고 있습니다. "내 돈 내고 내가 장식한다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다들 당당하게 말하겠지요. 돈은 인간이 만든 궁극의 허상과 같습니다. 밤하늘을 어둡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작위적인 빛들에서 저는 고갈되는 지구의 자원을 봅니다. 단축되어 가는 지구의 운명을 느낍니다. 우리의 세계는 우리와 함께 매순간 소멸하고 있습니다.


지산겸괘는 구삼이 유일한 양입니다. 대성괘의 삼효는 내괘의 중中을 얻어 오효와 응應하는 것도 아니요, 외괘로 나가 오효와 비比의 관계를 형성하지도 못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보다 부족한 음들로 채워져 있는 주변을 보며 우쭐대기 쉽습니다. 하지만 겸손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를 입게 됩니다. 구삼은 권력을 가진 리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은 물질을 잃게 될 때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가졌던 것은 그저 물질뿐이었음을.


하지만 지산겸괘의 구삼은 득위한 유일한 양으로서 군자의 상입니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지요. 따라서 몸과 마음을 낮추기에 부유함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산겸괘는 땅 속에 산이 들어 있는 상입니다. 사람으로 보면 거산巨山과 같은 큰 인물이 자신을 뽐내는 대신 낮은 곳으로 내려와 공손한 태도와 겸양의 미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군자에게는 '유종지미有終之美'가 있을 것이라고 주역은 얘기합니다. 과정의 영광이 끝의 아름다움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범인들은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이들의 안타까운 마무리에서 우리는 그것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날마다 성찰하는 자세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산겸괘의 호괘는 40괘 뇌수해괘입니다. 겸손함을 갖춘다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함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할 것이 더 있습니다. 겸손은 부유한 사람들만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닙니다.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아집은 우리가 사람에게서 느끼게 되는 겸손하지 않음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틀렸다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을지라도 자기 입장을 확고히 정해 둔 채 타협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것 역시 마음이 자기로 가득하기(盈) 때문입니다. 자기를 내세우겠다,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겠다는 오만의 발로입니다.   


상대의 말과 글을 전체 맥락에서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것 역시 겸손과는 거리가 먼 태도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악의적인 의도가 깔려 있기 십상입니다. 그 의도가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맥락에 담긴 인식과 취지를 깡그리 무시한 채 기획된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언문言文을 남발하는 언론과 수구 세력에게서 참을 수 없는 천박함을 느낍니다. 겸손하지 않으니 그들에게 유종의 미가 있게 될 리 만무합니다. 제 얘기가 아니라 주역의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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