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시장 여성상인 구술생애사]_‘종로연떡방’ 황성연
강원도 탄광촌부터 전라도 끝자락까지 1960년대 서민의 딸로 태어나 고군분투해온 망원시장 여성상인 9인의 생애를 담은 책 <오늘은 맑음>이 나왔다. 제각각 무늬는 다르지만 그녀들의 삶의 고비마다 겹치는 궤적은 이 땅의 5060세대 여성의 보편적인 서사를 짐작게 한다. 또한 그녀들의 이야기에는 자영업자로 생존하기 위한 분투가 담겨 있다.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여성 필자 9인과 함께 이를 채록했다. 그 가운데, 망원시장에서 11년째 떡집을 운영 중인 '종로연떡방'의 황성연 상인을 만난 이야기를 정리했다.
*1편 먼저 보고 오기 https://brunch.co.kr/@orogio/13
[2012년] 길거리로 나선 망원시장 상인들
2011년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해 여름, 합정역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설 거라는 소식에 상인들이 술렁거렸다. 상인회가 구청에 직접 문의했더니 ‘2012년 8월 입점 예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미 2007년 망원역 인근에 들어선 SSM이 망원시장을 코앞에서 위협하던 터였다. 이대로 대기업 자본에 포위되면 시장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통계는 비관적인 앞날을 예고했다. 2003~2010년 대형마트와 SSM이 632곳 늘어나는 동안 전통시장 178곳이 사라졌다.
2012년, 상인들은 절망 대신 저항과 연대, 희망을 선택했다. 이웃한 월드컵시장 상인들을 비롯, 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해 대형마트 입점 저지 투쟁에 나섰다. ‘합정동 홈플러스 NO'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맞춰 입고 주민들로부터 반대 서명을 받았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기 어렵다는 상인들이 다섯 차례나 동맹 휴업을 하고 여의도로, 합정으로 가두시위에 나섰다. 전국의 전통시장들이 제대로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스러졌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그들은 어떻게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에 나설 수 있었던 걸까?
“만약 몇몇 사람의 의지와 설득이 없었다면 우리도 걱정만 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몇몇 사람들이 당차게 나서서 우리가 해야겠다 해서 같이 나선 거거든요. 집행부가 자기 생업을 버리다시피 하면서 워낙에 열심히 했어요. 우리 부부는 새벽에 일어나서 떡 만들고 저녁 열 시에 문 닫고 나면 새벽 두세 시까지 회의하고 기획하고 그랬어요. 또 술 한잔하면 새벽 네 시다, 그럼 두세 시간 자고 나와서 일을 하는 거야.
다른 상인들도 당장 생업이 걸려 있으니까 피터지게 싸우는 거죠. 다섯 번이나 철시를 했는데, ‘왜 문 닫냐’ 이런 얘기 당연히 나오죠. 사람이 많으니까…그래도 닫자고 하면 닫고, 여의도 가자고 하면 가고, 본사에도 가고, 마포구청도 가서 데모하고 엄청났죠. 여기서부터 뚫고 마포대교 앞까지 걸어가고 막 그랬어요.”
2008년 아케이드 설치 사업 때도 그랬듯이 2012년에도 ‘백 퍼센트 동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끈끈한 연으로 맺어진 사조직(십자매, 좋은사람 등)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힘이 되어 주었다. 이들은 전에 그러했듯 다른 의견을 가진 상인들도 끊임없이 만났다. 자기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설득과 대화에 나선 결과,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 생겨났다. 이는 망원시장 사람들이 장장 1년 6개월에 걸쳐 입점 저지 투쟁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2013~현재] 절반의 승리와 연대의 연쇄작용
다 함께 목소리를 내니 세상이 반응했다. 2013년 2월, 서울시의 중재로, 홈플러스와 비상대책위원회는 상생협약을 맺었다. 대형마트에서 일부 품목의 판매를 제한하고, 망원역 인근의 SSM을 철수하며, 대형마트에서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의 고객센터 부지를 매입해주는 조건이었다. 애초에 ‘입점 반대’라는 슬로건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였지만, 망원시장은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나갔다.
“우리는 입점 철회하라는 게 조건이었는데, 중재를 한 거야. 어쨌든 마포구청에서 이미 허가 났고 안 들어오는 거 아니니까 품목의 제한을 두자는 거야. 근데 이런 거 있잖아, 고기도 그중에서 한우로 된 어디 부위 하나, 마른 대추인가 뭐 그런 거야. 누가 그렇게 먹는다고 품목 제한을 해. 시장 상인이나 집행부에서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었어요.
중재하는 사람도 이거라도 받자는 게 아니라 받아서 좋은 일에 쓰자 이렇게 해서 길게 싸웠지. 홈플러스에서도 뭐 그러면… 언제까지 데모를 할 거예요. 13억을 받았잖아요. 이거를 받아서 우리는 바로 이 건물 사서 2층은 고객센터로 쓰고 있어요. 1층은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커피숍이에요. 우리랑 같이 투쟁했기 때문에 서로 돕는 차원에서 인테리어랑 커피 머신까지 설치하고 임대해줬어요. 주민들이 쓴다고 하면 공간도 빌려주고 그래요.”
2015년 문을 연 고객센터를 중심으로 망원시장 발전을 위한 다양한 실험이 이어졌다. 먼저 배송센터를 설치했다. “배송센터에 직원이 세 명 있어요. 5킬로 넘으면 2000원 받고 배송해주고. 전화로 주문하는 사람 많아요. 돼지고기 한 근, 계란 한 판, 두부 한 모, 전화로 주문해요” ‘걱정마요, 김대리’는 공공기관과 기업체에 간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인근의 홍익대학교에서 축제가 열릴 때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해, 주점에서 판매할 음식을 주문한다. 시범운영한 첫 해에만 해도 트럭 세 대를 동원해 음식을 실어 날랐을 정도라고 한다.(참조 기사: http://www.moreunikka.com/sub_read.html?uid=7355)
매년 어린이날에는 놀이한마당을 열어 지역주민들과 한바탕 먹고 어울린다. 여성상인들의 젬베 동아리 ‘망디스’ 공연은 덤이다. 모두 상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2008년 아케이드 설치 사업, 2012년 홈플러스 투쟁을 하며 똘똘 뭉쳐야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한 망원시장 상인들은 오늘도 연대의 눈덩이를 굴려가는 중이다.
“이제는 장사하면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인터뷰 내내 그녀의 입에서는 떡 이름들이 찰지게 쏟아졌다. “시루떡 나오면 편떡 나오고, 편떡 나왔으면 모시떡 나오고, 모시떡 나오고 나면 개떡 나오고, 개떡 나오고나면, 설기떡 나오고, 설기떡 나왔으면 찰떡 나오고, 매시간 떡이 계~속 쏟아지는 거야.” 새벽 다섯 시부터 떡 만드는 일이 분명 고단했을 터인데, 황성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치 타령처럼 랩처럼 흥겹게 들렸다. 기본적으로 쌀은 오대미에 다른 재료도 국산 A급만 써서 정말 맛있단다. 얼굴과 이름을 걸고 주인된 노동을 하는 자 특유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종로연떡방에서 저녁 6시 전에는 절대 할인 판매를 하지 않는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칙이기 때문에 안 해. 약속이니까 지키려고 하는 거지. 그래야 나 자신하고 한 약속도 지킬 거 아냐. ‘아휴, 그래 세일하는데 한 포에 단돈 몇천 원이라도 싸게 파는 거 쓰자, 그러면 쌀은 몇십 만원 절약되고, 1년이면 몇백 만원이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저렴한 거 쓸 수밖에 없잖아.”
단호박 같은 그녀도 가끔은 손님들 때문에 속상할 때가 있다. 자기도 사람인지라 어떤 날은 떡이 좀 무르고 어떤 날은 좀 단단할 수도 있는데 못 먹을 떡을 팔았다며 항의하는 손님이나, 얼려준 떡을 바꿔치기했다고 의심하는 일부 ‘진상’ 손님들 때문이다. 비단 황성연 상인만의 일은 아니다.
2014년 마포의료복지협동조합, 마포문화재단, 민중의집, 마포구보건소가 상인회 함께 진행한 여성건강사업 설문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이 일하면서 겪는 가장 큰 고충은 감정노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이틀 장사하고 말 게 아니니 웬만하면 고객들한테 맞춰주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에게 가장 큰 보람을 안겨주는 사람도 결국은 손님이다. 떡집 운영만 11년째, 황성연 상인은 이제는 단골손님들과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말한다.
“결혼해서 우리 집에서 답례떡을 한 손님이 있어. 결혼했으니까 회사에 떡 돌린다고. 그러고 1년 있다가 돌떡했어. 그 다음에 애기 수수팥떡을 해. “애기 열 살까지는 해 줘야 돼요.” 그러는 게 지금까지 왔어. 지금도 오면 “어머, 너무 이쁘다! 나이 안 먹어~” 이러면 “아휴 사장님 요즘 살 빠지셨죠!” 이러고. 같이 늙어가는 거지.
작년에 보이던 할머니, 할아버지 안 보이면 돌아가셨나 걱정도 되고 그래. 할머니가 어느 날은 지팡이 짚고 나오시다가 어느 날은 휠체어 타고 나오셔. 작년까지만 해도 쌩쌩하게 소리 지르면서 “이거 왜 떡이 이렇게 작아! 점점 작아져!” 이러던 양반이 손을 흔들면서 “아휴, 내가 기운이 없어.” 이러는 걸 보면 안타깝고. 이제는 장사하면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단순히 떡을 파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 인생이 같이 가는 거잖아.”
여성상인으로 산다는 것은
시장상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60시간을 일한다. 여기에 여성상인들은 끼니 챙기랴, 애들 챙기랴 동동거리기 바빠서 정작 자기 몸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2014 여성건강사업보고서) 여기에 황성연은 상인회 일, 각종 모임까지 다니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사십 대를 보냈다. 요즘은 몸이 나 좀 돌봐달라고 아우성이다.
“시장 아줌마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거든요. 전에 마포구에서 여성건강 사업한다고 설문지를 돌리는데 ‘당신은 아픈데도 참고 일한 적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나 거기서 볼펜을 멈추고 있었잖아요. 이걸 내가 어떻게 써야 되나. 나는 늘 아프거든요. 365일 다 아파요. 어깨가 아프지 않으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지금처럼 감기 걸려 있을 때도 있고.
예전에는 주변에 모이면 다 같이 술 먹었어요. 부어라 마셔라 재밌다 노래방가자, 우리 이렇게 힘든데 술 한잔 마시고 이런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 이랬는데 나이 드니까 모이면 순 아픈 얘기만 해요. 내가 여기 마흔 중반에 왔거든요. 10년 전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마흔 넷은 지금 나한텐 너무 젊은 나이인 거야. 지금 내가 쉰 넷이란 말야. 이 나이에 돌아보면 나는 너무 많이 바뀐 거죠.”
긍정은 나의 무기 “그거 다 할 수 있어, 별거 아니야.”
“이런 상황이 나를 슬프게 할 것인가, 나를 괴롭힐 것인가. 근데 이게 다 슬프지는 않거든. 왜냐면 남한테 손 안 내밀고 내가 돈 벌어서 내 가족이랑 여유 있게 쓰거든요. 그 목적이 단지 내 집을 사고 뭘 사고 단순히 그 문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행은 1년에 딱 두 번 가는데 추석하고 구정하고 명절에 딱 그때만 쉬어요. 명절날 느즈막이 일어나서 가족들이랑 3박 4일 외국 여행을 갔다와요. 그거를 위해서 내년 추석을 기다리고, 돌아오는 구정을 기다리고 하거든요.
나의 모든 원천은 자신감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나는 할 수 있다. 한번도 안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신앙을 갖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서 긍정적인 요소가 많아졌어요. 물론 빚져서 막막할 때가 있었어요. 오늘은 누구네 돈을 갚아야 되는데. 힘들 때도 있지만 그건 순간이야. 제가 술을 좋아하는 게 뭐냐면, 술을 먹으면 긍정적이 돼 사람이. 그거 다 할 수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별 거 아니야 그게 입버릇처럼 됐어요.”
삶에 대한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나간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인생 후배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황성연은 첫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게. 진짜 내가 상인회고 시의원이고 나가면 잘할 텐데.” 참고로 지금껏 망원시장 상인회 회장은 모두 남자였고, 전국상인을 대신해 시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도 남자다. 주어진 위치를 넘어, 그녀가 언젠가 연단 위에 서는 모습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부디 건강 잘 챙기시길, 그리하여 그 열정이 더 큰 빛을 볼 수 있기를.
> 망원시장 여성상인 구술생애사 『오늘은 맑음』바로가기
https://c11.kr/11e9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99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