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 도시락에 대한 예의

토할 때까지 먹진 말자는 가르침을 몸소.. 흑

by orosi


40분에 차 탑니다


부장님 제가 구토가 자꾸 나서
화장실이에요. 금방 갈게요.


탑승시작시간-1:40

현재 시간- 1:38

현재 상황- 아이들도 함께 있는 화장실, 연신 구토 중. 남은 시간 2분. 거리 700미터는 걸어야 주차장. 우리 반 절반은 괴성 지르는 중.

까악~~~~ 웩. 선생님 토해. 웨엑. 윽


방송을 해라 아주. 몰라도 됐을 아이까지 도로 모여든다. 돌겠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ㅠ어떡해..

간혹 이렇게 나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바람직한 9세 여아를 경험하는 보람을 맛보지만, 흐뭇하기 어려운 상황인 건 맞다. 지금 너 근데... 휴대전화는 왜 찾니 도대체. (이런건 어머니께 보고안해도..;;)


기진맥진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내가 그들을 인솔하는 건지, 기어 나오는 나를 애들이 인솔하는 건지 모르게 스물여섯 명 가로줄, 신선하게 집합.


부장님, 저희 반 아이가 멀미가 심해서요. 토하느라 출발이 늦어질 듯합니다.

주어로 치자면 위와 같이! '저희 반 아이가'

뭐 이 정도가 훨씬 어울릴 법 한 날.

오늘은 바로 현장체험학습 날이다.





불과 4시간 전 '체험학습 학생탑승 차량' 안.

다정한 담임교사는 말했다. 이동 1시간 내내 비닐봉지를 들고뛸 그 순간을 대비하여 벨트도 하지 않은 채. 그것도 수시로 말했다.

얘들아, 멀미 나면 바로 얘기해.
괜찮으니까. 선생님 봉지 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어. 대신 차에서 간식 먹지 않아요(아~~ 세상 친절.
누구나 그럴 수 있데ㅠㅅㅜ 아무리
그래도 본인은 좀.)


내 경우는 뭐. 정확히 말하자면 멀미보다는 구토가 적절하다. 차량탑승 전이니까 말이다. (저 멀미는 안 했어요. 오늘! 진. 짜. 예요)



팬데믹 상황으로 모든 단체활동이 꽤 오래 중지되었었다. 노리나 허츠가 말한 고립의 시대를 견디며 내게 가장 아쉬웠던 일이라면, 자유로운 외식, 푸짐한 음식을 주거니 받거니 함께 먹을 기회들의 부재였다.


그나마도 집단활동이 재개된 2022년. 하필 담임을 맡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올해 꽤 오랜만에 아이들과 이른바 소풍을 떠나 온 거다.

이 순간 최교사의 마음이란.


힘들 것을 각오하고도 잔뜩 설렜다. 고열로 몇 날 며칠을 수업도 겨우 하고 연휴 내내 시체처럼 누워 지내다가 행여라도 체험학습날 쓰러져 병가라도 낼까 봐 어제는 생애 처음 "자발적 링거"까지 맞고 왔다.


몸살기 있으세요? 수액 맞으시려면 코로나, 독감 검사 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비급여 7만 원이고요.

얼마든지! 저 내일 소풍 가거든요~~~~


해열진통제 15분, 고함량비타민+마늘주사 50분.

나아라 제발. 씻은 듯이 날 낫게 해 다오.


입에서 마늘냄새 확 올라올 수 있어요.


간호사선생님의 설명에 속으로만 답한다.

'예. 예 얼마든지요. 똥냄새가 올라온데도 괜찮슴다. 얼마만의 체험학습인데요~! 갑니다. 가요.'




지난주 딸아이들 체험학습 땐 며칠 전부터 도시락 쌀 생각에 그렇게 부담스럽더니만.

오늘은 30여 명의 학부모들의 노고에 잠시 묵념 올릴 뿐, '그러거나 말거나'의 태도란 아이들보다 내가 한 술 더 뜬다.

그들의 도시락을 왜 내가! 살짝 기대도 해보는 담임. 으흐~!




탈 날라.

첫 발령지 처녀총각모임에서 동료교사들이 가뿐히 내게 붙여준 별명이다. 기어코 탈이 나고야 말 때까지 먹는 아이. 토할 것 같다는 말을 굳이 하면서도 의지와 무의식을 넘나들며 음식을 욱여넣는 아이.

탈 날라를 위해 까스활명수. 속청. 도 없으면 대충 편의점에서 엇비슷한 위청수를 사두는 남자랑 지금 같이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이렇게 다양한 가정의 요리가 한 자리에 모인 날이면 진심 어린 호기심과 기대감에 몸 둘 바를 모르는 건 인지상정.




쌤~~식사하세요


1~7 각 반 아이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나니 동학년 선생님들께서 교사 테이블로 날 부르신다. 학년회비로 미리 주문한 고봉* 김밥이 우리 몫이다.


아~ 저는 그냥 아이들이랑 먹을게요


여기서 편히 먹지. 아무튼~~
애들 끔찍이도 위한다니까.


저는 이 시간을 깜찍하게 기다렸거든요. 의도가 다분한 답이 오고 갔다. 나의 의도란: 아이들이랑!


젓가락을 뜯기 전

우선 한 바퀴 스캔. 아이들을 끔찍이도 위하는 담임교사는 자고로 이래야지!


-얘들아, 맛있게 먹어.

-어머~ 많이도 싸왔네. 그거 다 먹을 수 있겠어?

천천히 먹어.

-에고. 우리 oo이 어머니 힘드셨겠다야~

-어서 먹어~물도 마시고~!


아이들이란 역시. 활동 내내 그렇게 배고프다 노래를 부르더니만 몇 개 채 집어먹지도 않았건만 과자에 손이 간다.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껏 준비한 딸들의 도시락도 이렇게 버려졌구나 싶어 잠시 열이 오른다.

일주일 전, 과자통 빼고는 아름답게 되돌아온 도시락. 나 호옥시 저거먹고 아픈가?싶다.



대 여섯 명 아이들의 호출에 음료 뚜껑을 친절히 열어 주고는 젓가락을 뜯는다. 빰빰 빠라밤.. 시작!


선생님 김밥하나(?) 먹어봐도 돼?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 안 된다는 아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을 부르는 자세. 아직 따뜻한 우리네 풍경.


고봉*김밥 한 줄을 내팽개쳐 놓은 건 아니다. 이미 깨끗이 비우고도 각 가정만의 고유한 김밥솜씨를 비교체험하는 동안 서서히 위가 차오른다.


몸을 좀 움직여주자. 아직 유부초밥류나 과일은 맛도 못 봤으니. 그래. 내 새끼 잘 있나 얼마나 궁금하시겠어. 사진을 찍읍시다.


부모님께 보내 드릴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이들의 손길을 거절할리 없다. 초코송이 맛이쪄. 치토스 오랜만. 나 신당동떡볶이 좋아하는 거 어뜨케 알았데. 누드초콜릿은 입가심.


이러다 탈 날라.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속을 채우니 감각이 돌아왔나. 그제야 찐다. 날이 꽤 더워서 아이들도 반응한다.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면서도 남은 도시락이 아쉬워 굳이 몇 개 더 집어먹는 나를 말리질 못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남은 활동을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역시나 몸이 무겁다. 영상체험관의 에어컨 바람이 우릴 잠시 살렸고, 그 이후 땡볕의 야외체험에 해열제로 가라앉힌 열이 다시 오른다.


아이들 짚라인을 태워주다 말고 어질. 아찔

앗. 몸이 이상하다. 올게 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그늘로 와서 시간을 체크하고 외쳤다.

얘들아. 학교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가네~ 차 타기 전에 화장실 다녀오자. 손도 깨끗이 씻고, 소변 안 마려워도 꼭 갔다 오기.
그리고


앗. 위가 뒤틀리듯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내가 먼저 화장실로 뛴 건데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 또 개구쟁이 됐다며 신나서 쫓아온다. 울고 싶다.


그렇게 오늘 난 그들이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심심할 때 꺼내 볼 추억 하나 만들어 주었다. 때때마다

멀미가 날 때면, 체험학습 마무리 즈음이면

교사들의 안내에 피식 웃음이 날런지도. 하~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누구나 토할 수 있다는 말을

다시 하지 못했다.



귀여운 나의 아이들아, 잊는다. 잊는다. 잊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