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모든 것을 정리해도 상처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여자는 욕실 거울 앞에 서 상처를 하나씩 만져본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에게 요리를 해주다 데인 왼손 검지에 화상 자국, 두 번째 남자친구의 고양이가 할퀸 자국이 남은 오른쪽 발목, 몇 달 전 헤어진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쓸린 오른쪽 골반의 흉터까지. 평생 넘어져도 흉 하나 지지 않고 살아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연애를 할 때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하나씩 남았다. 이별 후 모든 것을 정리해도 상처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동안에도 이따금 몸의 상처가 눈에 띌 때면 여자는 하릴없이 지난 사람을 떠올렸다. 더 곤욕스러운 건 만나는 사람이 상처에 대해 물었을 때다. 거짓말을 할 줄 몰랐던 여자는 그럴 때마다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사실을 털어놓았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듯 했던 두 남자 모두, 여자가 그렇듯 이따금 그녀의 상처에 눈길이 머물곤 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자는 못내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와 헤어진 지 몇 달이 지났다. 며칠 전부터 몇몇 친구가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여자는 친구들의 제안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로 만날 그 사람에겐 또 어떻게 이 상처를 설명해야 할지, 그 사람도 다른 남자처럼 자신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진 않을지, 이번엔 또 어떤 상처가 내 몸에 남을지 걱정이 앞섰다. 지금까지 세 개. 새로운 만남에서 또 하나의 상처가 생기면, 또 한 번의 이별을 겪으면, 그 다음 사람에겐 네 개의 상처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 다음엔 다섯 개, 여섯 개… 설마 계속해서 이런 일이 생길까 싶지만, 정말 만나는 사람의 수만큼 상처가 늘어간다면, 혹여나 얼굴에 흉이 남아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될 나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다른 이의 흔적을 마주하게 될 누군가는, 괜찮을 수 있을까. 새로운 만남을 걱정하지 않도록, 더 이상 상처가 늘지 않게 누군가 평생 내 곁에 머물러준다면 좋을 텐데. 과연 몇 개의 상처를 입고 나서야 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는 있을까. 차라리 더 이상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면 상처도 늘지 않을 텐데. 극단으로 치닫는 생각도 잠시, 여자는 자신이 혼자 살아갈 만큼 강인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분명 지금의 고민이 무색하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또 한 번의 연애를 시작하겠지. 쓸 데 없는 고민을 다 한다며 여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나 웃음 끝에 못내 씁쓸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욕조에 몸을 담그며 여자는,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은 상처로 남지 않기를, 어떻게 다쳤는지를 묻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보다는 아팠던 곳을 어루만지며 괜찮으냐고, 아프지 않느냐고 말해주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사진 ChrisGold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