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 Feb 26. 2024

일기

1. 들인 지 일 년이 넘어가는 몬스테라가 있다. 저렴한 가격에 혹해선 온라인으로 구입했는데 식물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별로 건강해 보이진 않는 모양새를 갖춘 몬스테라가 도착했다. 곧게 위로 뻗은 줄기가 아닌 산후 탈모 이후 새로 나오는 머리카락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친 째, 키에 비해 훨씬 큰 잎의 무게를 못 견디는지 끝부분은 주르륵 늘어졌다.

원래 좀 그런 건가 하며 지켜본 결과, 아닌 거 같다. 특별히 해 주는 거 없이 햇볕 쐬 주고, 물만 주는 데  어느 순간 새 순들이 올라오며 자라는 걸 보니 신기하리만큼 줄기는 올곧게 올라왔다. 도로록 말려 있는 잎은 줄기가 커감에 따라 조금씩 펴졌고, 어느 정도의 높이에 이르자 잎은 이제 됐다 싶은지 완전히 펴진 채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새로 나온 순들이 여섯 개가 되는 동안 버팀목으로 받쳐주던 잎만 큰 채 포물선을 그리던 줄기들은 조금도 펴지지도 자라지도 않았는지 버팀목을 치우면 일초도 못 견디고  원래대로 고꾸라졌다. 어떡하다 이렇게 감당 못 할 무게의 큰 잎들을 갖게 된 걸까. 잎을 크게 하는 촉진제라도 맞은 걸까. (그런 게 존재하긴 해?) 워낙 잎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알려진 식물이라서? 그래서 균형이 맞지 않는 단단하지 못한 줄기에 잎만 허벌나게 큰 모양새를 갖게 된 걸까. 상상의 나래는 펼쳐볼지언정 실제로  그런지 굳이 찾아보진 않는다. 그러다 오늘은 큰 결심을 한다. 늘어진 줄기들을 잘라 버리기로. 과감하게 자르고 내내 눈에 거슬리던, 별로 도움도 되지 않던 버팀목도 치워 버린다. 고만 고만한 키에 아무리 커봤자 내 손바닥도 안 되는 잎들만 남았지만 진작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도 그렇게 잘 커줘.


2. ’ 정미가 죽은 뒤로 마음의 가장자리는 매 순간 조금씩 시간에 쓸려 과거로 떨어지고 있었다 ‘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모두가 한 번쯤은 느낄 감정을 이렇게 특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Reading Chai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