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썼어. 힘들었지?
'애썼다'는 말을 좋아한다. 애를 쓴다는 것. 무언가 해내려고 마음을 다한다는 뜻이다.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는 순간부터 나아지고 달라지면 좋으련만 체감되는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예열되고 채워질 때까지. 항아리의 물이 찰랑찰랑 넘쳐흐를 때까지. 99도까지 물 온도를 높인 후 1도를 더해야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처럼, 애쓰는 일은 한두 번 시도로 온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힘이 든다.
애쓰는 건 관성을 이겨내는 일이다. 지켜내고 유지하는 것 역시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만 성장은 관성을 이기는 데서 출발한다. 관성의 힘은 너무나 커서, 앉아 있으면 일어나기 싫고 누워 있으면 그대로 쭉 자고 싶다. 우린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기 계발 의지도 불태우고 그럴듯한 계획도 세우지만 100% 실행하는 데는 자주 실패한다. 그건 계획이 아니라 목표여서라고, 어느 심리학자가 말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어! 오전 5시, 미라클 모닝!!"은 이루고 싶은 결과, 목표다. 이를 위해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실행 가능하도록, 뇌가 저항하지 않도록, 작고 촘촘하게. 5시 알람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는 건 수년간 체화됐을 때 가능하다. 올빼미형 인간이 새벽잠을 깨우려면 자신을 살살 달래야 한다. 그의 조언을 내가 이해한 대로 옮기자면, 4시 50분, 먼저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이불 밖으로 내민다. 꼬물락꼬물락 발가락운동을 한다. 잠시 후, 왼쪽 엄지발가락도 동일하게 움직인다. 5분 후 이불을 걷어 다리를 움직인다. 조금씩 조금씩 몸을 움직여서 나 자신에게 신호를 준다. “자자, 일어나자. 이 정도면 어렵지 않지?”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 한 번에 이뤄지지도 않는다.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잘했어, 잘했어, 다독이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새해에는 좀 달라진다며? 왜 여전히 그 모양이야? 왜 그것밖에 안 돼?"라며 채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하라. 그는 애써본 적 없는 사람이다. 자신은 완전무결한 인간이라고 착각 속에 살거나. 속전속결, 빨리빨리 해내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지만 우린 AI가 아니다. 익숙한 일이라면 몸의 저항감이 크지 않다. 어느 정도까지는 쉬이 할 수 있다는 걸 내 몸도 머리도 안다. 이제껏 해보지 않은 일, 익숙한 반경을 넘어서는 일이어서 어렵고도 의미 있다. '다음에 하지, 뭐', '이 정도는 두고 볼만 하지 않아?' 악마의 속삭임, 꽤나 합리적인 변명이 올라오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 한다.
더 깊고 더 정갈하고 더 간결한 글을 쓰고 싶어서 요리조리 생각한다. 손에 익은 자판을 눌러 머릿속에 담겨 있는 생각을 늘 써오던 문장에 담아 글자로 콕콕 박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떻게 그리 글을 쓰세요?", "매주 글을 쓰고 매일 피드백을 하다니 대단해요." 전혀. 이건 내게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입듯,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듯 수차례 해오던 일이다. 운동선수가 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어렵지 않듯. 습관이 되면 쉬이 오래 가능하다.
어려운 건 이에 머물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가는 일, 몸이 익은 반경을 벗어나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하는 일이다. 이전에 썼던 소재와 주제를 활용해 적당히 그럴듯한 글을 쓰는 것에서 벗어나야 글도 무럭무럭 자란다. 누구나 각자 즐겨하는 표현, 입에 착 붙는 말들이 있다. 신나고 즐거웠던 사건을 회상하면 '가슴 뛰는 기쁨'이라는 표현이 실타래 풀리듯 내 안에서 술술 나온다. 쉽다. 간단하다. 하지만 잠시 멈춘다. 그리고 묻는다. 진짜 그게 '가슴이 뛸 정도로 기쁜 일'이 맞았는지, 당시 느꼈던 희락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는데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대충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제껏 내가 다루지 않은 언어와 문장 가운데 더 적확한 것이 있는데도 애써 찾아 쓰려하지 않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언어는 상황은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언어로 바뀌는 순간 건조한 뼈대만 남는다. 최대한 싱크로율을 높이려 애쓸 뿐이다. 카메라로 촬영한 듯 그대로 보여주고, 들려주듯. 어떤 각도와 조명 아래 그 상황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는지 고민한다. 더불어 낯선 환경,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어려운 텍스트 속에 자주 나를 던져 넣는다. 귀찮지만, 괴롭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품을 수 있는 영역을 넓고 깊게 하기 위해서다. 일상의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벗어나 고루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시간의 힘을 빌려 티끌이 태산이 되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