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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죽고 싶은 이 병의 이름은

우울증입니다(2023.3)

by 강나루

다시 밤낮이 뒤 바뀌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밤과 낮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침대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못한 시간이 무의미하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안방 베란다 창에는 두꺼운 암막 커튼이 무겁게 내려져 있다. 오직 침대 곁의 독서등 불빛만이 사물의 윤곽을 겨우 드러냈다. 그렇게 혼곤하게 흘러간 시간이 벌써 다섯 달이었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또렷이 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흐릿한 시간의 경계 위에서 무의미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입맛을 잃어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나를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먹여 볼 요량으로 딸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하지만 딸의 노력과 애원에도 음식을 넘기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딸의 정성을 외면하지 못해 억지로 몇 숟갈 넘긴 음식은 반드시 체하거나 심한 두통으로 돌아와 삼킨 것의 몇 배?를 토해내는 것이 일상이다.


독한 약들을 많이 먹어, 붓고 살이 쪄 철옹성 같던 살덩이들도 어느새 조금씩 내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씻는 일조차 버겁고 지쳐 냄새날 것 같은 더러운 모습으로 널브러진 나를, 딸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오롯이 딸과 나 둘이서만 하염없이 지쳐갔다.

병이든, 삶이든... 뭐가 됐든지 간에 그냥 날 좀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마음만 반복되는 날들의 연속이다.




CRPS를 진단받고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을 겪으며 무거운 코트처럼 나를 짓누르던 우울증은 어느새 어떻게 해도 벗을 수 없는 철갑옷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을 선고받은 후에 멘털이 무너져 버리고 명료하게 통제하던 일상까지 무너진 후, 친정 가족들은 내게 등을 돌렸고 그 후론 세상마저 내게 친절하지 않기로 작심을 했나 보다.

하긴 원래 불행은 꼬리말 잇기처럼 미처 한 가지 불행이 끝나기도 전에 득달같이 다음 불행을 턱 밑으로 바싹 들이밀더라.


통증(痛症)이라는 단순한 두 글자로 표현하기엔 너무 지독한 고통이 매일 나를 죽음 앞으로 몰아가고 위로와 공감을 잃어버린 남의 편의(남편) 방관에 고통보다 더한 깊은 상실과 배신감을 느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지금보다 더 달콤하게 나를 유혹했던 적이 있었나....

이 모든 상황들을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지금을 이겨내면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린다고 누가 내게 확답할 수 있을까...

수많은 나의 선택들이 모여져 이루어진 지금의 삶과 이 어려움들... 정말로 모두 다 내 잘못 이기만 한 것일까...


백척간두 위에 맨몸으로 서서 세찬 비바람과 천둥번개를 맞고 있는 것만 같은 위태로운 마음이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고자 선포하듯 다짐했던 마음조차 놓치고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어리광과 하소연 magazian

https://brunch.co.kr/@oska0109/343


더 이상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어두움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


매 순간 눈을 떠 내 고통이 현실임을 인지하는 순간마다, 집안에 갇혀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는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을 헤쳐나가야 할 때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을 때마다, 나의 오래되고 사악한 동반자 우울증은 내게 죽음만이 답이라고 강요하며 속삭인다.

이번엔 네 차례야.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해도 돼.

이제 그만 쉬어도 돼.


매일 죽고 싶은 마음이 사무쳐 몸이 떨리는 것을 참아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살이 뜯겨 나가고 뼈가 드러 난다 해도 내 몸을 둘러싼 철갑 같은 우울증을 뜯어내 버릴 힘과 의지가 내게 남아 있기를 기도한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콩이와 산책할 수 있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가져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사실은 살아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믿을 수 있도록 되뇐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기를, 매일 죽고 싶지만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염원한다.


아직은 내게 싸울 힘이 남아 있고 이겨내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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