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9~25일, 여행 383~399일 차, 페루 쿠스코
사막 덕후였던 만큼이나 사막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막의 별을 못 본 것은 아마 계속해서 한처럼 남겠지... 아무튼, 굉장한 저지대였던 와카치나 사막에서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남미 여행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마추픽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그곳, 고산지대에 위치한 잉카의 고도 쿠스코였다. 처음에는 마추픽추만 빠르게 보고 빠지려고 했던 도시였는데, 나는 무슨 이유에선가 굉장히 오래 쿠스코에 머물게 됐다. 쿠스코에서 머문 그 긴 시간을 몇 개의 글로 압축해서 남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마추픽추를 다녀왔던 이야기와 쿠스코를 돌아봈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쿠스코에서 보냈던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어 글을 남기려 한다. 그 처음은 '잉카의 고도'로서 돌아본 쿠스코 이야기를 먼저 적어 내려가 보려 한다.
도착한 첫날은 야간 버스의 피로함으로 특별한 것을 할 수는 없었다. 다음 날, 볼리비아 비자(다음 국가인 볼리비아는 반드시 한국에서 사전에 비자를 준비하던가 인접국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서 입국해야만 한다.)를 발급받은 후 쿠스코에 Free Walking Tour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참가하기로 했다.
자신을 Diego라고 소개한 가이드는 쿠스코와 잉카 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가이드였다. 쿠스코에 있는 이모저모를 소개해주겠다며 출발했다. 가장 먼저 설명해 준 것은 쿠스코 깃발의 설명이었다. 쿠스코 시기(시의 깃발)는 7개의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 빛이다. 보통 외국인들이 항상 쿠스코를 찾으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너희는 참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다(?)'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깃발과 다들 헷갈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두 깃발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성소 수자기는 6색이며 쿠스코 시기의 색은 7색이라는 점... Diego는 '물론 우리는 성소수자들을 환영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녹아있는 깃발을 착각해 주지 않았으면 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참고로 무지개는 잉카문명에서 내세와 속세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믿어져 왔다고 하기 때문에, 그를 이어 쿠스코의 상징인 깃발에도 들어간 것.
사실 시티투어에서 이곳저곳 많이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바로 잉카 문명의 축조 기술에 대한 것을 이야기한다. 쿠스코 시내의 건물들은 아래는 바위가 쌓여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위쪽은
유럽의 축조 양식을 따르고 있다. Diego는 이 뒤섞인 축조 양식은 잉카 선조들의 지혜와 아픔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지만, 남미 전역은 스페인 제국에게 점령당했었다. 처음 와서는 잉카 건물들을 무너트리고 자신들의 건축양식으로 건물을 지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지진이 찾아왔다. 당시 잉카인들의 건축물들은 멀쩡했지만, 자신들의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들은 다 무너져 버린 것.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페루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화산활동과 지진활동이 꽤나 활발한 지역이다. 당시 스페인 제국은 그걸 알리 만무했으니 아마 호되게 당한 듯싶다. 덕분에 그 이후로 부턴 잉카제국이 가지고 있던 건축물들의 밑동은 그대로 사용하고 그 위로 스페인 양식을 이용해 건축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의 독특한 구조의 건축양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왜 잉카의 건축 양식이 훌륭했던 것인가가 남아있다. 가이드 Diego는 "아직까지 잉카 문명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게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나의 설명은 가설과 추측임 늘 알아달라"부탁했다. 먼저, 건축물들을 이루고 있는 벽돌 역할의 돌들은 어떤 접착 역할을 하는 물질 없이 맞물려 견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근현대 건축물들이 벽돌을 쓰더라도 두 벽돌 사이를 콘크리트나 시멘트로 단단히 붙이는데, 잉카인들의 건축물에는 그런 부착물이 없었으며 돌과 돌이 마치 퍼즐처럼 맞물려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지진이 많은 페루의 특성을 반영하여 땅 속으로 약 1-2m 정도부터 그런 돌을 쌓아 만들어 단단한 기둥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으며 또한 내 짐 설계를 위해 벽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한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신비함은 여기서 부터이다. 그런 건축물들을 이루는 돌들은 쿠스코 시내에 있지 않았으므로 어디선가로 옮겨와야 하는데... 해발 3600미터에 가깝고 언덕을 힘들게 넘어야 하는 이런 곳에서 이 수많고 큰 돌을 어디서 구해왔는지가 불명. 어떤 방법으로 돌을 정교하게 짜맞게 되도록 다듬었는지에 대한 방법이 불명인 것이다. Diego는 시티투어를 마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외계인을 믿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우리 선조의 건축물을 볼 때마다 외계인의 존재가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 이걸 어떻게 했을지 도저히 예상이 안 가고, 그런 나라가 스페인에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것도 잘 이해가 안 가니까... 외계인이 장난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잉카인들의 지혜와 경탄, 그리고 안타까움들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3시간의 짧지만 인상적인 시티투어였다.
쿠스코시는 잉카 문명의 수도였으며, 그래서인지 잉카 시대의 미신(?) 같은 것들이 아직도 무언가 잘 유지되는 기분이다. 잉카인들은 쿠스코가 그들의 성스러운 동물로 알려진 푸마의 모양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푸마의 머리 모양에 위치한 거대한 언덕에는 쿠스코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 유적인 삭사이와망이 있다.
Diego의 말에 따르면 정확한 용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성이나 군사시설로 추측된다고 했다. 그렇게 추측했던 까닭은 쿠스코 시내에 있는 것보다도 더 큰 돌들이 사용된 견고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큰 공터와 함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충분히 그런 추측이 가능한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추픽추 때문에 삭사이와망이 임팩트가 크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 하지만 삭사이와망만의 독특한 점들이 많다. 일단 가장 좋은 점은 삭사이와망 석조 건축물에서는 쿠스코 시내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것. 푸마의 머리에 위치해 있고, 높이도 쿠스코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쿠스코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건축물이 있는 반대편에도 큰 언덕이 있는데 이를 올라가면 삭사이와망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특히나 우기가 다가오는 쿠스코에 구름 떼가 몰려오면서 그늘지는 삭사이와망의 전경의 변화를 보는 것은 가장 큰 재미였다. 뭔가 여유 있으면서 웅장한 기분.
뭐, 건축 양식은 쿠스코 시티에서 보이는 건축양식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별다르게 특징을 볼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규모 자체가 워낙에 다르다. 삭사이와망 축조에 사용된 돌 중 가장 큰 돌이 70톤에 가깝다는 이야기도 있고, 크기를 육안으로만 봐도 사람 키보다도 큰 어마어마한 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특징이 될 수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편의 언덕을 넘어가면 큰 건축물은 없지만 언덕 위의 작은 공터와 더불어 독특한 놀이기구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지각 활동으로 생긴 습곡이 미끄럼틀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물론 그 공간 앞으로는 제단이나 공터 용도로 사용되었을 공간도 함께 있다. 하지만 최고 인기는 역시 습곡 미끄럼틀이었다. 그곳을 발견한 모든 사람들은 한 번쯤은 습곡 미끄럼틀을 타본다! 나도 타봤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 스릴이 만점이었다.
삭사이와망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여유 있는 공터들이다. 탁 트인 공터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답지만 야생의 뛰어노는 알파카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주 큰 매력이다. 과거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곳이 이렇게 평화롭게 바뀌었으니 과거 사람들이 돌아와서 보면 황당할지도 모르겠다. 쿠스코가 내려 보이는 이 곳에서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이라도 삭사이와망에 꼭 와봤으면 좋겠다.
쿠스코는 작은 도시가 아니다. 한 국가의 수도와도 같은 중심도시였던 만큼, 각종 문화재들이 곳곳에 퍼져 있다. 배낭여행자가 홀로 돌아다니면서 그런 유적지를 모두 보려면 사실 쿠스코 여행에만 몇 달은 사용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근교의 여러 유적지를 보기 위해 택시를 빌려서 움직이기도 한다. 나 역시도 인터넷을 통해 동행을 구할 수 있었고, 저렴한 가격에 근교에 있는 몇 군데 유적지와 동물 보호구역에 다녀올 수 있었다.
동물 보호구역은 수렵이나 밀반입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야생에 있지 못했던 동물들을 회수하여 보호하고 기르고 있던 곳이었다. 야마, 알파카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 그리고 이 동물 보호구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콘도르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동물 보호구역의 설명을 듣다가 알게 된 주요한 정보라고 한다면... 야마와 알파카가 낙타에 속하는 종이라고. 낙타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고 양이나 말의 일종일 거라 생각했었기에 다소 충격적이었달까. 페루 전통 염색에 대해서도 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선인장에 기생하는 벌레(!)를 으깨면 붉은빛 색소가 나오는데, 거기에 특정한 천연 재료들을 추가하면 색이 바뀌어 여러 가지 색을 만드는 방법으로 페루의 총천연색 염색을 한다고! 레몬을 넣으면 무슨 색, 무슨 풀을 넣으면 무슨 색 하면서 벌레와 조합하여 만드는 색은 정말 곱고 신기했다. 잉카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근교로 가는 투어는 대부분 잉카 문명 유적지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유적지는 티폰(Tipon)과 피삭(Pisaq)이었다. 굳이 두 유적지를 나눠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것이 구조가 유사하다. 계단식으로 농지를 나눠놓고 별도의 주거지역을 가진 구조인데, 이 것은 추후 마추픽추에서도 관찰되는 유적의 형태들이었다. 같이 갔던 동행이 이런 문명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서 이런 구조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층마다 다른 작물을 기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고도 상승에 따라 기온이 다르니까 그를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사레라고. 또한 수로를 잘 활용하여 농경지를 잘 관리할 수 있었다. 특히, 일정하게 물이 흐를 수 있도록(너무 많이도, 적지도 않게) 수로를 설계했으며 이것이 아직까지도 잘 작동하고 있다고. 잉카 사람들의 이러한 기술력이 만약 스페인에 의해 사라지지 않았다면 과연 얼마나 이 나라들이 발전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근교 투어의 마지막은 조금은 허름한 곳이었다. '와리'라는 문명이 머물렀던 자리였다는데, 잉카 문명 이전의 문명이라고. 전쟁에서 성벽으로 썼던 터인지라 언뜻 봤을 때에는 남한산성을 떠올리기도 했다. 확실히 잉카 이전이다 보니 만듦새가 그렇게 정교한 느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양식으로부터 오는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본 것은 많은데 짧은 시간에 뭔가 바쁘게 보다 보니 정신없는 근교 투어였다. 하지만 확실한 건 쿠스코에는 정말 많은 볼거리가 있다는 것. 통합 입장권에만 해도 13군데를 갈 수 있으니까. 아마 제대로 보려고 했다면 쿠스코에는 2주가 아니라 한 한 달은 있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