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동생을 데리러 온다는 건

by 박수민

아주 오래전이지만, 처음 술 마시던 날을 기억한다. 대학생 새내기, 대면식. 말이 대면식이지 같은 학과 사람들이 모여 돌아가며 함께 술을 마셨다. 주기적으로 앞에 앉은 사람이 바뀌었는데 사람이 바뀔 때마다 잔을 부딪치며 한 잔 두 잔 그렇게 술을 마셨다. 술을 처음 마셔본 나는 내 주량이 얼마인지 몰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했다.


다행히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여자 선배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선배는 나에게 버스에 타자마자 몇 시쯤에 도착하니 집에 데리러 와달라고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술에 취해 자꾸만 눈이 감겼지만, 선배는 낯설기도 하고 어려웠으므로 언니에게 연락했다. 그 후 드문드문 기억이 나질 않았고, 잠든 날 버스 기사님이 깨워주셨다. 황급히 눈을 떠보니 선배는 언제 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종점이었고 버스에 내려 언니를 찾았다. 언니가 보이지 않아 시계를 보니 나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자 ‘가고 있으니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언니가 데리러 온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신나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보이는 언니를 부르며 달려갔는데 황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 진짜 갈지자로 걷는 사람이 니가 아니길 바랐는데 세상에”라는 말과 함께 반가워서 떠드는 나에게 “입 다물고 조용히 걸어”라며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덩치가 작은 언니는 나를 부축해서 걷는 것만으로 벅찬데 잔뜩 취한 동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쫑알쫑알 대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늦은 귀가 시간 우리 집 앞까지 오는 버스는 다 끊겼고, 집 근처까지 오는 버스를 탄 거라 내려서 10분쯤을 걸어야 했으니 언니는 상당한 인내심으로 나를 부축하고 있던 거다. 그 와중에도 술에 취한 나는 사리 분별을 못하고 집에 돌아가면 엄마에게 언니가 입 다물라고 했던 것을 일러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언니보다 더 싸늘한 목소리로 “씻고 니 방 가서 자”라고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 뒷모습을 보면서 내일 아침 일어나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지금이라도 엄마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씻고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온몸이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알코올을 분해하는 요소가 없어서 그런 듯하다. 아빠는 술을 꽤 잘 드시는데, 엄마는 술을 한 잔도 못 드신다. 나는 엄마 체질을 닮은 듯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엄마는 “내가 딸내미 해장국을 끓이게 될 줄은 몰랐다”며 “공부하라고 대학교에 보냈더니 술 먹고 다닌다”라고 뭐라고 하시면서도 콩나물 해장국을 내어주셨다. 식탁에 앉으면 엄청난 훈계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잔뜩 화가 난 엄마에게 아빠가 “대학 가서 처음 술 마시는 거니 뭐라고 하지 말자”라고 내 편을 들어주셨다고 한다. 역시 우리 아빠 만만세다.


나중에 언니한테 들으니 나는 그날 갈지자로 걷는 것뿐만 아니라 중얼중얼 노래까지 불렀다고 한다. 놀랍게도 취객이 하는 행동을 모두 다 선보였던 셈이다. 그 모습을 내가 보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두고두고 생각한다. 그 이후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취할 때까지 마신 적은 없었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듣는 것도 두려웠지만,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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