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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화 Sep 02. 2022

제주 하원 수로길을 걷다

용두암, 정방폭포, 천지연, 천제연 폭포, 한라산 등 등

예전에 제주여행하면 들르는 제주 관광지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유명 관광지보다 올레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고

숲에 놓인 평상에 누워 쉬거나

자왈을 해설과 함께 듣는 여행객들이 많아졌다.


1950m 한라산이 생성되면서 창조해낸 제주 중산간 허리 자왈 숲들이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힐링의 장소, 치유의 공간, 휴식의 장소가 되고 있다.

이는 비단 관광객 뿐만 아니라 제주 토박이, 또한 제주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주에 사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매 주말마다 친구끼리 아니면 동호회원들끼리 일주일에 한 번은 오름이나 자왈, 올레길, 둘레길, 휴양림 등을 다니고 있다.


제주를 떠난 지 30년이 지난 나 역시 요즘 제주를 가면 휴양림이나 오름, 특히 자왈의 매력에 푹 빠진다.

사시사철 상록수림을 보여주는 골자왈이야말로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다.


8월 마지막 주 나는 일주일 정도 어머님 병 간호도 할겸 제주에 있는 고향 친구들과 몇 달 전에 예약한 우수자연탐방을 하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우수자연탐방은 제주자연환경해설사협회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격주로 6회에 걸쳐 12군데 말 그대로 제주에 우수한 자연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제주도에 대해 공부하며 또 해설사로 활동을 시작하는 친구의 추천이 있었기에 정보를 알고 신청이 가능했다.

우리 팀이 참여한 날이 마지막 탐방으로 오전 하원 수로길과 오후 화순 자왈을 자연환경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함께 걸었다.


아침 7시 50분 제주종합운동장 시계탑 앞에 모여 대형버스를 탔다.

우선 하원 수로길을 탐방하기 위해 한라산 영실 주자장까지 이동했다.


하원 마을은 서귀포와 중문 사이에 있는 마을로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일주도로변에 있다.

원래 하원, 중원, 상원마을이 있었는데 4.3과 6.25를 겪으면서 제일 아래 마을인 하원만 남게 되었다.

하원 수로길은 하원마을과는 거리가 먼 한라산 영실 근처에서 시작되었다.

영실 제1 주차장에서  버스에서 내린 후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제주도와 한라산에 대한 해설이 있었다.

영실 제1 주차장에 세워진 제주도 한라산 안내도

제주전역에 생물권 보존지역, 세계 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람사르 습지 등이 분포되어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과 영천·효돈천, 문섬·섭섬·범섬 일대가 2002년에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2007년에는 세계 자연유산으로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용화구, 거문 오름 용암 동굴계가 지정됐으며, 2010년에는 제주도 전역이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으며, 2009년에는 한라산 1100고지 습지와 물장오리 오름 습지가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앞으로 제주자원의 가치는 더욱더 소중해질 것 같다.

오늘 같은 자연탐방도 제주의 귀중한 자원을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한 행사이기도 하다. 


하원 수로길은 영실 제1 주차장에서 오르막길을 100미터 정도 걸으면 수로길 입구에 다다른다.

수로길 입구에 안내도와 수로길에 대한 설명이 있다.

하원 수로길 안내도 및 안내문

수로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해설사가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수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좁으니 새경배리지 말고('한눈팔지 말고'의 제주어) 걸어야 된다고 했다.

발을 잘못 헛디디면 수로에 빠지게 되는데 수로 안에는 뱀이 있다는 것이다.

수로 깊이가 높아 밖으로 올라오지 못한 뱀들이 수로 안에 있을 수 있으니 절대로 수로 안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당부한다.

좁은 수로길을 따라 걷는다.

어떤 구간에서는 마치 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좁은 길을 비틀비틀하며 걸어야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구상나무와 그 열매였다.

구상나무에 열린 열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토종 나무이다.

추위에 강해 한라산, 지리산, 무등산, 덕유산 등 높은 곳에서 20m까지 자란다.

그런데 학명은 Abies koreana Wilson이다.

1920년 어니스트 윌슨이라는 영국 태생의 식물학자가 제주도에서 구상나무를 발견한 후 종자를 가지고 가서 연구하고 대한민국 특산종으로 발표했다.

지금도 미국 아놀드 식물원에 가면 윌슨이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의 종자에서 육성한 구상나무가 거목으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한국 전나무(Korean Fir)로 부르며 실내용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

우리의 토종 나무지만 종자를 뻬앗겨 버렸다.

더구나 지금 남아 있는 한라산의 구상나무들도 여러 환경에 의해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하니 더욱더 안타깝다.


하원 수로길은 하원 마을에 논을 만들어 주민들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6.25 한국 전쟁을 겪은 후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이었고

더욱이 먹을 것이 없던 마을에 벼농사를 짓기 위해 영실 물을 하원 저수지로 보내려고 수로길을 만들었다.


제주도는 전체적으로 벼농사를 지을만한 물이 많은 땅이 거의 없었다.

예전에 알기로는 서귀포 강정과 한경 고산 쪽 두 군데 정도였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이뤄져 돌과 토양이 구멍이 숭숭뚫린 현무암의 특성상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바로 땅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에 물을 대는 논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쌀이 귀했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쌀밥을 곤밥이라고 했다.

아마 쌀이 하얗기 때문에 곱다는 데서 곤밥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귀한 쌀밥인 곤밥은 제사 때나 명절 때만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 어머니가 마을 여드레당에 치성 드리러 갈 때는 항상 쌀밥을 지어 가셨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먹었을까 그것도 딱 한 그릇 정도의 밥만 지었으니 몇 숟가락 뜰 정도였으니 제사, 명절 때 외에 쌀밥을 먹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신 보리밥, 조밥이 주식이었다.

지금은 일부러 건강식으로 챙겨 먹는 잡곡들 말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빼떼기라고 해서 고구마를 절간했다가 말린 것을 가마솥에 넣어 찐 것이 겨울철 주식이었다.

고구마 전분이 바닥으로 녹아내려 딱 붙는 바람에 솥 바닥에 뻬떼기가 타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힘들게 저었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에는 이 하원 수로길 외에도 몇 군데 수로길이 더 있다.

하나는 광령수로길이다.

이 수로길은 일신학교(현 구엄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한 백창유 선생이 일본자본가를 끌어들여 한라산 어승생악에서부터 광령, 해안, 외도, 하귀까지 물길을 끌어와 쌀농사를 짓게 했다.


다음 안덕 창고천에서 화순까지 이어지는 황개수로이다.

이 수로는 한경면 저지리 출신인 김광종이라는 분이 안덕면 화순리 황개천 바위를 뚫고 화순리 넓은 땅에 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했다.

1832년(순조 32) 3월부터 1841년(헌종 7) 9월까지 약 10년에 걸쳐 바위를 뚫고 물을 끌어들여 1만여 평의 땅에 벼농사를 짓게 했다.

필요한 경비는 자신의 재산으로 마련했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논 하르방’, 최근에는 ‘곤밥 하르방’으로 불리고 있다.

밭이 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꿨다는 의미로, 수로가 끝나는 지점을 ‘도채비 빌레’라 부른다.

 ('빌레'는 마치 외국어처럼 보이지만 제주어로 '너럭바위'를 뜻한다. 제주에서는 바위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을 빌레라고 자주 쓴다. ‘빌레’의 표준형은 ‘별내’다. 별내는 비탈을 뜻하는 ‘별’에 ‘장소’ 또는 ‘물’을 뜻하는 ‘내’가 합쳐 된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문 천제연에서 지금의 컨벤션 센터까지 이어지는 베릿네 수로길이다.

대한제국 시대에 만들어졌는데 2005년 4월 대한민국 등록문화제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이 수로길은 대정 군수를 지낸 채구석이라는 분이 원래 대정에서 수로길을 만들려고 했지만 큰 바위들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그가 군수를 그만둔 뒤 중문 천제연에는 물은 넘쳐나는데 그 밑에는 물이 없어 벼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웠다. 그래서 천제연 주변의 암반을 불과 물의 온도차를 이용해 암반을 뜷어 천제연의 풍부한 물을 성천봉(베릿네 오름) 아래로 유입시켜 23만여 제곱미터의 논을 조성해 논농사를 짓게 했다. 1906년에 시작해 1908년 총 길이 1.9km의 천연암반 관개수로가 완성되었다.

채구석의 후손은 애경그룹을 창업했고 그 손자는 제주에 저가 항공인 제주항공을 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제주도내 4군데의 수로길 가운데 하원 수로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군데 수로길은 개인이 주도하거나 사회사업을 하는 분이 주도했는데 하원 수로길만 관이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하원 수로길은 길이도 길고 깊이도 깊다.

지금 남아 있는 수로길을 보니 시멘트로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시멘트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하원 수로길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았던 조상들의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과 흔적들을 보고 들으니 새삼 이 자원들이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원 수로길의 또하나 특별한 것은 주변 도로들이 만들어지기 전에 한라산 등반 코스로 많이 이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한라산이 1950미터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독일 베를린 출신 지그프리트 켄테(Siegfried Genthe, 1870~1903) 박사가 바로 이 길을 따라 한라산을 올랐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리학 박사로 신문기자였다.

중국 취재를 마치고 일본으로 가던 중 이 제주섬에 우뚝 솟은 한라산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이후 다시 이 섬을 찾아 여러 곳을 방문하고 한라산 정상에 오른다.

백록담에 오른 그는 아네로이드 기압계를 이용해 한라산 높이를 측정해 한라산의 고도가 1950m임을 알아내 이를 세상에 알렸다.

백록담 분화구가 직경 400m, 높이 70m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일제가 공식적으로 제주도를 측량한 1915년보다 14년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한라산에 오른 소감을

"백인은 아직 한 번도 오르지 못한 한라산 등정은 내 생애 최고의 영광"이라면서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300m 구간을 오르기 위해 두 시간 반 동안 사투를 벌였다. 숨이 막히고 땀이 흘러내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분화구 가장자리에 쓰러져 잠시 모든 것을 잊었다. 드디어 정상이다. 사방으로 웅장하고 환상적인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을 지나 저 멀리 바다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파노라마였다."

그는 독일의 퀼른 신문에 1901년 10월 13일부터 1902년 11월 30일까지 1년간 '코리아, 지그프리트 겐테 박사의 여행기'를 장기 연재했다.

1903년 모로코에서 실종된 후 1905년 동료 기자였던 베게너에 의해 여행기 <제주도 탐험과 동해 중국에서의 표류>가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도 2007년 2월 독일인 '겐터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이라는 번역서(권영경 옮김, 책과함께, 2007년 8월28일 출간)가 출간되었다고 하니 읽어봐야겠다.


또한 탐방 중에 캔터 기자의 기자정신과 탐험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들려준 동남아의 유명 관광지 앙코르 와트의 개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앙코르 와트도 외국 탐험가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외국 탐험가가 현지인들과 함께 밀림을 탐험하다 풀에 발이 걸려 넘어졌는데 수풀을 걷어보니 엄청난 규모의 왕국이 묻혀 있었다. 이를 복원하고 오늘날 유명 관광지로 만든 것은 그 나라가 아니었다. 자원을 복원할 자본이 없었다. 결국 외국자본에 의해 복원 개발되는 바람에 입장료의 3분의 2는 외부로 유출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입장료 2만 원을 내면 만 오천 원은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5천 원 정도 본국이 손에 쥔다.

(위키백과;앙코르 와트를 방문한 첫 서양인 탐험가들 중 한 명이었던 안토니오 다 마달레나는 스페인의 선교사였으며, 1586년에 처음으로 앙코르 와트를 방문했다. 그는 이 거대한 유적을 보고 감격하여, '이 유적은 펜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한 건축물이다. 특히 이 유적은 세계의 그 어떠한 곳과도 다른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 지성이 보여줄 수 있는 극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라고 적었다. 1860년 경에는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 앙리 무오가 이곳을 방문했으며, 그는 자신의 탐험록을 출판하여 서구 세계에 앙코르 와트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탐험록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내 땅의 유물이어도 내가 개발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서 내 땅의 유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구상나무를 연구해 발표한 윌슨씨나 한라산이 1950미터임을 처음으로 밝힌 독일 기자 등 탐험가들의 탐구정신에 대해서도 생각케 하는 탐방이었다.


영실 입구에서 시작한 하원 수로길은 4.2km을 걸은 후 서귀포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끝난다.

하원 수로길 안내도와 서귀포 자연 휴양림 입구 안내도

이 수로길은 가을 단풍도 아름답고 하니 가을에도 다시 한번 오고 싶다.


하원 수로길 전경과 주변 풍경

수로길을 걸으며 땅도 아닌 바위에서 크게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도 보았다.


하원 수로길에 바위에서 자라는 나무

많은 선물을 받은 수로길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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