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오가닉 미디어 ★★★★☆

'오가닉' 을 '미디어' 라는 매개체로 설명한 철학서.

by 오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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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게 된 동기 ]


2017 STEW 독서소모임 세번째 도서. 마케팅 분야. 하지만, 이미 2014년 출시때부터 읽으려 리디북스에서 받아둔 책...



[ 한줄평 ]


'오가닉' 을 '미디어' 라는 매개체로 설명한 철학서.



[ 서평 ]



지난 2개월간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 한 가운데, 어느 소용돌이에 빠진 양 어디로 가야 할 지, 어디로 휩쓸리는지도 모른채 그저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보통 나는 이런 시기에 어떠한 깨달음을 기다리곤 한다. 깨달음의 매개체는 때로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건이 되기도 하고, 책이 되기도 했다. 그걸 알기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길, 누군가가 내게 깨달음을 주길 기대했다.


안다. 스스로 생각하고 찾으려면 내 경우 '책' 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표류는 물살이 강해서인지 책을 펼쳐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생각도 못했다. 강제적으로 읽게 된 '지정도서' 에서 그것도 '마케팅' 서적이라 생각했던 책에서 '철학' 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저자는 프랑스에서 10년간 '미디어' 를 공부하며 꽤나 깊은 사색을 했고, 이를 '오가닉 미디어' 에 꽤나 잘 녹여냈다.


일요일인 오늘 오후 시간과 저녁, 그리고 밤 시간대를 거쳐 꼬박 7시간 동안 나를 붙잡아둔 이 책.

이 서평에서는 나의 비즈니스와 현재 내가 빠져있었던 소용돌이를 이 책에 빗대어 이야기 해보련다.



<도밍고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나는 지난해 1월부터 '도밍고컴퍼니' 라는 회사를 창업하여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내 아이디어를 간단히 만들어 '도밍고뉴스' 라는 안드로이드 앱을 출시했다.

위 멘트를 지난해 여름부터 수십차례 아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소개로 하곤 했으니 얼마나 읊어댔는지 모르겠다. '나' 라는 존재가 '큐레이션 앱' 이 된 듯 했다.


저 프로토타입 앱을 들고 9개의 사업계획서를 쓰고, VC 를 만나고, 수십, 수백명의 대표자들을 만났으니 작년 여름은 정말이지 내게 스펙타클 했다.

하지만 지난 해 여름이 절정에 달할 때, 나는 내 비즈니스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조롱 속에서 이 아이디어를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부푼 꿈을 안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비즈니스가 누군가에겐 그저 '네이버 뉴스' 에게 상대도 안되는 토이 프로젝트였고, 나 같은 '아무나' 가 덤빌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니었고, 스타트업이 그렇게 '쉬운' 선택이 아님을 증명하는 실패 사례였다.


난 이 책에 나오는 '콘텐츠' 와 '컨테이너' 와 '컨텍스트' 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했다. 이제 책을 다 읽었으니 말하자면,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컨텍스트' 였다.


사실 늘 걸리는 부분이었다. 미디어 서비스를 만들면서 '미디어' 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가끔 내게 너무도 부끄러운 사실이 되었다.

나는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해왔고, 수십개의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면서 앱 만큼은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뭘 만들지, 만들어서 어떻게 돈을 벌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아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 Why 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의 How 는 무의미해졌다.


아마도 저자 윤지영 박사 또한 Why 를 찾으려 수많은 철학 도서를 읽게 되었던게 아닐까? 미디어가 궁금한데 도대체 미디어가 무엇이며, 사람들에게 왜 미디어가 필요한지, 왜 미디어를 이용하는지 지금의 미디어가 왜 변화해야 하는지, 왜 미디어가 변화하고 있는지 등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 작년의 나는 이 거대한 Why 로 부터 도망쳤다. 아니, 도망쳤다는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이 도망침을 만회하고자 올해 3월부터 다시금 불타올랐다.

그리고 올 4월부터는 이 거대한 Why 에 짖눌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내게 미디어는 새로운 도전이자, 내가 선택한 변화의 매개체였고.

내게 미디어는 그동안의 내 능력치에 대한 검증이자 스스로에 대한 검증이었다.


그래, 나는 미디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 에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오가닉 미디어>


오가닉 미디어의 콘텐츠는 살아 있다. 기계적 전송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 미디어 관점에서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마지막 단계다. 말을 내뱉는 순간, 또는 출판·발행·방송되는 순간 미디어의 역할은 끝난다. 반면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콘텐츠가 전달된 순간부터가 중요해진다. 이때가 게임의 시작이다. 한번 게재된 콘텐츠는 사람들의 활동에 따라 끊임없이 연결되고 진화할 수 있는 잠재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게 참 묘한 존재다.

이 책이 포스팅된 블로그를 보며 깊이 있는 콘텐츠가 얼마나 멋진지 느꼈던 것 같고, 2015년 퇴사 직전에 사장실에 들어가 인사를 할 때, 사장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이 이 책이었다.

그리고 오늘 내 소중한 일요일과 맞바꾸며, 그만큼 소중한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뉴 미디어라 하면 단연 SNS 가 떠오르고, SNS 하면 사람들은 뭐가 떠오른다고 할까?

그래.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SNS 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맨유의 전설 퍼거슨 감독은 'SNS 는 인생의 낭비다' 라는 말로 수많은 트위터리안을 공격했고, 이에 많은 SNS 사건들에 퍼거슨 감독의 말이 댓글로 달리곤 한다.

나 또한 SNS 상에서 사는 사람을 보면 못마땅해했다. 굳이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내 페이스북은 가장 중요한 콘텐츠 배급로가 되었고, 인스타그램은 내가 매일 먹어대는 음식을 올리는 맛있는 공간이 되었고, 네이버 밴드는 소중한 커뮤니티의 공지사항 공간으로, 카카오톡은 내가 깨어있음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었다.


개발자로써 이러한 서비스들의 최전선에서 '사용자' 로 있으려 했다.

Path, 구글 플러스, 이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Buffer 등. 굳이 사용하고 싶지 않는데도, 트렌드를 익히고자 사용해보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미디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고 생각했다.


저자 역시 미디어를 이야기 하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대해서 식상 할 정도로 분석을 해놓았다. 이는 내가 미디어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아마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색다른 접근이기도 했다.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저자가 '미디어' 와 '플랫폼' 을 같이 보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존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나는 '플랫폼' 이라 이해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유저들이 상호작용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보며 '플랫폼' 이라 이해했다.

아쉽게도 그러한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은데, 어쨌든 미디어적인 접근에도 흥미로운 점이 많이 있었다.


여기까지 읽고 전문가들의 역할이 줄어든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넘쳐나는 콘텐츠가 사람들을 계속 연결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소중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한 콘텐츠를 만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콘텐츠 생산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은 아마추어들이 근접할 수 없는 자원과 노하우를 이용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뉴욕 타임스》 같은 신문사의 콘텐츠 유료화가 주목받는 이유다(2013년 《뉴욕 타임스》의 온라인 유료 가입자 수는 73만 8000명이다39). 콘텐츠의 비즈니스 모델 다각화는 품질이 확보된 다음에야 가능하다.


오가닉 미디어에서 '미디어' 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저자는 연결되지 않는 콘텐츠는 '죽었다' 고 말하며, 공유되고 상호작용이 끊이지 않는 콘텐츠를 '살아있다' 라고 말한다. 때문에 앞으로의 미디어는 콘텐츠가 '살아있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저들과 연결시켜줘야 하며, 이것이 뉴미디어이고 '오가닉 미디어' 라고 말한다.


이 책이 나온 2014년부터 페이스북은 꾸준히 발전했고, 트위터는 꾸준히 몰락했다. 아마존 역시 계속해서 무섭게 발전하고 있으며, 구글은 페이스북의 성장에 비하면 오히려 둔화되었다는 느낌이다.


연결 관점에서 보면 페이스북은 추천을 통해 친구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컨텍스트를, 뉴스피드와 ‘좋아요’ 등을 통해 친구의 콘텐츠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컨텍스트를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하겠다.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페이스북은 정말 잘 살아있는 '오가닉 미디어' 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내용을 읽으며 미디어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스타트업의 대표자로써 흥분되기도 했고, 왜 그동안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의 문장은 내게 흥분을 넘어 새로운 '깨달음' 을 선사했다.


하지만 페이스북도 세포들이 살아 있는 유기체다. 언제든 형태가 바뀔 수 있고, 늙거나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완전한 개체라는 뜻도 된다.


미디어에 대한 내용만 가득했더라면, 나는 이 책의 별점을 많이 줘야 3개를 줬을 것 같다. 미디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었더라면 '뭔 소리여?' 하고 덮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글이 어렵다는 말은 독자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필자가 무식해서 듣는 말이었다. 이제 글은 골방에서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는 모두 매개자이고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뭐, 저자의 말처럼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책은 충분히 어려웠다... 어려움의 기준이 저자와 다르겠지만, 분명 깊이 집중해서 읽어야만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책이다. 아마, 지하철에서 틈틈히 읽었더라면 맥락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려면 어쩔 수 없다... 난 충분히 저자가 독자의 관점에서 읽힐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주제가 너무 어려웠던게야...)


생물. 살아있는 물체.

과연 '살아있다' 는 것은 뭘까? 이 책은 내게 '살아있음' 이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묵직한 질문을 던졌고, 그게 별점 4점을 찍을 수 있었던 이유다.



<살아있네!>


죽어있었다.

최근 나는 의욕을 잃었고, 매사에 부정적이었다.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기에, 관점 즉,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보이는 법. 내 마음이 허하고, 의욕이 없음에 모든 것이 의미 없었다.

그래, 이게 살아있는 것일까? 죽어있는 것일까?


서른은 이립[而立] 이라 했다.

공자는 서른에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었다는데, 과연 나는 지금 뭘 확립했으며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했다. 화창한 여름날, 삼삼오오 모여 희희덕 대는 사람들이 당췌 무슨생각에 저러는지 아니꼬왔다.

내가 어떤 캐릭터인지 20대 초반에 파악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물론 20대 후반에도 의문이 끊이지 않아 고통스러웠는데, 서른이 되고 나니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 아닌가?

힘들게 얻어 냈더니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에 하소연을 하는가? 결국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서른이 되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안타까워 그저 혼자서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살아있음을 언제 느끼는지도 모르겠는데, 페이스북이 살아있다고? 유기체라고? 오가닉?

근데 살아있는데 왜 불완전해? 살아있는데 왜 불완전해? 신나야지.

음... 살아있다는 것의 사전정의는 뭐지?



위키백과에 따르면 생물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생물은 자기증식능력, 에너지변환능력, 향상성 유지능력이라고 하는 3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1. 물질대사를 한다.

체내에 필요한 물질이 합성, 분해되는 화학반응


2. 자극과 반응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환경의 변화(자극)를 감지하고 반응함


3. 항상성 유지

외부 환경이 변하더라도 체내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진다.


http://bit.ly/2rFdNCP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살아있다는 것의 사전적 정의를 처음 찾아봤다.

문득 보게 된 저 정의가 사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고작 저 한 문장으로 정의가 된단말인가? 라는 아니꼬운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짜증스러움을 머금고 반대로 생각해봤다.


내가 만약 물질대사를 하지 않고, 자극과 반응이 없고, 항상성이 없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는건가?

어라? 그거야 말로 죽은 것 같다.


문득 Java 의 객체를 이해할 때처럼.

상사의 요구사항을 이제서야 이해할 때처럼.

묘한 감정과 함께 그동안의 내 행동들이 스쳐갔다.


매끼니 늘 맛있는걸 먹으러 찾아다녔던 내 모습. 지하철 내 에어컨의 찬바람을 피해다녔던 내 모습. 그냥 대충하라 유혹하는 동료들의 말을 뿌리치며 내 스타일대로 일을 처리했던 내 모습.

그래,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사소한 것에 강하게 반응하는 내가 싫었다. 세세한 변화에서 트랜드를 읽어내고 싶으면서.

발전이 없는 모습에 스트레스 받는 내가 싫었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싶으면서.

남들과 다르고 싶은 내가 싫었다. 나로써 살고 싶으면서.


그동안의 내가 고민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그저 내가 '살아있기 때문' 이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이에 스트레스 받았던 내가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살아있기에 반응하고, 살아있기에 나를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었는데. 난 도대체 어떤 환경을 원했던 걸까? 그저 나은 것, 그저 좋은 것. 결국 돌고 도는 패션 유행만 쫓았던건 아닐까?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동일시도 차별화도 서로가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내가 다른 집단과 차별화된다는 것은 곧 어떤 집단에 동일시된다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동일시는 어떤 네트워크와 차별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일어난다.


나는 차별화 되고 싶었던 걸까? 동일시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둘 다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닌가?



<오세용닷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내 이름을 따서 도메인을 파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그 때가 생각난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내 이름으로 된 도메인에 워드프레스를 붙이고, 네이버 검색에 등록시켰던 그 때.


유행을 선도하는 그룹은 ‘차별화’를 시도하는 그룹이고, 이 선도 그룹을 추종하는 그룹은 ‘동일시’를 시도하는 그룹이다.


차별화 하면서도, 누군가가 이 차별화에 공감해야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이고, 인간이다. 때문에 너무 차별화 되어서도 안되지만, 너무 동일시 되어도 안되는 것.

도대체 이런 철학적 내용을 어떻게 '쉽게만' 쓴단 말인가?


결국 우리 자신은 유기체이며, 이것이 오가닉 미디어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저자가 내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오가닉' 인지, '미디어' 인지, '오가닉 미디어' 인지. 이 책을 다 읽기까지 7시간 이 서평을 다 쓰기 까지 2시간. 9시간동안 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재창조하며 꽤나 두근거리는 월요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늘 누군가와 다르면서, 누군가와 같게 살아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이 서평은 오가닉 오세용이다.



더 자세한 서평은 블로그에...

http://bit.ly/2rtys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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