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던 제목. 미리보기로 한 챕터를 보고는 저자가 '웹사이트' 개발로 돈을 벌었다기에 구입. 나중에 알고보니 친구와 어머니가 읽고 추천했었던 그 책.
막연히 느낌으로 찾아가던 길. 그 길을 지나간 사람의 잘 쓴 후기.
지난 도서 [사피엔스] 에 이어 한 달 만에 새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쓴다. 이 책은 오로지 PC 로만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서점에 들러 이 책의 종이책을 봤다. 세상에, 나는 이 책이 이렇게 두꺼운 책인지 몰랐다. 심지어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지도 몰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두 사람이나 내게 추천했었다는건데, 가까운 친구와 어머니가 이 책을 읽고 내게 이야기를 했었단다.
사실 이 책은 리디북스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e-book 리더기도 왔겠다 책을 마구 구입했는데, 경제에 관한 책을 구입하려 책을 구경하다가 저자가 웹사이트 개발을 했기에 비슷한 부분이 있어 구입했다. 단지 그 뿐이었는데, 구입 후 친구와 어머니께 이 책을 읽는 중이라고 이야기 했다가 '내가 말했던 책을 읽고 있네?' 라는 말에 '아! 맞다' 하고 생각이 났다.
별일 아니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족과 가까운 사람에게 같은 책을 추천 받은적은 처음이며 심지어 그걸 잊고도 이 책을 내가 골랐던 점. 게다가 이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은 점은 내게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여하튼 여러모로 신기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서평을 쓰려고 한다. 첫째는 지난 2년간 내가 비즈니스를 만들었던 경험이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복잡 미묘하게 뒤엉킨 그 감정. 둘째는 그동안 막연히 생각해왔던 내 생각들을 저자가 기깔나게 정리해준 그 내용. 마지막으로 내가 만드는 커뮤니티와 본문의 내용. 그리고 앞으로의 내 생각 등을 적어볼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책의 문장을 107개나 밑줄 쳤을 정도로 굉장히 집중하며 재미나게 읽었다.
2015년 12월 31일. 내 서평과 칼럼을 보면 지겹도록 나오는 이 날은 내가 4년 2개월간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던 날이다. 막연히 뭔가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의욕에 넘쳤고, 열정에 불타올랐다. 그렇게 2016년 1월 1일부터 나는 '도밍고컴퍼니' 라는 스타트업을 만들고, '도밍고뉴스' 라는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달렸다.
비즈니스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비즈니스, 그러니까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고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자동화된 '시스템' 을 만드는 과정, 그걸 잘 모르겠다.
서행차선을 벗어나 부와 자유를 빠르게 얻고 싶다면, 당장 직업을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하겠다. 그 망할 직업을 버려라.
그래, 난 그 망할 직업을 버리려 했다. 나는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했고, 꽤 많은 앱을 만들었으며 내가 속했던 프로젝트에서는 나름 믿을만한 인력이었다. 하지만 난 만족하지 못했다. 내 눈은 언제나 더 나은 사람들,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무언가에 향해있었고, 그것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도전하고 싶었다. 분명 더 재미난 일이 있을거라 생각했고, 난 그곳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비즈니스를 만들지 못했다. 나는 '뉴스 큐레이션' 에 관심이 있었고, 이 분야가 내 욕구와 트랜디한 기술(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을 사용하며 배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현재 이 분야에 대한 고객의 니즈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으며, 기존의 공룡들이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내가 관심있는 기술과 나 혼자 판단한 결과.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한 비즈니스' 를 시작했다.
신규 사업의 90%는 외적인 시장 욕구가 아닌 이기적인 내적 욕구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실패한다.
망할. 이제서야 내 주변의 사람들이 왜 '안된다' 라고 말했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일단 저자의 말처럼 나는 나의 '내적 욕구' 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당시 내가 1년여간 큐레이션을 해왔지만, 전문가는 아니었다. 저자의 말처럼 나는 단지 '애정' 이 있었을 뿐이며, 이 바닥의 본질을 알지 못했고 명확한 니즈를 파악하지 못했다.
길을 잃은 나는 돈이 떨어질때마다 내가 가진 기술로 '돈' 을 벌었고, 그때마다 진행되던 내 비즈니스는 멈췄다. 내가 만든 팀은 깨졌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뭘 하려했는지 잊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그 5,000명의 ‘디스트리뷰터’ 중 가장 탁월한 한 명이 나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 경쟁자는 네이버, 페이스북이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의 페북 유저들이었고, 각 분야의 교수들이었고, 구루들 이었다. 난 터무니없이 긍정적으로 미래를 계획했고, 이런 날 두고 팀원들은 "피터팬" 같다고 말했다.
이상했다. 분명히 나는 추월차선, 그러니까 고속도로가 있는 것을 봤다. 서행차선을 무난히 달리다 어렴풋이 쌩쌩 달리는 포르쉐를 본 것이다. 고속도로 위의 포르쉐는 멋져부렀고, 나는 그 고속도로의 진입로를 찾았다. 하지만, 도밍고컴퍼니라는 깜빡이를 켠 나를 고속도로 위 포르쉐들은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맞다. 지금 상태의 내 엔진이라면 아마 고속도로에 올라가자마자 최저 속도 제한에 걸려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름이 떨어졌을 수도 있고, 어쩌면 쌩쌩 달리는 포르쉐들 사이에서 정신을 놓고, 핸들을 놓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를 고속도로 위로 올려주지 않던 포르쉐들은 경적을 울려대며 소리쳤다.
"인마, 비즈니스 모델이 없잖아! 자선사업이야?"
"페이스북을 만들겠다고? 접어라~"
"어이쿠... 열심히는 하는데... 딱히 뭐... 혹시 다른 아이템은 없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어차피 올라와서 뒤집어질 차, 나중에 좀 더 준비해서 올라오라고 친절히 말해준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향해 '빵빵' 대던 그 경적들이 '조롱' 으로 들렸다.
그렇게 깜빡이를 끄고, 나는 서행차선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왜 그 위로 올라갈 수 없었는지, 그들은 왜 나를 끼워주지 않았던 건지. 다시 돌아온 서행차선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안정적으로 적응했다. 원래, 다니던 길이니까.
나는 잠시 생각을 버리고 그저 눈 앞의 길을 달렸다. 조금 달리다 보니 또 익숙해지더라. 서행차선 나름의 맛도 즐기게 되고, 비포장 도로의 흙냄새 말이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어느새 고속도로는 마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건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
평범하다는 것은 현대판 노예라는 뜻이다.
하지만 물론 나는 이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투덜이>
나는 불만 투성이의 투덜이었다.
이사를 많이 다녔던 유년기에는 또래집단에 속하지 못했다. 덩치가 작아 힘에서 밀렸고, 소심하고 낯을 가려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판을 짜주지 않으면 굳이 나서지 않는 탓에, 그렇게 나는 늘 또래집단의 외곽에서 살았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던건 아니다. 내게도 편한 친구들이 있었고, 때로는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기도 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한 번, 두 번. 이거야 뭔, 내가 뭔가 주도해보니 남이 주도하는건 답답하더라. 하지만 이미 형성된 또래집단, 그래 정치에서 밀린 내게. 뭔가 특출난 무기가 없던 내게 그 사이를 파고들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그저 그런 학창시절이 가고, 나이에 맞는 일들을 해내며 무난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물론 언제나 나는 불만족이었고, 그 불만은 혼자서 투덜대기만 했었다.
선택은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영향 격차(Impact Differential)’라고 한다.
자신감 넘치던 중심부의 친구들은 운동도 잘했고, 공부도 잘했다. 그들에게는 의욕이 넘쳤고 나는 그저 조용히 휴일을 기다렸다. 내가 중심이 될 수 있던 PC 속의 세계, 성당, 친한 친구들. 나는 그런 것들이 좋았다.
몰랐다. 이러한 상황을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보이는 것 중 가능한 일들을 했다.
주말을 기다리며 영혼을 파는 짓을 멈춰라.
그렇게 나는 영혼을 팔며 살았다.
<열정의 폭발>
내가 세상에 눈을 뜬 것은 군 전역 후 3학년 2학기 겨울방학. 우연히 학과 후배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앱 비즈니스 기획' 이란 1주일 교육과정에서 20대 초반의 나는 30, 40대 선배들과 어울리며 사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신기했다. 그들은 필드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고, 내 잠재력을 건드려주었다. 그때쯤 젊은 창업가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젊은 창업가들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동선수처럼 수백만 명에게 어필할 방법을 모르겠다고? 그러면 영향력을 지닌 출처를 찾아가 그 출처를 위해 일하라.
또래의 청년 창업자가 수백명 앞에서 자신의 스토리를 나누는 장면. 나는 그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컴퓨터학과 4학년.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나는 그제서야 코딩을 본격 배우기 시작했고, 세상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주변에 같이 공부할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 찾아다녔고,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 어디든 찾아갔다.
애초에 비어있었다. 뭐든 넣으면 다 들어가더라. 스폰지처럼 성장했다. 사람을 만나려면 서울에 있어야 했다. 집이 경기도에 있기에 친구네 집에서 기생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곧바로 개발 교육을 들으러 나섰다. 2시간 일찍 도착한 교육장에서 나는 뭔가를 더 했다. 너무 피곤해도 차라리 교육장에 가서 잤다.
열정적으로 배우고, 팀을 리딩하고, 밤 10시까지 자습했다. 돌아와서는 새벽까지 공모전을 진행했다.
<얻어낸 결과>
뿌듯했다. 내가 자랑스러웠다. 행복했다. 지금이 1학년이었으면 좋았겠다 생각했다. 얼마 주어지지 않은 학생시절을 압축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순수했다. 이 분야가 어떤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개발을 배우는게 좋았고, 내 아이디어를 실체화 하는게 너무 좋았다. 주위는 모두 배울 것 투성이었고, 배우자 하는 것들은 곧 내 것이 되었다. 그동안 목말랐던 나는 닥치는대로 벌컥벌컥 들이 마셨다.
자신감에 찼던 나는 우연히 참여한 이공계 연계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수백명의 취준생들이 참여한 그 곳에서 나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고, 확고한 방향성이 있었다. 여러 과정을 거친 우리에게는 단단한 중견기업 3개로의 면접자격이 주어졌고, 그 프로그램에서 수백명 중 단 한 사람이 3개의 기업 모두에 면접을 합격했다. 그래 그게 나다.
“경쟁은 어디에나 있어. 그냥 시작해, 더 잘하면 돼.”
자신있었다. 비슷한 또래와의 경쟁은 왠지 그랬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좋은 기회이고, 나는 그 기회에서 내 최선의 모습을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목표는 확실했고, 나는 그 목표를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그 목표를 얻어냈다.
<그렇게 서행차선으로>
그렇게 내 열정으로 만들어낸 '서행차선' 으로의 입장권.
인도에 머물렀던 내게 서행차선은 또 다른 세계였다. 서행차선에서 나는 한 사람 몫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뒤로는 좀 더 나은 직원이 되기 위해. 그 뒤로는 작은 파트의 책임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그 뒤로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적용하기 위해 내 열정을 쏟았다.
그저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몰랐다. 내 눈 앞에 주어진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는 것. "최선을 다하자" 가 바로 우리집 가훈이다. 누가 뭐라고 하던 그저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것. "한 구석 밝히기" 가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가르치던 정신이었다.
나는 분명 부모님이 원하시던 대로 사회에서 '한 사람' 의 몫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 나는 분명 대학에서 가르친 대로 묵묵히 내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 열심히의 끝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아, 맞다. 나는 투덜이었다. 나는 늘 불만 투성이었다. 작은 배움과 그로 인한 성장으로 잠시 가려졌던 내 불만들. 이 불만들이 그저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라고만 하기엔 내 삶이 너무 힘들었다.
평범함은 갈망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대상이다. -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그렇게 나는 주기적으로 '번아웃' 을 겪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그러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주저 앉았다. 얼마 뒤 다시 그동안 못한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고, 다시 얼마 뒤에는 더욱 열심히 한 만큼 주저 앉았다.
나는 매해 응급실에 실려가 강제 휴식을 가졌고, 그 뒤에는 역시 그 몫까지 뭔가를 더 하려고 했다. '도대체 난 누구인가?' 따위의 철학적 질문을 던질때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덜 성숙하여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고 생각했다. 나는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해야하고, 나는 좀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며, 나는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누구도 제시하지 않은 나만의 잣대에 눌려, 그렇게 하루하루를 다람쥐 쳇바퀴만 굴리며 달렸다.
직접 통제하지 못하는 재무 계획은 이룰 수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 해고되지 않으면 좋겠다! 주식이 오르면 좋겠다! 승진하면 좋겠다! 근무시간이 줄지 않으면 좋겠다!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 미안하지만 희망 사항은 계획이 될 수 없다.
<탈출. 그렇게 '포장 도로' 에서 뛰어 내리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 속의 투덜이는 불만을 멈추지 않았고, 갈수록 더 재미없고 우울해지는 이 바닥이 싫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그 누구도 행복하다 말하지 않았다. 아니, 내 5년 뒤 그리고 10년 뒤 모습이어야 할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더라. 해외로 탈출해라, 이 업계를 떠나라, 이번 생은 글렀다.
영어 공부를 해라, 데이터 과학자가 유망하다더라. 지금이라도 공무원을 준비해라. 도대체가 인생에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 뿐, 여기까지는 어쩌다 보니 왔는데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더라. 가장 무서운 것은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더라' 는 것이다.
조언은 자기가 지지하는 방식대로 실천해서 실제로 성공을 거둔 사람에게 들어라.
그만 두었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조언한다는 사람 치고, 내 인생 책임 질 사람 하나 없더라. 누구를 믿을 것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학창시절 이미 끝냈어야 하는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이 질문을 학창시절에 끝난 사람이 없더라. 아니, 이 질문 자체를 끝낸 사람이 없더라.
투덜이의 본능이 맘껏 올라왔다. 이제 그 누구의 삶도 닮고 싶지 않았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면 내 인생이 미치도록 행복해질까? 데이터 과학자가 되면 앞으로의 인생이 문제 없을까? 공무원이 되면 나는 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누구의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젊을 때 하는 선택일수록 큰 위력을 가지며, 젊을수록 더 큰 마력을 지닌다.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싶었다. 나는 그저 나로써 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안드로이드 개발자라는 단어로써 내 모든게 설명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나' 이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감이 넘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세상 모든게 흥미로웠던 그 때로.
그래서 돌아가기로 했다. 나로써 살 수 있는 곳으로.
그래, 그래서 깜빡이를 켰던 것이다. 맞다. 그게 도밍고컴퍼니다.
2011년 대학교 4학년.
생각해보니 그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상에 눈을 떴고, 개발을 본격 배웠고, 취업을 했다. 하지만 역시 2011년 STEW 라는 조직을 만든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풋풋한 20대. 청년들의 멘토링>
한국장학재단 멘토링. 사실 큰 일 아니었다. 그저 자기소개서 제출하고 그렇게 멘토링이 시작되었다. 청년 창업자의 스피치에 감동해 나도 창업하고 싶다며, 창업 멘토링에 지원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함께하는 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내 생에 가장 탁월했던 선택이 그 해에 시작되었다.
우연히 팀장이 되었다. 별거 아니다 그냥 멘토님이 하라고 하셨다. 우연히 만난 이 친구들과 의외로 죽이 잘 맞더라.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 했다. 취업 후 본격 서울에 거주하게 될 때 쯤, 이제 좀 더 이 친구들과 자주 놀 수 있게 되었는데 멘토링이 끝나게 되었다.
아쉬웠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친구들 중 나와 비슷한 '성장에 대한 욕구' 가 있던 친구들은 없었다. 이 친구들은 똑똑했고, 노력했다.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늘 배웠다. 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하면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잘 모르겠는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그런거 있지 않는가? 그래, 단지 그뿐이었다.
<STEW,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취업이 확정된 회사에서 2달 뒤 입사하라고 통보가 왔다. 바로 입사하고 싶다는 내게 인사팀에서는 인생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휴식을 마음껏 즐기다 오라고 했다. 흠...
PPT 를 하나 만들었다. 내 친구들과 만들 조직에 관한 기획안이었다. 이 친구들과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은지를 맘껏 적었다. 신이 났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되고 싶었다.
친구들을 일대일로 만났다. 조직에 대한 내 비전을 말했다. 친구들은 하나, 둘 합류 의사를 보였다. 작은 커뮤니티. 그렇게 STEW 가 시작되었다.
주변에 멘토급을 모조리 모았다. 리스트업한 대상들에 연락을 돌렸다. 내가 학생과 장소를 준비할테니 와서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몇몇 분들이 흔쾌히 허락하셨고, 그렇게 새로운 멘토링이 진행되었다. 내 주변에 성장욕구가 있는 친구들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세미나가 시작되고 20여명의 친구들과 4-5시간 강의를 들었다.
신이 났다. 도대체 왜 그동안 이런 기획을 하지 않았는지 아쉬웠다. 앞으로도 이 조직은 이렇게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세미나를 몇 차례 진행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빠져나갔고 이유는 바빠서였다. 바빠서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조직이 희미해져갔다.
실망스러웠다. 성장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지 않는 친구들이 실망스러웠다. 친구들에게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강의를 해주지 않는 멘토들이 실망스러웠다. 지원을 요청하는 요구를 무시하는 재단이 실망스러웠고, 다음 스탭을 제시할 수 없는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조직은 희미해져갔다.
몇 달이 흐르고, 우연히 누군가의 생일로 만나게 된 친구들. 여전히 그들은 활기가 넘쳤고, 여전히 멋진 내 친구들이었다. 이들과 뭔가를 함께하고 싶었다. 그동안 적어둔 기획안을 다시 꺼내들었다. 주변의 어른들을 모아 일거리를 만들었다. 의류 마케팅, 지역 마케팅. 하나씩 일이 생기고, 관심있는 친구들을 모았다. 다양한 친구들이 열정을 가지고 모였다며, 다양한 재료로 뜨겁게 끓여내는 STEW 를 우리 이름으로 하자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팀이 되었고, 열정을 쏟았다.
아쉽게도 우리는 원하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회 초년생일 뿐, 무언가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톡톡튀는 아이디어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능력은 없었다. 진행되던 일들이 중단되고, 친구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조직은 희미해져가고, 우리는 이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모임이 간간히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회에서 깊은 고뇌를 계속했다. 친구들은 하나, 둘 사회에 나오고 내가 겪었던 것들을 같이 겪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이며, 뭘 해야하고,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따위의 고뇌 말이다.
우리는 다시 모였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서로의 경험과 열정이 필요했고, 추억이 필요했다. 나는 다시 그동안의 기획안을 꺼냈다. STEW 이니셜을 따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한 해를 기획하고, 노하우를 나누고, 일상을 기록하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등.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래, 세상에 없는 그저 우리만을 위한 그러한 조직이 되었다.
<친구들.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이유.>
부의 추월차선을 읽으며, 나는 계속해서 STEW 가 생각났다. 사실, '부' 라는 것만을 보면 이 조직은 존재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내 에너지를 몹시도 빨아먹으면서 단 한푼도 벌어내지 못한다. 일찍이 이 조직에 대해 고민할 때 '대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멘토로 꼽힌 사람' 을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어 물었다.
"지금 이 친구들과 이런 것들을 하고 싶습니다. 근데, 잘 안되네요. 어떻게 할까요?"
이러한 내 질문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본인이 유명해지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 친구들도 모일거에요. 그때 만드세요."
아마 저자 또한 저 사람과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본문에 반복해서 '한가지에 집중하라' 라고 하고, '열정을 쏟으라' 고 말한다. 안다. 나는 욕심이 너무도 많아서, 이런 조직도 만들고 이것저것 손 데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저자의 조언처럼 내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나는 행복할까?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유명한 멘토의 말을 듣지 않은걸 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세상엔 단순 숫자들로 계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다. 내게 이 조직이 그러하다.
그리고 계산되지 않는 무언가를 따라갈줄 아는 것이 우리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동안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조직의 힘이 매우 크다. 나는 이 친구들에게 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친구들이 힘들때 함께이고 싶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수십억 달러 매각 제안이 사건이라면, 회사가 성장하기까지 기울인 노력과 비하인드 스토리는 과정이다.
그래, 저자의 말 처럼 이러한 조직이 굉장한 사건이라면, 조직이 성장하기까지 기울인 노력과 비하인드 스토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우리만의 소중한 추억이며.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의 일부분이다.
나는 이 조직을 계속해서 만들어갈 생각이다. 앞으로 취하고 싶은게 생길 때마다 무언가 버려야 할 테지만, 이 조직만큼은 최후까지 남아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다.
아마도, 저자와 나의 차이점 중 가장 큰게 이 STEW 라는 조직의 유무가 아닐지 싶다. 부의 추월차선을 타기 위해서는 한가지 비즈니스에 몰두해야만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이 조직을 버려야 한다면 나는 추월차선을 포기하겠다.
사실 이 책의 도입부를 지나 1/3 지점까지는 하찮은 조소를 날리며 읽어나갔다. 책 자체는 매우 술술 읽히는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만을 늘어놓는게 아닌가? 게다가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당신이 왜 지금 그러고 있으면 안되는지에 대해 너무도 길게 설명을 했다.
이미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인지한 나로써는 굉장히 시간 낭비였다. 서로가 동의하는 내용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저자 본인의 비즈니스 이야기로 넘어와서는 엄청나게 집중해서 읽었다. 저자는 내가 막연히 내 느낌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들을 명확히 적어냈다. 이 내용들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이토록 명확히 적어낼 수 있음에 놀랐고, 또 한편으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음에 그리고 그 사람이 매우 부자임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통제' 에 대한 부분이 너무도 공감되었다.
시간은 인생의 원동력이 되어야지 돈과 맞바꿔져서는 안 된다.
나는 개발자가 참 마음에 든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내 머릿속의 무언가를 실체화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싸구려 기술로 굳혀졌다.
나는 지금도 이 기술을 가지고 일하지만, 사회는 내 기술이 아닌 내 시간을 구입한다. 월단위 단가를 책정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라는 방식이다.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습득해야 할 지식과 기술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알바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라고 한다. 문제는 월단위 계약이다. 월급쟁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대부분의 프리랜서 계약 또한 월단위다.
나는 충분히 그들이 원하는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결과물을 내놓길 바랬다.
나는 내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일을 혐오한다. 나는 노예가 아니다. 나는 자아가 강하고, 내 주도적으로 살아야만 행복하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비즈니스를 만들며 직원을 채용하게 되었었는데, 처음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한 달간 생활하며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세상에 단 돈 3천만원만 있으면, 빠릿빠릿한 대졸 신입사원을 무려 1년간 노예로 쓸 수 있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과연 그럴까?
내가 돈이 100억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3천만원이 큰 돈일까? 3천만원 10명이면 고작 3억이다. 3억원으로 노예 10명을 1년간 부릴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런식으로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지, 그리고 내가 그 수많은 노예 중 한 사람으로 살았던 그 시간엔 왜 깨닫지 못했는지.
그들이 왜 나를 통제하려 했는지, 왜 내가 통제 당하고 싶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것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점이 얼마나 벌어질지...
부의 추월차선은 지금 시점의 내게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동안의 내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었고, 내 마음을 조금은 편안히 해주었다. 물론, 저자가 말한 것을 곧이곧대로 행동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얼마 뒤 있을 내 휴가에 나는 저자가 말했던 몇가지 툴을 사용 해볼까 한다. 도대체 내가 만족스런 삶을 살려면 얼만큼의 금액이 있어야 할지. 그 금액을 어떻게 벌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어떤 준비들이 필요할지.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하는건,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느냐다.
결국 내가 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은 "부의 추월차선" 이 아니라,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