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vs영화] 파반느, 원작 훼손일까 완벽한 진화일까

소설 죽은 왕녀의 파반느, 영화 파반느

by 오서

원작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 영화는 비극일까, 아니면 로맨스일까.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덮으며 생긴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엔진은 '누가 봐도 끔찍하게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시선 교차에서 폭발하기 때문이다.


활자는 독자의 상상력에 기대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여자를 그려낼 수 있지만, 카메라는 피사체를 물리적으로 전시해야만 한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여배우가 조금이라도 예쁘다면 원작 소설과는 거리가 먼, 흔해 빠진 로맨스가 되어 극의 몰입은 깨질 것이다. 그렇다고 평범한 외모의 배우를 억지 분장으로 추녀를 만든다면, 그 또한 조잡한 코미디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반대로 외모의 추함만 강조한다면 외모 지상주의 시대의 비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배우님, 못 생겨서 딱입니다. 캐스팅할게요.


난 이 소설을 읽을 때, 넷플릭스 영화로 나온 파반느를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먼저 소설의 문체가 너무 디테일하고 감성적이라 영화로 만들기 정말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문체를 어떻게 화면으로 표현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처럼 누구나에게 웃음거리가 될 정도의 추녀 역을 맡을 만큼 못 생긴 여배우는 누가 할 것이며, 캐스팅 제안을 받는다 해도 기뻐해야 할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몰입감을 위해 책을 완독 하기 전까지는 영화 파반느의 그 어떤 정보도 접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완독 한 후 이종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정 역에 고아성이라니. 그녀는 누가 봐도 '못생긴 여자'가 아니지 않은가?


영화 파반느 포스터





활자의 폭력, 영상의 은유 : '추함'의 자리에 '고립'을 채우다


소설 속 1980년대는 폭력적인 경제 발전의 시대다. 백화점이라는 가장 화려한 자본주의의 쇼윈도 아래, 어두운 주차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은 철저히 대비된다. 소설의 텍스트는 미정의 외모를 향한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가감 없이, 때로는 잔혹하리만치 집요하게 묘사한다. 독자는 활자를 읽어 내려가며 인간 본성 밑바닥에 깔린 얄팍한 우월감과,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드는 추악한 혐오의 정서를 거울처럼 마주하게 된다.


반면, 영화는 시청각 매체다. 외모에 대한 1차원적인 조롱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다면 불쾌감만 남았을 것이다. 여기서 감독과 고아성의 영리한 타협이 빛을 발한다. 영화는 미정의 물리적인 '추함'을 재현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의 폭력적인 시선이 한 인간을 어떻게 질식시키는지에 집중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굽은 어깨, 방어적으로 교차한 팔, 그리고 무엇보다 고아성 특유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 영화 속 미정은 단순히 외모가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부유하는 '현대인의 근원적인 고립감' 그 자체로 확장된다. 소설이 대중의 노골적인 시선을 직설적으로 전시했다면, 영화는 이를 현시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단절과 외로움으로 은유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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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저자입니다. 2025년에 이어 2026년 문학상주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 힐링 강연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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