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맨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나만의 방법 몇 가지쯤은 가슴속에 잘 품고 있어야 해요. 저한테는 그중 하나가 바로 불닭볶음면인데요. 불닭볶음면은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준 아주 큰 지분을 가진 은인이에요. 이것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게 없지요. 오늘은 삼쩜삼의 일대기를 그 출생부터 스케일업 과정까지 차근차근 따라가볼 생각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불닭볶음면과 닮은 구석이 꽤 있는 것 같아 함께 이야기해 보려고요.
IT 업계에서 MVP를 만들고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식품 업계에서도 시제품을 제작하고 시범 점포에 납품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그리고 불닭볶음면은 그 시제품 테스트 과정에서 비참한 성과를 거둔 실패작이었어요. 지금이야 매운 짬뽕, 매운 김치 등 폭력적이다 싶을 정도로 매운 음식들이 인기류에 있지만 2012년도였던 그 당시에만 해도 불닭볶음면은 대중들이 사랑하기에 너무 엄한 제품이었어요. 시제품 첫 발주 이후 그 어느 점포도 재주문을 하지 않아 삼양에서도 단종을 고려했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온라인 중고마켓에서 불닭볶음면이 거래되는 모습을 포착했어요. 매운맛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환영받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 삼양은 알았죠. '니즈가 있다!'. 마니아층만 겨냥하더라도 충분히 출시할 명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오늘날 불닭볶음면은 삼양의 전체 매출의 68.7% 담당하는 효자 상품이 되었어요 (2022년 1분기 기준).
삼쩜삼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삼쩜삼에게는 '돈 받자'라는 조상 프로덕트가 있어요 (돈 받을 땐 자비스의 준말이라고 해요). 돈 받자는 원래 자비스앤빌런즈의 메인 프로덕트가 아니라 '미끼 상품'이었어요. 그 당시 자비스앤빌런즈가 메인으로 밀고 있던 AI 경리의 유료 사용자를 높이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무료 킬러 앱을 구상하다가 만들어진 것이 바로 돈받자였죠. 좋은 미끼 상품을 만들려는 자비스의 노력(=끊임없는 테스트와 가설 검증)이 원래 목표로 삼았던 지점보다 더 큰 곳을 정복할 수 있게 해준 거예요.
불닭볶음면은 원래 닭갈비 볶음면으로 기획된 상품이라고 해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달콤 짭짤한 닭갈비와 라면사리의 맛을 재현하는 라면이 초기 목표였죠.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삼양의 사장이었던 김정수 사장은 우연히 명동거리를 걷다가 수많은 인파가 매운 불닭집 앞에 모여있는 걸 보게 돼요. 그것을 계기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매운맛에 대한 니즈를 파고들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달달한 닭갈비 볶음면은 눈물 쏙 빠지는 매운 불닭 볶음면으로 피봇했어요.
다시 돈 받자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돈 받자가 처음 기획될 때 그 핵심 기능은 미수금 받아주기 였어요. 사업자들에게는 현금 플로우가 매우 중요한데요. 무언가를 판매해서 회계상의 매출을 올리는 시점과 내가 실질적으로 그 판매에 대한 대가를 받는 시점 간에 공백이 있고 그 공백 사이에 유입자금보다 지출 자금이 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건 아주 큰 재정위기를 낳게 돼요. 하지만 많은 사업자들이 이미 완료된 세일즈의 미수금까지 일일이 신경 쓰는 것에 한계를 느꼈어요. 사업 운영과 세일즈만으로도 엄청 바쁘니까요. 이러한 문제점을 포착한 자비스는 시장 조사에 착수해요.
관련 업계 종사자 72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의 69.9%가 사업 미수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업이 소규모이고 인력이 부족할수록 그 미수금은 커졌고요. 평균 미수금은 6,120만 원. 많은 회사들이 아직도 엑셀, 전화, 이메일 등을 수기로 이용하여 미수금 회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고 전체의 61.2%가 현재의 일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다고 응답했어요. '니즈가 있다!' 모먼트였죠. 그리고 이 문제를 기술로 해결해 준 MVP가 바로 돈 받자였던 것이고요.
확신을 주는 데이터를 갖고 베타서비스를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서비스에 다가온 사용자들 중 대부분, 아니 거의 다가 원래 기획했던 타겟층이 아니라는 걸 이내 발견하게 돼요. 돈 받자는 사업자를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이고 돈 받자의 핵심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홈택스 인증을 거쳐야 하는데 그 절차는 애초에 개인이 아닌 사업자만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어요. 그런데 이 서비스 이용자의 무려 80%가 개인 사용자라는 걸 베타서비스 도중 깨닫게 된 거예요. 기존에 계획했던 타겟 고객(사업자)를 유도하기 위해 이런저런 마케팅 시도를 벌였지만 여전히 벌떼처럼 모여드는 건 일반 개인 사용자였어요. 이쯤 되니 '도대체 개인 사용자(비사업자)들이 받고 싶어 하는 돈이 뭐길래 이렇게 사업자용 플랫폼에까지 찾아와서 난리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개인 사용자가 '돈 받자'라는 말에 이끌렸다는 것에 분명 이유가 있었어요. 그리고 자비스는 그걸 또 파고듭니다. 돈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미수금은 그들에게 해당이 안 된다. 그렇담 우리가 찾아줄 수 있는 돈이 또 뭐가 있을까? 이러한 고민의 고민 끝에 종합소득세에 환급금의 기회가 있음을 포착한 자비스는 또 재빠르게 새로운 MVP를 제작해요. 종합소득세 신고 버전의 돈 받자를 만들어 비사업자를 대상으로 베타테스트에 들어갔고 환급금 조회와 신고, 이 두 가지의 가설을 빠르게 검증했죠. 가설 검증 완료 후 더 큰 확신을 얻은 자비스는 이름마저 새롭게 바꾸어 삼쩜삼을 출시하게 돼요.
마니아층에게만 소량 팔릴 줄 알았던 불닭볶음면은 매운맛 트렌드 + 유튜브를 통한 해외 바이럴을 통해 급성장했어요. 그리고 삼양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사실 그 당시의 삼양은 장수 효자 상품인 삼양라면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고 그 시점에서 불닭볶음면이 빵 터져버린 거예요. 물이 들어올 때 빠르게 노를 저어야 했겠죠. 신속하게 다양한 후속작들을 내놓았고 특히 해외 시장에서 인기가 있을 만한 니치 제품도 성실하게 출시했어요. 히스패닉 구매자를 겨냥한 옥수수 맛, 남아시아 구매자를 겨냥한 카레맛, 그리고 중국 음식 취향을 겨냥한 마라맛까지. 이 나무위키에 따르면 한정판 포함 28가지의 다른 버전이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라면 역사 중 가장 활발한 시리즈 번식(?)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노력 덕에 유튜브 바이럴도 한철 잠깐이 아닌 장기 유행이 될 수 있었어요.
삼쩜삼은 출시 2년 만에 가입자 수 1000만 명 돌파, 누적 환급액 2,600억 원을 돌파하며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냈어요. 급성장의 아이콘이라고 볼 수 있는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와 견주었을 때도 월등히 빠른 성장 속도라고 하는데요. 하단의 그래프만 봐도 그 트래픽과 거래량 추이에서 눈에 띄는 J 커브가 포착되죠.
이 성공 뒤에는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긱워커들의 니즈를 똑똑하게 잡아냈다는 점도 있지만 바이럴 또한 그 한몫을 톡톡히 했어요. 타겟을 명중하는 프로덕트 + 바이럴. 삼쩜삼이 이 기회를 놓쳤을 리 없죠. 물이 들어왔으니 빠르게 노를 저을 차례였어요. 종합소득세 신고 자체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로 인해 나에게 환급받을 공돈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더욱이나 생소한 사실이었어요. 삼쩜삼의 성장에 탄력을 가하기 위해선 본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 있음을 고지하는 리터러시 증진이 선행돼야 했음을 의미해요. 그래서 주요 사용자 층이었던 2030을 겨냥한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활발히 벌이기 시작했고 그 캠페인들은 유저 수를 증폭시키는 데에 크기 기여했어요 (관련 블로그)
앞서 말한 것처럼 삼쩜삼이 성장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수많은 가설 검증 시도가 있었고 그때마다 테스트할 수 있는 MVP가 필요했어요. 이때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하는 것처럼 비교적 개발이 빠르고 접근성이 좋은 웹 기반으로 개발되었는데요. 삼쩜삼 김병석 CTO의 인터뷰를 인용해 보자면, 기존 인력들에게 익숙한 Vue.js를 이용하고 AI 경리를 만들 때 사용했던 묵직한 프레임 워크 대신 MVP 개발에 적합한 프레임워크(Laravel)을 채택한 후 용도에 맞게 최적화하여 사용했다고 해요. 이러한 기술적 사항들을 잘 커스텀화하여 객체와 DB를 자동으로 연결, 개발자들이 SQL 쿼리를 하지 않아도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까지 조성해 주었다고 하는데요. 저한테는 약간 어려운 단어들이긴 하지만 뛰어난 기술 지식으로 MVP 개발 과정을 극도로 최적화했다는 그 업적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네요.
이렇게 애자일한 검증 단계를 거치고 출시된 삼쩜삼. 세상에 나오자마자 큰 관심을 받았지요. 어느새 빠른 개발을 주 목적으로 구성한 기술 스택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단계에 올라온 거예요. 트래픽이 많아질수록 서버의 위험 부담도 커지고, 늘어난 요구사항을 반영할 유연성도 필요해요. 그래서 미래를 위한 선택으로 PHP의 Laravel 대신 Java의 Spring을 새로 채택하여 안정성을 잡고, Vue.js 대신 React.js를 채택하여 신속성을 잡았어요. 프로덕트가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나갈 때마다 그 기술 스택도 함께 호흡해야 함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해요.
자비스는 최근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했고 현재 429억의 누적 투자금액을 보유하고 있어요. 사업자의 세무업무를 도와주는 AI 경리와 세무 사각지대에 놓인 긱 워커들의 숨은 돈을 찾아주는 삼쩜삼을 넘어 긱 워커들을 위한 올인원 플랫폼이 되는 것을 장기 비전으로 제시한 바가 있어요. 긱 워커들의 채용을 돕는 채용 플랫폼 굿 잡이 가장 따끈따끈한 신사업인데요. 세금 환급과 채용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긱 워커들을 응원할 거라 하니 기대가 되네요. 긱워커를 위한 밀착형 파트너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는 앱 출시가 있겠는데요. 웹으로 검증한 아이디어를 작년에 모바일 앱으로 선보이며 그 안정성과 접근성을 더 높였어요. 올 초에는 참신한 UI/UX 인력을 장전한 기업 스무디를 인수합병하면서 모바일 서비스 안정화 및 UX 향상에 힘을 실었고요. 본격적으로 스케일업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보여요.
글을 쓰다보니 '자비스앤빌런스는 창업 초반부터 긱 워커를 위한 경제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이 회사의 창업자가 아니니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요. 사업자를 위한 AI 경리를 더 잘 팔기 위해 만든 돈 받자, 그리고 돈 받자를 만들다가 검증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종합소득세라는 기회 구역 그리고 종합소득세 환급 대상자인 긱 워커들이 세무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는 팩트. 이 모든 게 계획된 시나리오라고 하기엔 그 스토리가 너무 흥미진진하죠.
결국 고객을 이해하고 숨은 니즈를 찾는 과정에서 특정 도메인이나 영역을 초월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더라고요. 고객의 부를 증진시키겠다는 미션을 쫓으며 사업자도 쑤셔보고 비사업자도 쑤시다 보니 오늘날의 삼쩜삼이 탄생했잖아요. 전 제 주변인들을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자는 미션으로 살아가는 1인이에요. 그걸 쫓다 보니 대학교도 가게 되었고, 전과도 하게 되었고, 잦은 이직도 하게 되었고, 또 지금은 이렇게 부트 캠프까지 수강하고 있어요.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나 자신을 비교하다가 자존감이 바닥치기가 매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가끔 내가 너무 빙빙 돌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 삼쩜삼이 하나의 미션으로 이곳저곳 돌다가 가장 필요한 곳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모습을 보니 저도 위로를 받네요.
출처
“이보다 더 빠를 순 없다”...1천만이 쓰는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팀의 성장 스토리
생존을 위한 피봇팅이 만든 성공…삼쩜삼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