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자 서문
1947년 미 육군 항공대는 미국 본토 상공에 출현하는 괴 비행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해 6월 워싱턴 주의 레이니어 산지에서 자신의 비행기를 조종하여 실종된 군 수송기 탐색 작업을 도와주던 부보안관 케네스 아놀드Kenneth Arnold는 접시 형태의 비행체들을 목격했다. 그 다음 달, 뉴 멕시코주 로스웰에 주둔하고 있던 군 부대 대변인이 비행접시가 로스웰 근교의 목장 근처에 추락해 군에서 회수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놨다. 하지만 곧이어 상부기관에서 보도 관제를 실시했고, 군부는 돌연 이 모든 것이 오보였다고 발표했다.
케네스 아놀드, 로스웰 사건은 1947년 6월 말에서 7월 사이에 발생한 1,000여 건의 UFO 목격사건 중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 여름의 UFO 소동은 일반 시민을 비롯하여 매우 신뢰할 만한 항공기 조종사들의 목격 사례가 잇따르면서 더욱 가열되었다. 미국의 주요 신문에는 그해 하반기에만 수백 건의 UFO 기사가 실렸다.
그해 9월, 육군 항공대 소속의 항공 군수사령부는 괴 비행체들이 기존의 어떤 비행체와도 다른 종류라는 결론과 함께 본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1948년 항공대가 육군에서 독립되어 공군이 되면서 ‘프로젝트 사인Project SIGN’이라는 괴 비행체 전담반을 설치 운영했다. 이 조직은 그 후 ‘프로젝트 그러지Project GRUDGE’로 그 암호명이 바뀐다.
1952년 초, 미 공군은 괴 비행체 전담반의 암호명을 ‘프로젝트 블루 북Project BLUE BOOK’으로 바꿨다. 이때부터 괴 비행체는 UFO라 불리게 된다. 1952년에 갑자기 미국 전역에서 UFO 목격보고가 급증했다. 1952년 7월 말 워싱턴 DC 백악관 상공에 UFO가 출현하여 여러 차례 공군 요격기가 출동하는 소동이 있었다. 여러 대의 UFO들이 지상 관제탑 레이더와 출격한 조종사들 육안에 포착되었다. 워싱턴 포스트 1면에 그것들이 전투기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는 조종사의 주장이 헤드라인으로 실렸지만 이 사건은 기온 역전층에 레이다 신호가 반사된 것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UFO현상은 주기성을 띠고 있었다. 몇 년간 잠잠하다가 1957년에 미국에서 또다시 UFO소동이 일어났다. 미 공군은 1957년의 UFO급증 사태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고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 때문이었는지 곧 목격 보고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UFO소동이 1965년 하반기부터 미국 전역에 불어 닥쳤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 국방부는 칼 세이건Carl Sagan을 비롯한 자문 과학자들로 결성된 UFO조사 임시 위원회를 결성해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종결시키려 했다. 이 위원회는 그동안 미 공군에서 진행되었던 UFO조사 프로그램의 각 분야 민간 전문가들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