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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간가 Mar 01. 2019

완벽해야 한다는 완벽한 착각.

나쁜 습관 팝니다 17. 모든 걸 남만큼 하려 하기.



| 수많은 호칭 속. 분투하는 나.


   내가 가진 그리 특별하지 않은 호칭들이 있다. 남편, 아빠, 아들, 동생, 사위, 제부, 사촌 형, 사촌 동생, 조카, 친구, SW 개발자, 연구원, 직장인, 선배, 후배, 옆집 사람, 아랫집 사람(1 층에 살아 윗집 사람은 될 수 없다), 등등. 몸 담은 곳곳마다 나름의 직함과 호칭이 생겼고 저마다의 내가 매 순간 열심히 살고 있다. 아직까지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고 마주치기 불편한 사람이 많진 않으며(전혀 없진 않다) 퇴근하면 아이들이 뛰어나와 반기고 저녁밥이 준비되는 것을 보면, 나름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사람들은 책임감을 가진다. 잘하려고 한다. 맡은 바 업무를 문제없이 처리하려 노력하고 가족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술 마시는 것도 크게 주저하지 않으며 남의 험담에도 맞장구를 쳐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몸이 가루가 될 듯 녹초가 되어도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눈곱을 떼는 즉시 찬 바람을 맞으며 다시 회사로 향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좋지 않은 아침에도 옅은 미소로 '좋은 아침'을 연발하고 빈 속에 쓴 커피를 들이부으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게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 비교로 만들어지는 완벽을 위한 의무감.


   일상. 모든 사람들이 큰 생각 없이 해내고 있는 것들의 나열이다. 크게 새로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런 일상에 조금씩 지쳐간다. 새로움이 없어서, 무료해서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 순간 더 나아지려는 노력으로 나도 모르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지만 억지스럽게 반달로 만든 쾡한 눈가엔 다크서클이 가시질 않는다.


   열심히지만 충분치 않다. 누구보단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누구보단 가정에 충실하지 않으며 또 누구보단 대인관계가 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불충분한 느낌으로 더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분명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만족스럽지 못하고 몸은 힘들다. 그러다 보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힘들다고 이렇게 투정을 부리고 있다.


   힘들다. 솔직하게 지금의 상태를 한 마리로 요약하면 이보다 간결하게 정리될 말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쟁취한, 혹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역할에 지쳐간다. 다른 사람도 다하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맞다. 모든 것이 비교로 시작됐다. 다른 사람은 이런다는데 저런다는데, 이래야 한다는데 저래야 한다는데. 이런 비교로 뭔가 부족해 보이는 자신을 자꾸 다그친다. 영상매체, 책,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그런 비교를 부추기는 것들이 주변을 꽉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비교들이 조금씩 나를 압박해 내 몸과 마음을 쥐어짜고 있다.


| 애초 잘못 세워진 기준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쓴 조던 피터슨 교수는 혼돈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 대책을 세우거나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삶을 편하게 할 수 있단다. 그래서 나를 압박하는 비교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느 동료의 육아 방식, 어느 동료의 업무 방식, 어느 동료의 투자 방식.... 잘들한다(비꼬는 말투 아님). 아빠로서, 연구원으로서, 투자자로서. 잘 해내고 있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재테크 고수 투자자는 일 잘하는 연구원에게 혼이 나고, 일 잘하는 연구원은 육아전문가 아빠에게 육아 조언을 구하며,  육아전문가 아빠와 일 잘하는 연구원은 쉬는 시간마다 재테크 고수를 찾아간다. 그렇다.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총합과 비교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일당백도 아니면서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잘못된 비교대상과 비교방식으로 힘들어한다. 누군가의 10가지 중 5가지의 장점과 다른 누군가의 10가지 중 5가지의 장점을 데리고 와선 비교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중요치 않다. 누가 되었든 그런 행태가 만연하다는 게 문제다. 너무 당연시한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교당한다.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에서 나 스스로도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 비교에 당당히 맞설 수 있다면야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멋쩍게 웃을 뿐이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숙인다.


|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가끔은 남들도 나와 같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단언컨대 없다.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도 고충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완벽하지 못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스스로 문제을 안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바꾸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 때문에 비교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마치 권유하듯 말하고 있지만 나에게 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다. 그저 그 바쁨 속에 비교하기를 즐길 뿐이다. 내가 자꾸 즐기다 보니 남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에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지나치게 신경 쓰게 된다. 그러니 지나친 조명 효과(스스로 무대 주인공처럼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을 거라는 착각)로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자신을 더 생각하고 산다. 한 번은 하루 종일 옷을 거꾸로 입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저런 평가와 비교가 난무하지만 나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저 순간순간 비교하길 즐길 뿐이다. 그 잠깐의 비교 놀음에 연연하며 스트레스받고 무리할 일이 아니다.


|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


   SW 개발에서 객체 지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SW의 독립된 기능을 객체 하나하나에 위임하여 기능의 추가, 변경 등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개발 방식이다. 여기엔 다형성이라고 하는 핵심 특징이 있다. 동그라미라는 핵심만 두고 이를 얼굴도 그리고 자동차 바퀴도 그리고 지구도 그리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사람도 다형성을 지닌다. 회사에서는 연구원,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빠다. 각각은 유사하지만 특화되고 독립된 능력이 있다. 회사에서의 사무적인 말투는 집에서 편안하게 바뀌고, 집에서의 지극히 인간적인 방정맞은 행동은 회사에서 절제된 동작으로 변모한다. 가정의 화목을 이끌고 있는 가볍고 방정맞은 언행과 업무의 효율화를 위한 다소 딱딱한 언행은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다. 매 순간 다른 모습이지만 '어느 정도는 하는 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거다. 직장인으로서의 의무감과 책임감,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부성애와 동지애, 아랫집 사람으로서의 참을성. 누구나 이런 다형성을 알게 모르게 본능적으로 조율하고 활용하고 있다.


   누구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처럼 매일같이 늦게까지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처럼 기념일마다 값비싼 선물을 건네지 않는다고 해서, 아빠로서 연구원으로서 남편으로서 부족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는 하는 나'라는,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일전의 어느 드라마에서 처럼 "그게 최선입니까?"라고 물으면 머리를 긁적일 테지만 당당히 "할 만큼은 하고 있어요"라고 답할 순 있다.


   집에서 재잘거리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간간이 난다. 회사에서 부탁해, 수고했어라는 얘기가 오간다. 명절이면 가족이 모이고 서로 안부를 묻는다. 잘 살고 있는 거다. 완벽하진 않아도 조화롭게. 그렇게 구슬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굴러가진 못해도 물처럼 굽이쳐 흐르고 있는 거다. 때론 꺾이고 부딪쳐도 멈추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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