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디자인 연구소 Data x Design workshop을 시작하며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빅데이터, 데이터 분석 등이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나는 UI 디자이너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화면을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넘쳐나는 자료, 정보, 사실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Interface designer의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더욱 '데이터'라는 요즘의 트렌드에 익숙해지고 싶었고, 굉장히 객관적이고 수학적일 것 같은 이 미지의 영역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던 차에 지인이 Data x Design workshop 모집글을 보내줬다.
해당 워크샵은 서울 정보 디자인 연구소 (SID lab)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수업내용은 아래와 같다.
Data for Data Visualization _Data Literacy
R Basic for R Graphics _Graphics Literacy
How to Edit R Charts in Adobe Illustrator _R & Illustrator
NewYorkTimes Graphics Tools in Adobe Illustrator _Ai Script & ai2html
R...이 일단 뭔지 모르지만 일러스트레이터는 아니까 해볼 순 있겠지 - 하는 마음에 신청했다. 데이터를 읽고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차근차근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데이터에 대한 나의 갈망은 나의 졸업작품에서 시작된다. 요새 말하는 IT업계 데이터는 아니지만 이론을 세우는 데 기초가 되는 사실, 또는 바탕이 되는 자료를 모으는 작업이긴 했다. 졸업작품으로 한국의 수제맥주를 소개하는 가상의 브랜드를 만들고, 수제맥주 양조장 아카이브를 만들어보려고 했었다. 데이터를 모으다가 지치기도 했고 어떻게 보여줘야할지 막막했다. 결국 브랜딩 위주의 작업이 되었지만, 그 막막한 상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그 데이터는 내 PC에 고이 잠들어 있다...
당시에 모았던 데이터는 국내에서 맥주를 양조하는 양조장들의 주소, 전화번호, 홈페이지, SNS, 시그니처 맥주들, 직영 펍 리스트 등이었다. 하지만 위탁생산하는 양조장, 직영 펍이라 해야할지 애매한 펍, 큐레이션만 하는 펍, 생산량이 이제는 거의 대기업 수준이 된 양조장 등 양조장을 나누는 기준이 애매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보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그 수제맥주를 어디서 마실 수 있냐'였는데, 이 데이터는 수시로 바뀌고, 크롤링해서 모을 수 있는 데이터가 아니어서 포기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은 양조장 지도였고, 전시회 당일에는 개발자 한 분이 도와주셔서 가까스로 양조장 아카이브 사이트를 전시할 수 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더 흥미롭게 수제맥주를 보여주는 방법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 양조장에 얽힌 역사와 스토리가 있고, 수제맥주에도 1세대, 2세대, 3세대를 거치며 변화하는 흐름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당시엔 졸업전시 자체가 너무 압박으로 다가와 시도를 못해봤다.
다시 데이터 디자인 워크샵으로 돌아와, 오늘은 모든 멤버가 모이는 첫날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을지 정말 궁금했다. 총 14명으로 내 생각보다는 아늑한 분위기였다. 3팀으로 나뉘어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고, 배여운 선생님이 워크샵 소개를 해주셨다. 배여운 선생님은 현재 홍익대학교 국제 디자인 전문 대학원에서 데이터 디자인 관련 수업을 하고 계신데, 그동안 데이터 관련 작업을 정말 많이 하셨다. 나름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데이터 디자인이 이런 분야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 넓은 디자인 세상...!)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선생님께서 올해 3월 스페인에서 열린 말로 피에(Malofiej) 서밋 과 어워드, 워크샵을 소개해주셨다. 스페인 나바라 대학은 인포그래픽으로 매우 유명하고, 스페인 디자이너들은 인포그래픽 발전에 큰 공헌을 해왔다고 한다. 국내와는 다르게 정보디자인이 해외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말로피에 어워드는 인포그래픽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 지도 제작자 알렌드로 말로피에(Alejndro Malofiej, 1938~1987)를 기리는 대회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말로피에의 업적을 발굴하며 1993년에 이 상을 제정했고, 이와 함께 인포그래픽 서밋도 조직한 것이다. 아래 사진은 말로피에의 작업 중 하나.
25회째 진행되는 서밋, 그리고 여기서 진행된 'Show, Don't Tell!' 워크샵은 이름부터 감명 깊다.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 우리 디자이너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 직관적으로 한 번에 이해시킬 수 있는 디자인...!
선생님께서 워크샵의 진행과정과 느낀 점을 말씀해주셨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Beyond Tool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왠지 기계가 알아서 다 해줄 것 같은데, 팀원들이 자료들을 카드에 일일이 쓰고 분류하고 손으로 쓰면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요새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구현할지에만 신경 쓰느라 데이터에서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 소홀하다는 점을 지적하셨다.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에 치중해서 '이 데이터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는 정작 신경 쓰지 못했다. 졸업작품이 다시 생각이 났다. '수제 맥주'라는 아이템, 그리고 힘들게 모은 DB를 보여줄 생각만 하고 어떤 이야기를 말할지는 깊게 고민하지 못한 것 같다.
그동안 데이터를 너무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만지면 안되는 것으로 느꼈다. 0과 1로 이루어진 가상의 뭔가이고 Narrative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관찰자로서 데이터를 다루면서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이걸 어딘가에 활용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데이터를 다루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나의 이야기, 목적을 더 잘 전달하고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나.
데이터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
툴에서 잠시 벗어나 이야기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는 즐거웠다. 발전하는 기술과 서비스들로 인해 데이터를 얻고 분류하는 것은 점점 쉬워질 텐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내가 했던 노가다들이 R과 Python으로 쉽게 되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슬퍼졌다ㅋㅋㅋㅋ) 먼저 나열된 자료들을 보며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그 이야기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류, 분석해야 한다. 그다음에 툴을 사용해 시각화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기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깨닫기가 이렇게 어렵다.
이후에는 뉴욕 타임즈나 가디언,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정보 디자인을 중요하게 다루고, 또 아주 잘하는 곳들의 작업들을 몇 개 보여주셨다. (보여주신 자료와는 무관하게 그냥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인포그래픽을 검색해봤다.)
메인 그래픽과 서브 그래픽, 그에 대한 자잘한 설명들이 보인다. 저학년 때 배우는 화면 구성의 기초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전형적인 화면 구성의 원리는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 핵심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를 서포트할 수 있는 서브 이미지들을 배열하는 건데 인포그래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눈에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게 한 다음 자세히 보게 만드는 것. 책 표지, 신문 같은 종이 매체부터 모바일 화면에 까지 적용되는 기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좀 더 건조하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정보를 잘 배분했다는 느낌이 든다. 우측의 경우는 웹사이트인데,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온라인에서 정보를 인터렉티브 하게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시로 선생님이 반응형 웹에 정보를 표현한 걸 보여주셨는데, 소재가 데이터가 되었을 뿐 현대 디지털 매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탐구해야 할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번 워크샵에 R의 지도 라이브러리에 관심을 가지는 분, 도시 관련된 데이터로 공부하시는 분 등이 있었다. 주위에 디자이너 밖에 없는 내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도 이런 활동의 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나는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는데 이 지역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를 거쳤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어떤 산업이 제일 잘되는지, 세금이 얼마나 걷히는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등 정말 다양한 주제가 있었다. 결국 모든 데이터는 인류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주제를 정할진 모르겠지만 데이터를 올바르게 보는 방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도출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배움의 과정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연습도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