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데이터, 경계를 허물다

HIGHLIGHTS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by Jiyoon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이라이트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에 다녀왔다. 나는 재작년에 유럽 여행을 가면서 까르띠에 재단을 알게 되었다.

까르띠에 아뜰리에는 1994년,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지었는데, 공간 구획이 뚜렷하지 않아서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인 줄 알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유리벽과 건물, 건물과 정원의 구분이 모호하다.


당시엔 현대미술의 거장 브루스 나우먼의 설치작업들이 전시되고 있었고 꽤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까르띠에 재단은 디자인, 사진, 회화, 비디오 아트, 패션, 퍼포먼스 등에 이르는 모든 현대 예술을 아우르며 현재를 반영하는 최전선에 서있다. 이번 소장품전에서는 수학, 데이터 분석, 애니메이션, 설치 미술 등을 포함해 경계 없는 컬렉션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쉽게 대중적으로 풀어냈다는 느낌도 받았다. 돌이켜보니 장 누벨의 건축은 까르띠에가 추구하는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 2개를 소개하려하는데, 우리가 기존에 알던 예술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it, DILLER SCOFIDIO + RENFRO (2008-15)>

"인간의 이주와 목적"을 주제로 한 360도 프로젝션 영상 작업 <EXIT>은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그룹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와 예술가, 건축가, 통계학자, 과학자, 지리학자가 협력하여 만들었다. 이 작업을 통해 통계와 건축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소개할 때도 architect-artist, statistician-artist라고 표현하더라. 이 작업의 원천은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도시학자인 폴 비릴리오이다.

“It’s almost as though the sky, and the clouds in it and the pollution of it, were making their entry into history. Not the history of the seasons, summer, autumn, winter, but of population flows, of zones now uninhabitable for reasons that aren’t just to do with desertification, but with disappearance, with submersion of land. This is the future.” (Paul Virilio, 2009)


인구 이동의 흐름에서 촉발된 이 작업은 100여 개가 넘는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여러 이야기를 시각화했다.

인구의 변화 : 도시들

자본의 흐름 : 자국으로의 송금

정치 : 난민과 강제 이주

해수면 상승과 도시의 침몰

삼림 파괴로 인한 자연 재해

끊임없이 맵핑되는 지구에 서로 다른 이주 양상을 지도, 문자, 경로, 컬러 등으로 다채롭게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5년 파리유엔 기후변화 회의를 반영했다고 하는데, 정적인 작품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화/발전하는 작품이라 흥미로웠다. 이 방대한 정보를 어떻게 정리했을지... 상상하기가 힘들다.

출처 : http://blog.meld.cc/

360도로 넓게 둘러진 공간에 영사된 화면을 보면 그 위압감이 상당하다. 아래 이미지는 정치 난민과 강제 이주 파트 중 일부인데, 작은 점들이 바람 혹은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국가 대 국가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정치 난민과 강제 이주 파트 중 일부 / 출처 : http://www.domusweb.it/
해수면 상승 파트 중 일부 / 출처 : http://www.domusweb.it/

통계, 건축, 수학, 프로그래밍, 디자이너, 예술가, 영상전문가 등이 모여 만든 EXIT은, 협업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또한 동적인 예술작품, 예술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링크에서 전체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The Great Animal Orchestra, Bernie Krause & UVA(2016)>


미국의 음향학자이자 시인, 예술가이기도 한 버니 크라우스는 전 세계의 동물 15,000여 종의 5,000시간이 넘는 소리를 45년에 걸쳐 수집해왔다. 그는 소음이라 여길 수 있는 동물들의 소리에 집중하며 영상, 회화, 설치작업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런던의 예술가 그룹 United Visual Artist(UVA)와 함께 제작한 84분짜리 영상이 소개된다. 각종 동물들의 소리가 주파수별로 나뉘어 가시화되는 게 매우 신기하다. 높이 지저귀는 새들, 꾸준히 바닥에 깔리는 벌레 소리, 역동적인 형태의 코끼리 소리 등은 우리의 공감각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소리가 수집된 장소와 동물에 대한 인포그래픽
전시 전경 / 출처 : https://uva.co.uk

작품은 3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은 주파수를 넓게 벌려놓아 소리의 속도를 느낄 수 있다. 우측으로는 시간에 따라 쌓이는 소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하단에 물이 있어 수면에 비치는 소리의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다. 청각과 시각이 극대화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소리의 속도감이 느껴지는 좌측면 / 출처 : https://uva.co.uk
수면에 비치는 영상 / 출처 : https://uva.co.uk


동물 소리에 주목한 버니 크라우스, 이를 창의적으로 시각화한 UVA. 내가 이 작업에서 느낀 새로움은 우리의 일상에 산재하는 소재들을 깊게 들여다 보고, 끈질기게 수집/구현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UVA는 Soundscape , Spectrogram을 이 작업의 요소들이라 이야기하는데 모두 두 단어의 합성어들이다. 우리가 느끼는 경계의 모호함, 참신함은 익숙한 요소들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담

위 작업들과 별개로 중국 작가인 차이 구어치앙이 매우 흥미로웠다. 화약 터뜨려 회화작업을 하는 작가인데 계획적으로 그려진 도면과 우연한 폭발 작용이 결합되어 신비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확실히 중국은 대형 작업에 강한 것 같다.


전시의 아이덴티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studio fnt에서 디자인했고, Non standard studio에서 전시 디자인을 맡았다고 한다.

출처 : studio fnt 페이스북 페이지

전시장 내의 모든 텍스트들은 정말 사려깊다고 느껴질 정도로 잘 조판되어 있었고 너무나 깔끔했다. 글자가 너무 예뻐서 집중이 안될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만족스러웠던 전시다. 8월 15일까지 무료로 전시되고 있으니 꼭 한 번 방문해보길 바란다. 추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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