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yoon Apr 09. 2021

21세기 상형문자, 이모지

디지털 세계의 유일한 만국공통어를 파헤치다

이모지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만국공통어가 되었다. 구글에 따르면 전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의 90%가 이모지를 사용한다. 하트, 웃는 얼굴부터 동물, 음식, 건물 뿐만 아니라 마법사, 좀비, 인어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개념이 이모지로 존재한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등록된 이모지는 약 3,521개에 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이모지가 제작되고 있다.




이모지의 시작

이모지의 근원은 이모티콘이라 할 수 있다. 이모티콘은 활자 조합으로 형태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지 자체가 문자로 취급되는 이모지와는 다른 개념이다. 처음 세상이 디지털화될 무렵인 1970년대, 이메일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화면의 글자로 어조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1980년대엔 컴퓨터 사용자들이 기존 문자에서 얼굴을 만들기 위해 이모티콘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1982년 카네기 멜론 대학교의 전산학자인 스콧 펠만이 최초로 이모티콘을 제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 그가 문장 끝에 붙인 것이 웃는 얼굴 :-) 이었다.

이모티콘의 아버지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텍스트로 표현하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네! 네~ 네^0^ 네:-) 같은 말이어도 붙이는 이모티콘에 따라 모두 다른 대답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정말 자주 쓰는 ㅠㅠ 는 디지털 텍스트에서 표정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다. 일본에서 발전한 카오모지는 더 복잡하고 과격한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동굴 벽화나 쐐기 문자, 중국 문자 등 실제 사물을 본뜬 그림 문자, 상형 문자는 인류 최초의 문자였다. 새로운 개념을 매번 그림으로 표현해야하다보니 경제적이지 않았고,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어렵다보니 점차 표음문자로 변화해갔다. 하지만 인간은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문자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모지는 그림을 뜻하는 絵와 문자文字의 합성어인데, 이름 뜻 그대로 상형문자다. 최초의 문자와 현대의 문자가 만나는 이 순간이 참으로 모순적이다.

고대 이집트의 그림 문자


이모지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텍스트인데, 텍스트로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인간은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모지라는 형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2015년 옥스포드 영어사전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글자가 아니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의미하는 이모지였고,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에 따르면 2014년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글자가 아니라 하트 이모지였다. 이제 텍스트 기반 문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이모지인 것이다.


2015 올해의 단어 :Face with Tears of Joy:



현대적인 이모지에 가장 가까운 형태는 1999년 쿠리타 시게타가가 일본 통신사 NTT 도코모를 위해 개발한 것이 그 시초이다. 표정, 사물 등을 12✕12픽셀 크기로 180여 개를 디자인했다. 쿠리타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모지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 디자인의 원본은 뉴욕 현대 미술관 MoMA의 현대 미술 컬렉션에 소장될 만큼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관련 아티클

Shigetaka Kurita, NTT DOCOMO. Emoji (original set of 176). 1998–99. 출처: MoMA


이모지 문화가 널리 퍼진 주요한 요인은 2010년 유니코드에서 이모지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2011년 애플이 iOS5부터 이모지 키보드를 지원한 것이다. 원래 일본에서 제작되었지만 다른 나라 사용자들이 우회하여 키보드를 자주 사용해왔기 때문에 애플도 공식적으로 이를 추가했고, 덕분에 이모지는 글로벌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문화를 반영하는 이모지

2016년만 해도 여자 경찰, 남자 신부, 머리 다듬는 남자, 여자 탐정, 여자 노동자가 없었다. 이모지 또한 성편향적으로 제작되어 온 것. 구글은 성평등을 위해 유니코드 이모지 위원회에 새로운 이모지 세트를 제안했고 여성, 남성 둘 다 존재하는 직업 이모지를 발표했다. 이후 2019년엔 애플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Gender Neutral 이모지를 제안했고, 우리는 현재 같은 이모지여도 3가지 버전의 이모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2012년엔 이성애 커플 외에 동성 커플 이모지가 등장했고, 2015년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표현하기 위해 5가지 피부색이 추가되었다. 이번 달, 트위터는 장애인을 위한 이모지 제작을 위해 사용자들의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성과 장애, 인종을 평등하게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이모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문화를 반영하는 문자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인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바이러스, 주사기 이모지가 급격하게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많이 사용되는 이모지와 새로 추가되는 이모지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만으로 지금 무엇이 화두인지 알 수 있다.

곧 추가될 이모지들




언어로써의 이모지

사실 이모지가 문자라면 본래 그 뜻으로 통용되야 한다. ㄱ, ㄴ, ㄷ, ㄹ 한 글자 한 글자가 다른 발음으로 읽히지 않는 것처럼 표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모지가 만국공통어고 동일한 유니코드를 공유하다보니, 최근 대부분의 이모지가 애플 이모지 기준으로 통일되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2017년만 해도 각 플랫폼에서 표정 이모지가 모두 노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애플에서 피부색을 추가하며 만국공통으로 노란색이 기본으로 바뀌었고, 고양이도 모두 노란 고양이로 통일되었다. 어찌됐든 이모지라는 언어를 주도하는 곳은 현재 애플인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삼성의 검은 고양이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하는 이모지

애플이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구글, 애플, 페이스북, 삼성 등 주요 플랫폼마다 이모지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애플은 사실적으로 이모지를 그리는데 그 이유는 애플 초기에 지향했던 스큐어모피즘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Twemoji는 트위터가 제공하는 오픈소스 중 하나로 2014년에 시작됐다. 당시 입체감이 느껴지는 이모지 스타일과 달리 트위모지는 그라데이션이나 입체감을 배제하고 완전히 평면적인 디자인을 도입하여 좀 더 가볍고 귀여운 인상을 준다. 반면 삼성 Emoji Suite는 2015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고, 풍부한 표현에 신경썼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웃는 얼굴은 눈이 더 크고, 불안해 보이는 얼굴에는 땀이 더 크게 표현되는 식이다.

플랫하게 표현된 트위모지


이모지도 언어이다보니 사용자들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무궁무진하게 이모지를 활용하는데, 이모지끼리 조합하여 소설을 만든다거나, 이모지들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이모지를 합성하여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너무나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동물


구글은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GBoard에서 이모지를 자신만의 조합으로 합칠 수 있는 Emoji Kitchen을 공개했고, 약 2,000여 가지 조합을 유저가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유니코드에 없는 나만의 이모지를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있는 이모지를 쓰고 싶기도 하다...



글로벌 플랫폼들이 이모지를 시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풍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페이스북의 리액션 버튼이다. 아무래도 전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버튼이지 않을까 싶다. 리액션 버튼은 페이스북 이모지와 같은 스타일로 디자인 되고 있고, 트위터 또한 새로운 리액션 버튼에 대응하여 이모지 디자인을 변경하고 있다.

전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버튼 중 하나인 페이스북 리액션




핀터레스트의 리액션



이모지는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도구다. 이모지를 3D화해서 키비주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노션과 같이 개별 문서들을 구분하는 구분자 혹은 디자인 요소로 활용할 수 있으며, 패턴화하거나 새로운 배치로 손쉽게 이미지를 생성해낼 수 있다.

왼쪽부터 앱스토어 / 노션 / 인스타그램




하나의 언어를 만든다는 것

이모지를 제작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구글, 애플과 같은 초국적 기업에 이모지만 디자인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다. 2차원 단색인 문자와 3차원 이모지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선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다. 입체적인 이모지라면 빛의 각도와 방향, 구도와 음영을 일관되게 유지해야한다. 이모지 전체 세트는 서체 한 벌과도 같기 때문에 전반적인 통일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3,200개가 넘는 그림을 한 톤으로 그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언어이기 때문에 디자인보다 중요한 것이 보편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 이모지를 보고 "새"라고 인지하려면 다른 기업들의 새는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새를 어떤 형태로 떠올리는지, 그것이 :bird:라는 이모지 명칭과 맞는 것인지 등 기호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어야한다. 이모지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참고자료

서로 다른 새 이모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 점철된 메시지, 이모지를 달지 않으면 왠지 삭막해보이는 문자, 의성어 의태어가 범람하거나 띄어쓰기와 어법이 맞지 않아도 소통되는 구조  오늘날의 텍스트 소통은 글쓰기보다는 일반적인 대화에 가깝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상황이 폭발적으로 많아진 지금 사회에서 이모지는 인간의 미묘한 억양과 감정을 담아내고, 표현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디지털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해도 우리가 휴머니즘과 위트를 가질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모지는 인간의 인지와 행동을 바꾼 강력한 매체이며,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사례라고도   있다. 그리고 가장 현대적인 디지털 문화를 반영하는 시각 어휘이기에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이모지가 등장할지, 어떤 개선이 이뤄질지 기대된다.




더 자세히 읽기

이모지피디아 블로그 https://blog.emojipedia.org/

유니코드 홈페이지 http://www.unicode.org

매거진의 이전글 애플 전용서체 이름은 왜 샌프란시스코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