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어 보이 / 폴 웨이츠, 크리스 웨이츠 감독
1. 우정의 시작 - 손 내밀기
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참으로 따뜻한 이야기로 우리 사회에는 부재중인 '우정'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30대 중반의 윌은 아버지의 유산으로만 놀고먹으며 삽니다. 한 번도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부유한 백수인 것이지요. 그런 윌이 여자들에게는 세상모르는 철딱서니로 보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윌은 자기만의 '이비사 섬'을 창조하죠. 그 섬에 들어앉아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주인 행세를 하고, 안락함을 누립니다.
그 섬에 마커스가 불쑥 찾아옵니다. 마커스는 열두 살 소년이지만 '삶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가진 소년이랍니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는 우울증을 갖고 있고, 학교에서는 왕따 신세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눈물을 짜거나 투덜거리는 소년이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변화시킬 생각을 하려 하고, 실현시켜 줄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그런 마커스에게 눈에 띈 대상이 바로 윌이었습니다. 윌을 불쑥 찾아간 것입니다.
우정의 대상에게 불쑥 찾아가기를 했을 때, 마커스의 순수한 욕망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기에 늘 시작이 중요한 것일 겁니다. 이 영화에서 마커스는 운이 좋았던 소년이 되었습니다. 윌이 거부하지 않았으니까요. 윌 또한 행운아입니다. 마커스가 찾아와 주었으니까요.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두 사람에게 함께 할 무언가가 시작된 것이지요.
"들어가도 되죠?"
"아니, 지금 난 바쁘거든."
"뭐 하느라고요?"
"TV 보느라고."
"원하면 같이 봐줄 수 있어요."
그들은 그저 TV를 같이 보는 시간들로 지금 함께 있기 시작하고 자신의 모습을 서로에게서 발견합니다. 자신이 만든 이비사 섬의 주인인 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섬으로 변화되는 시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우정이란 줄기차게 만나면서 쌓아지는 교감의 시간인 것입니다. 개개인의 욕망 덩어리가 뒤죽박죽 섞이게 되는 겁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말합니다.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이 주어진 감정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욕망은 자신의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이고, 충동은 인간의 본질이 자신의 유지에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2. 우정의 지속성 - 좀 더 깊어진 나의 욕망
어떤 것의 관심사도 공통되고 삶의 추구도 비슷한 듯 느껴지는 대상과 무탈하게 지나다가 문득 찾아오는 예기치 않은 감정, 갈등일 겁니다. 과연 그도 나처럼 이런 마음을 느끼기는 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토록 연락 한 번 주지 않는 것일까? 이제 내가 별로 필요하지도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가 보다. 이런 감정들이 그동안 시나브로 쌓인 우정에 흠집을 내게 됩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단절되어 소멸되는 관계가 되는 거지요.
하지만 이 감정들이 만들어낸 갈등은 사실 내가 만들어내는 자기와 갈등일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후에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좀 더 깊어진 나의 욕망이 대상을 몰아놓고 홀로 난도질하는 거지요. 나는 이런 자기 갈등을 몹시 싫어해서 갈등하기보단 놔 버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일종의 기억 봉인을 합니다.
그 순간 유효하게 서로에게 작동했던 느낌과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저장해 둡니다. 그 대상이 다시 나와 우정을 나누는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 버리는 거지요. 물론 내공이 필요한 일입니다. 나의 내밀하게 출렁이는 욕망을 들여다보며 멈추고 자기에 몰입도를 높이는 시간을 만들어갑니다.
3. 우정의 갈등 - 공들이기와 인정하기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는 마커스가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노래를 부르려고 학교에서 열리는 록 콘서트에 나갑니다. 엄마는 "네가 노래할 때 햇빛과 행복이 내 맘 속으로 들어온단다."라고 말하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탬버린을 선물했죠. 마커스는 엄마를 위해 탬버린을 들고 록 콘서트에 유행이 지난 노래를,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될 노래를 하겠다고 출연 신청을 한 것입니다.
록 콘서트에서 돈을 받고 반주를 하기로 약속한 아이마저 무대에 오르기 바로 전에 거절합니다. 마커스는 엄마를 향한 사랑의 행동으로 반주 없이 무대로 나가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런 상황의 마커스를 위해 윌은 기타를 치며 무대 위로 나가 함께 연주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윌은 우정의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열두 살의 마커스와 서른여덟 살의 윌이 지금 함께 한 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를 예감하게 해 줍니다. 마커스도 윌도 이제 더는 혼자만의 섬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죠.
사랑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인간에게 남아있을 보루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빛의 사랑의 힘으로 세상은 무지개 빛으로 물들여질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의 야만을 누르고 겸애로 공동의 선을 향한 아름다운 세상이 가능합니다. 그 시작이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이어지는 우정일 수 있음을 기억해냅니다. 차가운 가을 기운이 몸과 마음을 우울하게 합니다만 '우리'라면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여서 세상은 향기로운 방을 만들 수 있는 거겠지요. 노란 국화꽃으로 넘치는 거리를 같이 걸어가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