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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Nov 14. 2023

취향 [취향, tsʰwihyaŋ]

동물의 기본 욕구 중 하나는 식욕이다. 아니, 어쩌면 아주 단순한 생물도 생명 활동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식욕은 모든 생물의 욕구라고도 볼 수 있겠다.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초기 인류도 수렵채집 사회를 이루어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 그러다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농업이 인류를 한 지역에 정착하게 만들었다. 현대에도 농업 기술이 닿지 못했거나, 환경상 농업을 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렵채집 생활을 이어간다. 


인간뿐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이 이동성을 보인다. 지구에는 계절이 있다. 그래서 기온에 적응하기 위해, 혹은 그렇게 이동한 먹이를 찾기 위해 많은 동물이 서식지를 옮긴다. 귀신고래는 여름에 먹이가 풍부한 북극해에서 활동하고, 겨울이 되면 따뜻한 캘리포니아만으로 이동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10,000km가 넘는 거리다. 소설 《모비 딕》의 주인공 향고래는 현존하는 이빨 고래 중에서 가장 거대한데, 크기에 걸맞게 지구의 바다 전역에서 발견된다. 벨루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흰돌고래는 그린란드, 알래스카의 바다를 포함하여 북극해 수천 킬로미터를 활보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당시, 인간은 갇혀있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전염병이 사그라들 때쯤 욕구를 해소하고자 동물원,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고래들도 수족관 유리 밖에 선 사람들을 보며 나들이를 꿈꾸고 있다.  


들창코원숭이는 한대기후의 고산지대에서 이파리나 열매를 따 먹는다. 척박한 환경에 놓인 들창코원숭이 무리는 먹이를 찾기 위해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 먹이가 풍부한 곳에 눌러앉아 살면 안 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들창코원숭이에게 그런 질문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니, 혹시나 들창코원숭이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도록 하자. 여하튼, 인간이 음식을 가리는 것처럼 동물들도 선호하는 먹이가 있다. 먹이를 소화할 수 있는지, 먹이가 품은 독성에 면역이 있는지, 다른 종이 먹이를 탐내지 않는지, 서식지에 먹이가 풍부한지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먹이를 결정한다. 동물의 식성은 다양한 먹이 환경이 생존에 영향을 미친, 자연선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취향은 영어로 ‘Taste(테이스트)’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테이스트는 ‘맛보다’, ‘즐기다’, ‘느끼다’ 등의 의미를 가진 고대 프랑스어 ‘Taster’에서 유래됐다. 생존을 위해 동물은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이 맛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 음식이나 입에 넣었다면,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인류의 가장 큰 천적이었을지 모른다. 고대 인류도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아주 잘 알았던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취향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취향이란 단어는 비단 먹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 취향은 뜻 취(趣)에 향할 향(向)으로, 뜻이 있는 방향을 말한다. 요즘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에 관해 생각할 여유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 수준은 높아져서 타고 갈 배는 있는데, 어디로 항해할지 섬이 보이지 않는다. 삶의 주체인 나에 대해서도,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살아가는 것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취향을 알기 위해선 세상을 탐구해야 한다. 그 방법에는 여행같이 직접적인 경험과 독서같이 간접적인 경험이 있다. 이 또한 취향껏 선택하면 된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모두 해보는 방법도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가 있을까? 많은 동물, 특히 새끼 포유류와 조류는 부모를 모방하면서 배운다. 예컨대 휘파람새는 이름처럼 노래를 부르는 새다. 이들에게 노래는 유전자 단위에 새겨진 본능적인 행동으로, 눈을 제대로 뜨기도 전에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 소리친다. 그런데 성체가 되고 나면 내륙에 사는 휘파람새와 제주도에 사는 휘파람새의 노랫소리가 다르다. 이 같은 차이는 유전자 단위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개체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즉, 새의 지저귐에도 방언이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만큼은 경험과 모방을 마다하지 않는, 경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취향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취향이다. 예수나 부처 같은 성인들도 모든 이를 품지 못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유인자(惟仁者), 능호인(能好人), 능오인(能惡人)”이라 말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공자는 옳고 그름에 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악한 사람을 품으려 하기보다는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다. 다만 취향, 호불호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개인의 철학적 세계관이 넓어지는 과정일 수 있다.  


취향과 함께 보면 좋은 단어 중 하나는 취미다. 취미는 취향과 같은 뜻 취에 맛 미(味)가 더해진 단어다. 자신의 취향을 본격적으로 맛보며 즐기는 행위를 말한다. 취향이 생각이라면, 취미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사람은 취향에 따라 취미를 고르기도 하고, 취미를 가지다 취향이 생기기도 한다. 취미는 중요하다. 목적지가 어디든 노를 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학교, 직장 등 반복된 사회 활동은 종종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 취미는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능동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들에게 취미는 삶의 주체가 ‘나’란 사실을 인지시킨다.  


취미가 모이면 문화가 되기도 한다. 음악, 문학, 영화, 스포츠 등 각 문화에는 인간의 취향이 반영된 수많은 장르가 있다. 장르는 불어 ‘Genre(쟝르)’에서 온 단어인데, 쟝르는 라틴어 ‘Genus(게누스)’에서 유래됐다. 생물은 분류법상 크게 ‘계-문-강-과-속-종’으로 구분된다. 이 중 속 단위는 별개의 종으로 볼 수 있는 단위다. 그래서 어떤 종을 칭할 때는 ‘속-종’ 순서로 쓴다. 예컨대 인간은 호모속에 속하는 사피엔스란 종, 즉 호모 사피엔스다. 아무리 가까운 침팬지라도 호모속이 아니라 침팬지속이다. 여기서 말하는 ‘속’ 단위가 장르의 어원인 게누스다. 인간, 하마, 전갈, 하늘소, 도요새, 민들레, 참나무…. 지구의 생물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장르는 생물 종만큼이나 아주 독창적인 영역이다. 


인생의 장르를 찾는 것은 그만큼 독창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이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명언과 일맥상통한다. 취향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뜻을 품은 방향을 말한다. 다른 사람과 같은 취향을 가졌다고 으스댈 것도 없고, 남들과 달리 독특한 취향을 가졌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택시 드라이버》가 명작이라는 이유로, 다른 장르인 《트루먼 쇼》, 《쇼생크 탈출》, 《기생충》 같은 영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종 TV나 SNS에서는 화목한 가족, 원만한 대인관계, 부족함 없는 재산을 보여주며 그것이 평범한 삶이라고 호도한다. 하지만 가족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대인관계는 쉽지 않으며, 필요한 재산의 기준도 사람 나름이다. 매스컴이 평범의 기준을 올린 덕분에 평범한 삶이 어려운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진실로 평범한 삶이란, 타인의 취향에 맞추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인 채로 사는 데서 온다. 인생은 타인이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삶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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