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닦기 그릇 엄지 손톱>(타르) 2022/2024, 파운드 오브젝트 위에 실크스크린, 잡지책, 수공 액자, 가변 크기
머리카락은 만져져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몸이 움직일 때 덩달아 흔들릴 뿐 머리카락은 스스로 움직이기 또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달려있을 뿐인 머리카락을 꽤나 소중히 여긴다. 다른 각 부위들보다 비교적 변형이 자유로운 머리카락이 우리의 고유함을 표현해 주는 주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은 우리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활용되는 중요한 이미지 중 하나인 셈이다. 전시명 《갈래머리》는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성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갈래로 묶인 머리는 우아하기보다는 천진난만하고 활동적이다. 김성은 작가의 실크스크린 작업 또한 그러하다. 종이 위에 자유롭게 쓸린 갈색 흔적들에서 우리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전시명 《Kaput》은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caput'에서 파생된 단어로 '쓸모없어진' 혹은 '부러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의역하면 '끝장나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어쩌면 종이 위에 뭉개진 갈색 흔적들은 바닥에 흩뿌려진 진흙처럼 정말로 "끝장난' 상태일 수도 있다. 동시에. 반대로 갈색이 쓸려간 흔적들이 그 끝장난 상태를 청소하기 위한, 한숨이 담긴 노동의 손짓일 수도 있다. 어느 해석을 따르든 《Kaput》은 완결의 여운이 느껴지는 의미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때 완결에서 느껴지는 여운은 고귀하거나 숭고하지 않다. 그저 누군가가 엉망진창 저질러버린 완결이다.
<데이즈드 & 컨퓨즈드 &>(상자 칼 마술 모델) 2024, 벽지 위 실크 스크린, 잡지책 일부분, 수공 액자, 껌, 가변크기
갤러리 내부에는 <데이즈드 & 컨퓨즈드 &> 시리즈가 벽지처럼 사방에 펼쳐져있다. <데이즈드 & 컨퓨즈드 &>의 좌측상단에는 잡지에서 오려진 여성들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있다. 액자 속의 여성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뽐내며 늘여놓고 있다. 액자 속 여성들에게 첫 시선을 빼앗긴 후 주위를 둘러보면, 액자 속 여성들의 머릿결이 흘러내리듯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하지만 액자와 함께하고 있는 갈색 흔적들은 액자 속 여성들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갈색의 흔적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머리를 긁으며 이리저리 헤집어 놓은 것처럼, 분주하게 산발적으로 긁혀 있다. 그래서일까, 역동적으로 펼쳐져 있는 페인팅은 매력적인 그녀들의 이면에 있는 삶의 흔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액자 속에 전시된 아름다운 여성들의 우아함과 난잡한 페인팅들의 대비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녀들의 흔적 같으면서도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액자 속의 여성들에게서 우리는 매력적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녀들은 매력적인가? 액자 속의 여성들은 신체의 전부를 볼 수 없게 얼굴 부분만이 오려져 있다. 우리가 얼굴에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우리가 전체가 아닌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어떠한 것이든지 대상의 전체를 포착할 수 없다. 삶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항상 대상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체대상이 아닌 부분대상들을 마주하며 판단하거나 감상한다. 액자 속에 담긴 여성들의 모습은 그녀들이 원한 최선의 모습에 가깝다. 의상을 고르고, 표정을 연습하고, 자세를 가다듬고, 알맞은 각도에서 찍힌 한순간의 모습만을 남겨 우리와 마주한다. 최선의 모습을 촬영한 여성들은 이제 다른 일상으로 돌아간다. 편한 옷을 입고, 멍 때리는 표정으로, 너저분하게 누워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느낀 매력적임은 그녀들의 매력적임이 아니라 그 순간의 매력적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일상을 보내는 그녀들 또한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느꼈던 매력적임과 동일한 것임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이 점을 깨달을 때, 정갈하게 모여있던 그녀들의 가꾸어진 순간은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불규칙하게 흩어진다. 이렇게 흩어진 순간의 매력적임은 점차 고유성을 찾기 어려워진다. 그녀들 또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식사를 하고, ... 등등 누구나 하는 보편적인 행동의 범주에 그녀들의 일상이 포섭되기 때문이다. <데이즈드 & 컨퓨즈드 &>에 담긴 갈색의 흔적들은, 고유성이 점차 옅어지는 익명적인 흔적이다.
<담배꽁초>(The Jewish woman), 2022/2024, 뉴스프린트에 찍은 실크스크린과 모노프린트, 잡지와 책의 일부분, 수공 액자, 껌, 테이프, 가변크기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항상 부분대상들 만을 조우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조우하는 부분들은 무엇의 부분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조우하는 부분대상들도 어떤 때에는 전체라 여겨질 수 있고 우리가 전체가 여겼던 것이 어떠한 것의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주하는 부분대상들을 통해, 그것을 이루는 고유한 무언가가 명확하게 있음을 전제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부분대상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전제하는 이미지들을 당연하듯이 생성한다. 우리가 부분대상을 마주함으로써 생성된 이미지들은, 우리가 마주한 부분대상 이외의 영역들을 환상으로 채워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성되는 이미지들은 주위를 맴돌며 우리에게 분명한 영향을 주지만,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명확한 이해를 시도할수록, 그것이 굉장히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하는 대상들의 정체는 무엇이라 해야 하는 걸까? 정리하자면, 그것들은 그때 그곳에서만 조우할 수 있는 고유한 무언가 들이다. 이것들을 종합해서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사건만을 마주한다. 그리고 사건을 통하여 이미지들이 생성된다. <데이즈드 & 컨퓨즈드 &> 속 액자에 담긴 여성들 또한 표정, 자세, 의상 등이 모인 하나의 사건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인 사건을 통하여 매력적인 이미지를 느낀 것이다.
<담배꽁초> 시리즈에서는 사물이 찍힌 잡지 페이지와 페인팅을 나열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건을 시도한다. 생산된 이미지들은 매우 모호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언가의 흔적으로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무언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담배꽁초> 시리즈는 잡지와 페인팅이 나란히 놓임으로써 관람자들에게 운동적인 서사를 전해준다.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단순한 나열만으로 서사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내 옆을 지나가는 것 만으로 나의 서사가 바뀔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이 굉장히 무력한 개념이라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김성은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하여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들이 표현하는 추상적인 흔적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아니면 그것이 그냥 '끝장'난 무언가인지, 우리가 느끼기엔 너무나도 모호하다는 것을 작가는 관람자에게 전해준다.
<담배꽁초>(Corps de Dame, Piece de Boucherie), 2022./2024, 뉴스프린트에 찍은 실크스크린, 잡지와 책의 일부분, 수공 액자, 껌, 테이프...
김성은 작가님의 《Kaput》/《갈래머리》가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투박하게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의 터프함에서 도전적임과 자극적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들은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느끼며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이미지는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에요. 어떠한 이미지가 있을 것이라 간주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가꾸어줄 때도 있지만, 환상과도 같은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 또한 주변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성은 작가님의 작품을 통하여 이미지에 대한 고찰들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어려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김성은 작가님의 《Kaput》/《갈래머리》를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함께 나누어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