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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Mar 23. 2020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숨쉬기 운동

나는 세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첫째의 이름은 두루다. 두루가 우리 집에 온 건 14년 12월 즈음이었다. 그 당시 우리 집엔 사촌 동생의 강아지 몽실이가 살고 있었다. 몽실이는 스피츠다. 스피츠는 여우를 닮은 강아지다. 우리 몽실이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스피츠인 몽실이는 몹시 예민하고, 까칠한 강아지였다. 절대 곁을 내주지 않는 강아지. 우리 가족은 몽실이더러 고양이 같은 강아지라고 했다. 저만치 떨어져 얌전히 앉아 사람들의 행동을 천천히 관찰하는 고양이 같은 몽실이.


이제 막 어미젖을 뗀 두루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난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 상태였다. 편도 두 시간의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공황장애가 발병해 지하철이나 버스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인생 최대치의 예민함을 뿜던 시기였으니까. 나의 우울과 예민함의 저 밑에는 밤늦게 터미널에 도착하면 겁 많은 나를 데리러 와 주던 동생이 군대를 간 탓도 있었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이 흰 강아지가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성당 아주머니가 키우는 강아지가 낳은 네 마리의 강아지 중 가장 늦게 입양된 두루. 할머니는 두루를 그냥 데려오기 뭐해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감사의 표시로 전하고, 추운 겨울 손바닥만 한 강아지를 가슴에 꼭 품고 집으로 왔다.


저녁에 집에 도착한 나는 할머니 이불속에서 자고 있던 두루를 보고 식겁했다. 식구들은 내 반응을 예상치 못 한 듯했다. 나는 두루를 보자마자 다시 데려다주라고 했다. 키우고 싶지 않다고. 난 동물을 좋아하고 강아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지만 그때의 나는 내 몸 하나 못 돌보면서 또 다른 생명을 돌본다는 게 버겁게 느껴졌었던 거 같다. 할머니는 민망한 듯 내 방에 두루를 쓱 밀어 넣었다. 두루는 그 날 내 옆에 앉아 밤 새 낑낑 앓았다. 엄마를 찾는 것 같았다. 두루의 울음소리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나는 새벽녘에 일어나 가만히 어린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주 작은 흰 강아지. 내가 쳐다보자 두루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두루를 불렀다. 이리 와. 두루는 얼른 내 곁으로 왔다. 앙증맞은 발로 다다다 뛰어온 두루가 내 옆에 벌러덩 누웠다. 따뜻한 아기 강아지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더 이상 낑낑거리지 않고, 내 곁에서 푹 잠든 두루. 우리의 첫날밤이었다.


다음 날, 나는 출근할 때부터 퇴근 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두루 생각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강아지가 생겼다고 사진을 보여주고 여기저기 자랑했다. 귀엽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이름 후보를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했다. 퇴근 후 사촌 동생, 몽실이와 두루 이렇게 넷이 앉아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 나는 '아토'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아토는 선물이라는 순 우리말이다. 사촌 동생은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몽실이와 남매가 되었으니까 '두루뭉술'에서 따와 '두루'로 짓자고 했다. 흔하지도 않고, 부르기에도 좋고 귀여운 흰 강아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낙찰되었다.


두루는 올해 11월이 되면 일곱 살이 된다. 사람 나이로 50쯤 되려나? 나는 가끔 두루를 할아범이라고 부른다. 슈나우저와 닮은 두루는 할아버지처럼 수염이 나있다. 아침에 수염이 이리저리 뻗친 걸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몽실이 밑에서 교육을 받아서인지, 몽실이보다 훨씬 까칠하다. 얼굴은 세상 순둥이인데 하루 종일 으르렁 거리고 말도 참 많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두루를 보고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 한 태도를 가진 강아지'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산책을 나갈 때 하네스를 묶는 것도 전쟁이고, 간식을 줄 때도 내 손까지 물어버릴 정도로 달려든다. 그런데도 매일 내 곁을 졸졸 쫓아다니며 주위를 맴도는 두루.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독립 후 함께 사는 친구의 강아지까지 세 마리의 강아지를 케어하다 보니 힘들 때가 정말 많다. 두루 같은 경우는 영역표시를 심하게 해서 장판, 벽지를 매일 오줌으로 물들여놓는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아놓은 매트 근처에 쉬를 해서 매트 밑으로 오줌이 다 새어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은 백수라 내 팔자야, 하고 치우지만 회사원일 때는 쉬 치우는 일이 왜 이렇게 짜증이 나던지. 퇴근 후 돌아와서 30분 넘게 오줌을 닦고, 소독하다 보면 힘들고 짜증 나서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두루는 자기가 잘 못한 걸 아는지 제 방석에 앉아 귀를 잔뜩 내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럼 나는 '이 놈 자식들이'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한다. 강아지들 들으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걔들이 뭘 알겠는가. 그냥 속풀이로 하는 거다. 시원하게 잔소리를 하고 나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생명들한테 인생을 저당 잡혀 있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너희를 돌보는 거야, 내가 너희를 책임지는 거야, 내가 밥도 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비싼 간식도 사주고... 똑같은 레퍼토리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잘 못 없는 나머지 강아지들도 잔뜩 풀이 죽어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정말 내가 이 강아지들을 돌보는 걸까? 밥도 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간식을 준다고 해서 내가 이 생명들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우울증과 공황장애 때문에 새벽에 나와 약을 먹을 때마다 두루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가 부엌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내가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매트에 앉아 나를 기다려준다. 산책을 할 때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나와 그 사람을 번갈아 보며 잔뜩 경계한다. 슬픔이 물밀듯 찾아와 나조차 주체하지 못할 때 와앙 하고 혼자 울음을 터트리면 두루가 내 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낑낑거리며 내 손을 긁는다. 처음 나에게 왔을 때, 엄마를 찾을 때와 같은 소리로 말이다. 낑낑 울지 마, 하고 나를 위로한다. 나는 그런 두루가 신기하고 대견하고, 고마워서 금방 눈물을 그친다. 두루가 나를 돌보고 있다. 이 강아지들이, 이 생명이 나를 지켜주고, 나를 자라게 한다. 세 마리의 강아지들만이 나를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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