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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May 10. 2020

불러도 오지 않던 둘째가 왔다

간신히 망부석 신세는 면한 대화의 비결

불러도 오지 않아 내 속만 태우던 아이가 적극적으로 찾아오게 하는 비법이 있다. 어렵지 않다. 단 한 마디면 된다. 적확한 표현과 함께 말에 담긴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힐 수만 있다면 어떤 엄마, 아빠라도 쉽게 써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아이가 달라지는 효과를 한 번이라도 체험한다면, 잠깐 오징어가 되는 게 대술까.


이 정도 쓰고 나니 저잣거리의 약장사가 된 느낌이다. 과연 그런 비법이 있을까 의아해하는 분도 당연히 있을 터. 아쉽게도 내가 육아 전문가는 아니라 다양한 케이스에 대한 임상 경험은 없다. 그저 내 아이를 대상으로 체험한 것이니 선뜻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성공했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성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능성은 어떤 이에게나 열려 있다. 또한 육아 및 심리 전문가들이 권하는 것이니 신뢰도 면에서도 나름 검증됐다. 이 글을 읽고 나서도 실험해볼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부족한 내 글 솜씨 때문이리라. 어차피 본전 치기다. 한두 번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도 되니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둘째 람이(36개월)는 아직 손이 많이 간다. 첫째와는 달리 직접 챙겨줘야 할 것이 많은데 말이라도 잘 들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아 골치다. 등원을 준비하면서 옷을 입히려고 하면, 아빠의 바람과는 다르게 자꾸 도망간다. 이불속에 숨고, 옷장 속에 숨고, 책상 밑에 숨고, 그러면 아빠는 “빨리 와서 옷 입어, 옷 입어~, 옷 입어!”(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포인트), 말하면서 결국 성이 난다. 납치하다시피 옆구리에 끼고 와 옷을 다시 입히려고 하면 람이는 몸을 비튼다.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평화롭게 입혀보려고 해도 의도대로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간도 내 편이 아니라 속절없이 흘러만 가버려 어린이집 통학 차량이 올 시간에 다다른다. 조급해진 아빠는 바지 하나만 겨우 입은 둘째를 바라보다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결국 람이가 울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힘으로 제압해 버린다.


옷 입힐 때에만 그러겠는가. 밤이 늦어 자야겠다 싶을 때 집안은 온통 세 아이들의 너저분한 흔적들로 엉망진창이니 정리는 필수다. 그냥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미룰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부모다. 아이들 시중드느라 힘 빠지는데 집마저 초토화되어 있으면 정신 사나워서 도저히 짜증과 분노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귀찮더라도 정리해놓고 자야 다음 날이 편하다. 이럴 때 첫째 랑이(61개월)는 대견스럽다. 한 번 이야기하면 잘 듣고 같이 정리한다. 바구니에 장난감을 하나둘 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어질러진 거실 때문에 까칠했던 마음이 살살 녹는다. 그러다 람이를 보면 다시 마음이 용암 분출을 앞둔 활화산으로 변해 버린다. 어찌나 뺀 질대고 빈둥대는지 분노가 점차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조금 정리하는 척하다 다시 장난감을 갖고 노는 람이에게 한두 번은 그래도 부드럽게, “정리해야지, 같이 정리해 볼까?”라고 권하지만, 변함없는 이 베짱이에게 결국은 “정리해!”하며 소리를 꽥 지른다. 그러면 둘째도 그제야 분위기를 알아채고 막 울면서 정리에 소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러니 자려고 누울 때마다 울먹이던 둘째가 떠올라,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잠자리가 찜찜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중 하나가 망각인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자고 나면 찜찜함은 어느 정도 희석되지만 다음 날 밤에도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밥 먹을 때도, 양치질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우리 둘째, 참 고민스럽다. 일춘기로 명명한 이 저항의 시기는 언제 끝나는 거야, 끝나기는 하는 거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도 답은 알 수 없으니 시작부터 머리만 아픈 질문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경험과 지식만으로는 명쾌한 결론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뭔가 변화가 없으면 혼자 끙끙대다가 똑같이 화내고 자책하는 일상이 반복될 것은 눈에 선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육아 책을 더 읽어보는 게 낫겠다 싶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와쿠다 미카의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잔뜩 기대감으로 고무되어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OO 해!”라고 무조건 혼내지 말고 “OO 해주면 엄마가 참 기쁘겠는데, 도움이 되겠는데" 식으로 부탁하는 태도를 취해 보자. 아이는 엄마를 돕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엄마가 부탁하면 돕고 싶다는 생각이 행동하고 싶은 의욕을 발전한다.
(중략)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을 아이가 했을 때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 말을 밖으로 내뱉으면 아이는 당장 그 행동을 멈추겠지만 그때뿐이다. 그 행동을 멈추는 대신 무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멈추면서 바른 행동을 배울 수 있을까?
(중략)
“OO 하면 안 돼”라고 명령하기보다는 “OO 하자~”라고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버스 안에서 “앞의 의자를 발로 차면 안 돼”라고 혼내기보다는 “엉덩이를 의자 안쪽까지 깊숙이 당겨서 불이고 등을 똑바로 세워서 앉아봐”라고 상냥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앞자리를 발로 치는 것이 잘못된 행동임을 쉽게 이해하고 엄마가 알려준 방식을 바로 행동을 옮길 것이다.
- 와쿠다 미카,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


정리하자면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대개 아이보다는 부모의 육아 태도에 있다. 아이는 세계와 삶을 배워나가는 중이기에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이가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부모가 아무리 소리치고 분노하면서 아이를 혼내봤자 소용없을 수밖에 없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끔찍한 상황이 그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부모는 나름 엄포를 놓았으니 아이가 다음엔 무서워서라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할 뿐이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 서로 앙금만 희미하게 남은 채 불편한 순간을 넘기더라도 같은 상황이 발생되면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똑같은 모습이 반복될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했던 앙금은 점차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확연해져 부모와 아이의 사이를 마침내 갈라놓게 될 것이다. 도자기 끝의 미세한 작은 금 하나가 결국 전체를 쪼개는 서슬 푸른 선이 되어 아름다운 예술품을 망가뜨려 놓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파국은 늘 작은 틈에서 시작되는 법.


그러니 아빠로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세한 금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 둘째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바꿔야 하는데, 도와달라는 표현이 와 닿았다. 목 놓아 불러도 반응 없는 이름을 계속 되풀이하며 성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또한 둘째의 자발성을 끌어내기에는 단순하게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로는 부족할 것 같아 인용 부분을 탐구했는데, ‘OO 해 주면 엄마가 참 기쁘겠는데’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너의 도움이 나와 너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는지를 아이에게 제대로 말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정서적으로 한 편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아빠와 아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감정이 올라오면 어떤 형태로든 분출하고픈 게 인간의 본능인데, 육아 현장에서는 엄마, 아빠의 마이너스 감정을 아이들이 직접 받아내야 하니, 그런 감정에 주로 노출되는 아이들이 결국 생기를 잃은 화초처럼 시드는 것은 당연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부모라면 적어도 마이너스 감정을 건강하게 흘려보내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아이 메시지(I-message)’가 떠올랐다. 아이 메시지는 유 메시지(You-message)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유 메시지는 문제의 원인을 유(You), 즉 남에게 돌리기 때문에 보통 남의 행동을 비난하고 질책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늦게까지 게임하다 잠든 아이한테, “밤마다 게임만 하고 늦게 자니 그 모양 그 꼴이지, 그래 가지고 공부는 언제 할래?”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아, 나도 이런 얘기를 이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물론 내가 잘못한 것은 알겠지만 짜증이 나더라.) 반대로 아이 메시지는 상대방이 한 행동을 평가나 비난하지 않고 정확히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어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드는 자신의 느낌과 상대방이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자신의 마음과 연결 지어 표현한다. 아까의 예에서 아이한테 “OO아, 네가 밤에 게임하고 늦게 자니 엄마는 OO의 건강이 정말 걱정이 되는구나. 일찍 자면 다음 날이 좀 상쾌하지 않을까. 일찍 일어난 OO이랑 아침밥을 먹으면 엄마는 기분이 몹시 행복할 것 같은데.”처럼 표현한다면 아이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는 유 메시지는 심플하다. 맥락을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비난하며 남 탓만 하면 되니 문장의 길이도 짧고 내가 진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나 상대방의 마음까지 복잡하게 헤아리지 않아도 된다. 아이 메시지는 아무래도 고려할 것이 많아 처음 시도하는 사람에겐 연습이 필요하다. 주위 사람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자신을 의아스럽게 여기는 반응 또한 덤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갑자기 왜 착한 척?) 사춘기 아이들이 아이 메시지를 연습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하던 대로 해. 무서워.(내지는 미쳤어?)” 아이 메시지를 권하는 사람으로서 낯설게 여기는 주위 반응 때문에 ‘그럼 그렇지, 무슨 아이 메시지야. 그냥 하던 대로 하자.’며 숭고한 뜻을 꺾지 않기를 바란다. 잊지 마시라. 모든 위대한 일 또한 늘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하나 더 강조하자면, 메시지 내용 이상으로 표정이나 동작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 의사전달 구성요소를 연구했던 매러비안의 법칙만 봐도 말의 내용인 언어적 표현(7%)에 비해 목소리, 표정, 태도를 포괄하는 비언어적인 표현(93%)이 의사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 않겠는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전달해야 아이 메시지가 먹히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라고 하면 오히려 그 말을 들은 아이가 부모를 걱정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완성했다. 드디어 이 비법의 문장을, 어느 날 아침 여전히 옷 입기를 거부하고 요리조리 날 피해 다니던 둘째에게 반신반의하며 던졌다. 예전 같으면 둘째에게 "야, 너 이리 안 와! 너 이리 안 오면 이따 과자도, 아이스크림도 없을 줄 알아!"라고 소리치며 협박했겠지만, 마음을 잘 가라앉히고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람아, 아빠가 지금 람이 옷을 입히고 있는데 남이가 아빠한테 오지 않으니까 아빠가 좀 힘드네. 람이가 제대로 옷을 입으면 아빠가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아빠가 람이 옷 입히는 것 좀 도와줄래?"


아이 메시지와 도와줄래의 결합이었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둘째가 하이 톤으로 “응!” 하더니 내 앞으로 선뜻 달려오는 게 아닌가. 그때의 감격이란, 고등학생 때 안 풀리던 수학 문제를 하루 종일 혼자 끙끙대며 고심하다가 마침내 풀어낸 후련함 그 이상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람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나는 아이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 ‘도와줄래’를 활용해 말을 붙인다. “옷 입히는 것 좀 도와줄래?”, “양치질시키는 것 좀 도와줄래?”, “밥 먹이는 것 좀 도와줄래?” 등 무수한 상황에서 이 말을 응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 윽박지를 때에는 서로 기분이 상하고 상황이 종료된 후에는 찜찜하기만 했다면, 이 말을 사용한 후부터는 람이와 얼굴 붉힐 일이 거의 없어졌다. 유레카!




비법을 정리해 보자. 핵심은 아이 메시지를 사용하면서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OO아, 이것을 이렇게 해주면 아빠가 참 행복할 것 같아. OO아, 아빠 좀 도와줄래?” 어떤가, 이 정도라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엄마, 아빠끼리 말을 만들어 함께 연습해 봐도 좋겠다. 평상시 부부가 대화할 때 아이 메시지를 사용한다면 입에 익기도 할 테고, 어쩌면 부부 사이도 더 부드러워질지도 모르니, 이야말로 일석이조, 금상첨화다.


당연히 시작부터 완벽하게 아이 메시지를 사용할 수 있는 부모는 없다. 그리고 정말이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완벽함과는 상관없이 부모로서 처음 살아가는 우리를 충분히 사랑해 주고 있으니까. 그것만 잊지 않는다면야 엄마, 아빠로서 불행해질 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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