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리하게 생각하고 멍청하게 행동한다
“우리는 영리하게 생각하고 멍청하게 행동한다.”
디르크슈테펜스와 프리츠하베쿠스가 쓴 <인간의 종말>을 읽는 중에 진화생물학자 마티아스 글라우프레히트가 한 말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나 곱씹어보고 있는데 맞는 말 같다.
생각은 참 좋은데 결과물은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는 사냥에 늘 성공했던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사냥에 성공한 날은 포식을 했고 사냥에 실패한 날은 굶었다.
그러다가 농사를 짓게 되면서 먹거리가 늘어났다.
굶는 일이 줄어들 것 같았다.
그런데 농사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니까 자녀를 많이 낳았다.
자녀를 많이 낳으니까 먹거리가 또 부족하게 되었다.
더 넓은 땅을 농지로 개간하고 더 좋은 농사 기술을 도입했다.
그 넓은 농지에 농사짓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더 많은 먹거리가 필요했다.
끝이 없는 순환이었다.
21세기의 사회라고 해서 먹거리의 문제가 해결된 거은 아니다.
물론 오늘날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식량자원은 전 세계인을 먹이고도 남는다.
그러나 남아도는 식량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지는 않는다.
혹시나 모를 미래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의식 속에 먹거리가 부족했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없는 사람은 없어서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그 있는 것이 없어질 것 같아서 걱정한다.
뿐만 아니다.
못 먹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있을 때 잘 먹자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폭식과 비만의 사회가 되고 말았다.
생각은 좋았다.
먹거리가 없으니까 먹거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자신도 가족들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한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끊임없는 노동과 걱정의 연속이 되었다.
인류가 먹거리의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될 날은 요원해 보인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삶은 급속도로 변화되었.
생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온갖 기계와 물건들이 발명되었다.
한 사람이 수백 가지 물건을 발명하고 특허를 따기도 하였다.
자동차가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먼 곳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고 좋아했다.
자동차가 발달된 지금은 먼 곳까지 빨리 가서 일을 해야 한다.
전화기가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지구 건너편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이곳에서 들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전화기가 발달된 지금은 지구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탁기가 발명되었을 때 여성들은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자기계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좋아했다.
세탁기가 일상화된 지금 여성들은 세탁기를 돌린 후에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컴퓨터를 발명하였을 때 사람들은 일처리의 속도가 빨라졌다며 좋아했다.
컴퓨터가 발달된 지금은 하루 종일 컴퓨터에 눌려 산다.
과거와 현재 중에서 어느 시대가 더 좋은 세상인지 모르겠다.
옛사람들의 고민들이 지금은 해소되었을까?
그 긴 시간 동안 인류는 더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 왔다.
땅을 파 보면 지난 시대 동안 인류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있다.
예전에는 지구 스스로의 지각변동에 의해서 흙의 색깔이 달라졌는데 인류가 나타난 후에는 흙의 색깔을 인류가 만들었다.
'인류세'라고 불리는 그 흙에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간들의 생각들이 집약되어 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세라고 하는 그 흙 때문에 지구 환경이 무너져버렸다.
분명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생각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냈는데 그것들이 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만들수록 더 많이 더 빨리 망가진다.
마티아스 글라우프레히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이다.
“우리는 영리하게 생각하고 멍청하게 행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