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컴퓨터 앞에 앉는다.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하얀 여백은 무엇이든 받아줄 거라는 걸 이젠 안다. 오늘은 너에게 어떤 이야길 해볼까. 한 자 한 자 타자를 친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순조롭지 않다. 차가운 책상에 앉아 따뜻한 침대를 바라본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이 일은 왜 아등바등하고 있을까. 그럴싸한 글도 못 쓰는 주제에. 작아지는 마음이 앞선다. 이럴 때일수록 큰 소리로 외쳐야지. 내가 뭐 어때서. 내 글이 뭐가 어때서.
글을 쓰면 쓸수록 슬퍼질 때가 있다. 뚝딱 하면 그럴싸한 게 나와야 하는데 뚜우우우욱따아아아악해도 별 것도 아닌 게 나오니까. 그래도 쓰지 않으면 더 슬퍼지니까 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도움이 된다. 왜요? 제가 쓴 글이 왜요? 이건 제가 쓴 게 아니랍니다. 제 손과 머리가 쓴 걸요. 그러니 전 아무렇지 않답니다. 하찮은 나를 견디기 위해 뻔뻔해지기로 했다. 어지간히 뻔뻔해지지 않으면 계속 쓸 수가 없다.
쓰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해서 쓰다가, 쓰기라도 해야지라며 쓰다가,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쓰다가, 쓰고 싶어서 쓰다가, 가끔은 재밌어서 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글들을 뒤적뒤적 읽어보는데.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재밌냐. 어쩜 내 마음을 이렇게 찰떡같이 써놨을까.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아. 역시 이 맛에 쓴다.
오늘 나는 나의 첫 번째 팬이 되기로 했다. 팬클럽 가입서는 어디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