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불편한 점이 늘어가지만 좋은 점도 꽤 있다. 그중 가장 좋은 점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이다.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가, 파스텔 톤이나 원색보다는 명도와 채도가 낮은 색이, 귀여운 스타일보다 심플하고 모던한 스타일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 다 지나간 숱한 시행착오 덕에 알게 된 것들이리라. 지난 실패들은, 아니 지난 도전들은 지금의 나에게 조금 더 확실하고 효율적인 길을 알려준다. 모험하는 재미는 줄어들었지만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순간을 줄여주니 편하다.
맛있는 음식이야 늘 먹고 싶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참아야 할 때가 많다. 건강과 식도락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도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커피는 오전에만 마신다. 오후에 커피를 꼭 마시고 싶다면 디카페인으로. 위가 좋지 않으니 웬만하면 차가운 커피보다는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사실 커피를 아예 안 마시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러면 너무 재미없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아껴가며 누린다. 이 적당한 선을 조정하고 받아들이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때론 모든 고삐를 놓아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는 융통성도 지난 시간이 내게 준 선물이다. 가끔 흥청망청 살아도 아무- 문제도 안 생긴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잡곡밥이 건강에 좋다지만 소화력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쌀밥이 낫고, 편도가 약하니 여름철에도 에어컨 바람은 조심하는 게 좋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고 삼삼한 간을 좋아한다. 항공성 중이염이 있어 비행기를 탈 때 웬만하면 큰 비행기를 선택하고 휴양지보다는 보고 듣고 놀 수 있는 관광지를 선호한다. 고수도 잘 먹고 가리는 향신료가 없어 세계 어디를 가도 먹는 문제로 고생한 적은 없다. 베이글은 퍽퍽한 식감보다 쫀득한 식감을 좋아하고 스콘은 부드럽고 묵직한 것보다 바삭한 것을 좋아한다.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베이글과 스콘을 파는 베이커리도 몇 군데 알고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나가 노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책을 보는 게 낫고 아침보다는 저녁에 컨디션이 좋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싫어하세요?”
이 간단한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잘 모르겠다면 이제부터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잘 아는 것과 별스럽게 까탈을 부리는 것은 다르다. 나의 호불호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바라는 것은 까탈이다. 나의 취향과 기호는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것이다. 누구도 알려줄 수 없고, 누구에게 바랄 필요도 없다.
다정한 눈길로 오랜 시간 살펴보아야 아는 것들.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아야, 찬찬히 보아야 정이 들고, 흠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을 나를 더 행복한 곳에 데려갈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는 만큼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