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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지윤 Oct 21. 2024

T와 F보다 중요한 것

30대 엄마의 성장기


“너 T야?” 아마 F인 사람은 한 번쯤 해본 말일 테고, T면 들어봤을 거다. 우리는 MBTI로 상대의 성향을 쉽고 간단하게 판단해버리기도 하고 그 속에 숨기도 한다.


사실 우리 남편은 T 98%인 연구원이다. 논리적이고 명확하고, 감정보다는 상황에 대한 사고를 정리하는 게 편한 사람이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F인 내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대일 때가 많다.


저번에 내가 괜히 울적해져서 “난 왜 노력하는데 대가를 못 받는 것만 같을까?”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지윤, 정말 진심으로 노력했으면 결과가 잘 나오길 바라고, 바로 돌아오길 기대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더라. 나도 그랬어. 그래서 대학원 때 많이 힘들었고. 그렇지만 노력 그 자체를 대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서 작은 성취 하나하나를 스스로에게 보상해 주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되더라고.”


남편은 무조건 같이 울어주거나 감정적으로 공감해주진 않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묵묵히 풀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맙기도 했고, 많은 부분 정리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T와 F이기 전에 두 개인이고, 성향을 단정 짓기 전에 기본적인 가치를 서로에게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T 98% 남자와 사는 F 여자는 어떻게 상처받지 않을까? 그건 바로, T와 F보다 중요한 배려와 깊은 이해심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곧 다정함으로 나오고, 그 다정함은 언어와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 힘을 갖는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 많이 방황을 했던 사람이고, 대학원 때 정말 스스로 밑바닥을 본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다른 사람이 인생의 바닥에 있을 때 판단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본인의 최악을 마주한 경험이 있기에, 그만큼의 깊이를 타인에게도 지니고 있어서, 내 입장과 상황, 어려움과 고충을 차분히 따라와 주고, 엄청나게 스위트하거나 거창한 말은 없지만 이미 충분히 토닥임을 얻고 있다고 느껴지게 한다.


요즘은 특히 더 MBTI로 서로를 단정 짓는 게 흔하고 어쩌면 스스로의 미성숙함을 덮어버리는, “나는 원래 이래“ 하며 숨어버리는 도구로 쓰이는 것도 같다. 하지만, 네 글자가 모두 다르더라도, 너도 나와 같은 삶의 전쟁터 속에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이해가 있다면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다정함은 곧 성숙함이라 믿는다. 그 언어 속엔 각자의 전쟁에서 생긴 상처와 파편이 있으므로 그걸 바라봐 준다면, 우리의 다름 속에서도 여전히 온전한 포용이 있을 거라 기대해보고 싶다. 경험으로부터 나온 덤덤한 다정함이 오늘도 가득 차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고 배려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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