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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Oct 03. 2017

쿠스코의 완벽한 하루

잉카박물관, 교회, 12각돌... 낮부터 밤까지 쿠스코를 바쁘게 누비다

쿠스코까지 왔으니 오랜만에 박물관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멀지 않은, 가이드북에 나온 잉카 박물관(Museo Inka)에 입장했다.

박물관 마당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직물을 짜는 사람들이 보인다. 

역시나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였던지 사진이 없다.

영어 설명이나 가이드가 없어서 조금 불편했던 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 나와서, 어느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넓은 옥상 같은 공간이 있고 쿠스코가 내려다 보이길래 멈춰 섰다. 

날씨가 쾌청해서 그런지 뭘 해도 낭만적이고 기분이 들뜬다. 


사진 속 내 표정을 보면 그 날 기분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쿠스코에서 찍은 내 사진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나보다 훨씬 더 자신만만하고, 승리감이나 성취감이 느껴지고, 어떤 옷을 입고 얼마나 꾀죄죄하든 자존감이 넘쳐 보인달까. 

아마 여행 중에는 매일매일이 모험 중이고, 매일 새로운 탐험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시원하게 물을 뿜는 분수. 

오전에 일종의 문화유적패스, 통합 입장권 같은 것을 사 놓았었다. 쿠스코에 있는 몇 개의 역사 깊은 성당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인데, 입장권에 포함된 모든 성당들을 가 보고 싶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니까.

첫 번째로는 San Cristobal 성당부터 먼저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완전히 언덕이다.

계단 좀 봐.

안 그래도 고지대에 위치한 쿠스코인데, 더 높이 올라가려니 꽤 숨이 차고 힘들었다. 

그래도 이 희거나 아이보리색 벽에 돌계단, 빨간 지붕이 어우러진 잉카식 골목이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지붕들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새파란 하늘이 이 예쁜 그림의 화룡점정이다.

날씨가 우중충했다면 이만큼 아름답게 느껴지진 않았겠지.

끝이 보인다! 드디어 보이는 San Cristobal 성당.

성당이 있는 곳 마당까지 올라가니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펼쳐진다. 

아까 갔던 대성당과 아르마스 광장도 보인다. 

언덕을 올라오느라 너무 숨이 차서 성당에 입장하기 전에, 이 마당에 서서 숨을 고르면서 사진부터 찍었다.

내 사진도!


역시나 San Cristobal 성당 역시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아담하지만 여기저기 역사 깊은 장식물이나 성물이 많아서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해서 설명을 듣는 게 좋다.

이대로 구경을 마치고 내려가야하나, 싶어서 아쉽게 돌아서려는데 성당의 관리인 같은 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말을 거셨다.

"Arriba, arriba! Torre! (위에, 위에! 타워!)" 

이 성당에 종탑이 있는데, 종탑에 들어가볼 수 있으니 종탑에 올라갔다 오라는 감사한 안내 말씀이었다.

당연히 올라가 봐야지.


종탑의 위로 올라가는 길. 자그마한 창문으로 쿠스코의 햇빛이 쏟아진다. 

더 올라가니 창문 속에 액자처럼 쿠스코가 담긴다. 

정말 길쭉한 그림엽서 같다. 

종탑 등반 완료!

탑에는 나 혼자였다.

이 멋진 풍경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라마야 혹시 여기 사람이 더 올라오기 전에 우리 실컷 셀카 찍자!

내려가는 길.

내려가는 길에 포착한 보물같은 사진.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쿠스코 여인과,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쿠스코 고양이. 

이 세 인물(?)은 좋겠다. 매일 이렇게 뽀송한 골목길에서 해바라기를 할 수 있다니. 

벌써 몇 번째 만나는 건지! 

아르마스 광장에서 오늘도 열심히 전통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쿠스코의 어린이들. 

광장 근처에서 또 한 번, 전통의상을 입고 새끼 염소를 데리고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그래서 사진을 요청했다.

여인이 안고 있던 새끼 염소는 내가 안고, 내가 안고 있던 라마 인형은 여인더러 안으라고 했더니 깔깔 웃으신다. "우리 둘이 바꾸는 거에요? 깔깔깔!"

그 순박한 웃음이 마음에 들어서 서둘러 사진에 담았다. 덕분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우리 두 사람 다 밝게 웃는 사진을 얻었다.

이 아주머니는 어린 딸을 함께 데리고 있었는데, 딸이 내 라마 인형을 보더니 "갖고 싶다"고 했다. 

인형을 선뜻 줄 수 있었다면 좋을텐데. 내가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아니었다면 이깟 인형쯤이야 아이한테 줄 수 있었을 텐데. "정말 미안해." 라고 말하면서 마음이 좀 아팠다. 

쿠스코에 오면 꼭 봐야 한다는 12각돌(12 angled stone)을 보러 간다. 

쿠스코의 건물들은 사진처럼 잉카인들이 지어놓은 단단하고 견고한 돌이 떠받치고 있는데, 그 돌들이 서로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견고하고 완벽하게 쌓아 올려진 짜임새를 자랑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돌이, <꽃보다 청춘>에도 나왔던, 12각돌이다. 돌의 모서리가 12개나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커다란 바위들이 서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걸 구경하고 감탄하면서 걷는 재미가 있다.

12각돌은 이 중 어디에 있을까요?

드디어 찾았다! 12각돌

12각돌에는 이렇게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12각돌을 가리키며 익살스런 포즈를 짓는 중국인 관광객.

나도 한 장!

내가 가진 종교시설 통합입장권으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성당, Templo de San Blas.

아까 본 San Cristobal보다도 아담한 느낌이지만, 쿠스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스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있는 성당으로 San Blas를 꼽았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돌 사진들을 조금 더 찍었다.

정말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 쌓을 생각을 했지, 싶은 모양새의 돌도 있다. 

살짝 하늘이 어두워졌다. 

쿠스코에는 밤과 낮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사이의 미묘한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만들어낸 핑크빛 저녁 구름.

배가 고파질 때까지 분홍과 금빛이 어우러진 하늘을 구경하다가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은 쿠스코를 떠나 근교의 유적들을 보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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