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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23. 2019

땅따먹기 하나로도 인생을 배울 수 있었던,

흙속에 뒹굴며 자연과 사람을 배웠던 시간들.

어릴 적 '땅따먹기'라는 놀이가 있었다. 남자 동창생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때의 경험을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그때 따 먹은 땅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큰 재벌이 됐을 텐데."


예전에는 길바닥이 다 흙으로 되어 있었고, 집들은 작은 골목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골목 사이사이 좀 넓은 공간이나 공터에는 학교가 파한 어린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았다.


기억나는 놀이가 있다. 땅따먹기다. 넓은 땅에 사각형을 그리고 나면 각자 자기가 앉은자리에서 땅을 넓혀나가기 시작하는 이다.


자기 순서가 되면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작은 돌멩이를 튕긴다. 그러면 그 돌멩이가 날아간 자리에 첫 번째 점을 찍는다.


그 점 두 번째로 튕겨서 돌이 떨어진 지점과 잇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멩이를 튕겨서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 결과 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사각형이  땅이 된다.


이때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힘 조절이 필요하다. 처음 돌멩이를 튕길 때 너무 멀리 가면 안 된다. 이는 두 번째 튕길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이다. 결국 세 번째 문제가 된다.


두 번째 돌멩이가 너무 멀리 가면 홈그라운드 복귀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놀이를 잘하려면 시야 넓어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 면적을 확대할지가 중요하다. 옆의 선수가 자기 땅을 길막(길을 막는 행위)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아야 하므로.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도 있는데, 자기 땅이 모두 맹지(사방이 막혀서 길이 없는 땅)가 되어버리는 경우다. 주변 친구들이 자기 땅을 가로막아 버리면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시야를 확보하고 방향을 잘 잡으면서 땅을 넓혀야 한다.


남의 땅을 길 막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상습적이다. 열심히 일하기는 귀찮고 하니 옆집 땅에 말뚝이나 박아보자는 심산이다. 그런 친구들은 인간관계가 별로 좋지 못했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손가락 힘이 좋아서 돌멩이 멀리 나가지만 실처럼 얇은  갖는 아이다. 또 마지막 돌멩이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다른 데로 튕겨나가면 고생한 보람 없이 빈털터리가 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악의 경우는 처음부터 손가락이 빗맞는 경우다. 이 때는 땅이고 뭐고 체면이 말이 아니다. 헛스윙만 남발하니 친구들이 아예 '선수 교체'를 들먹인다. 판의 흥행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슬프게도 내가 마지막 경우였다. 나는 눈과 손가락 신경들이 자기주장이 강했다. 늘 돌멩이를 빗맞곤 했고, 어쩌다 맞아도 코앞에 떨어다.


가장 잘하는 아이는 운동신경도 좋고 손가락 힘도 좋으며 시야도 넓고 장단기 계획을 세워 경기에 임한다. 즉 첫 번 째 돌을 튕길 때부터 넓은 땅을 향해 적당한 각도를 구상하면서 튕긴다.


사실 이 놀이판에서는 두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첫 번째 돌이 날아간 곳과 잘 연결되어야 하고, 세 번째 돌이 들어오기 좋은 동선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첫 번째 돌멩이부터 똥폼을 잡고 멀리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초보다.


그런 아이들은 무조건 멀리 나가면 좋은 줄 안다. 이때 노련한 승부사들이 있다. 초짜의 허영심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야. 대단한 걸? 어떻게 돌을 그렇게 멀리 보내냐? 꼭 육백만 불 사나이 팔 같다.(그 당시 육백만 불 사나이가 유행이었다.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고 그 부분을 로봇으로 대체해서 괴력을 발휘했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에게 영웅이었다.)"


그러면 초짜는 더욱 우쭐해져서 두 번째는 더 멀리 보낸다. 이때 멀리만 가면 좋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쓸모없이 좁고 긴 도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 더 큰 문제다.


마지막 돌멩이가 홈으로 무사히 들어가면 그나마 좁고 긴 땅이라도 갖지만, 무리하게 집을 떠난 결과 복귀조차 못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비련의 주인공은 속으로 말한다.

'아씨. 너무 멀리 왔어.'


멀리만 가면 좋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초짜들의 설익은 욕심은 늘 화를 불렀다. 야바위꾼들이 보내는 환호에 으쓱해서다.


멀리 보내기만 하면 절대로 도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는 꼭 기하학이나 도형학 같은 걸 안 배워도 몸으로 알 수 있는 산지식이었다.


곁에서 응원하던 아이들 눈에는 이런 꼼수가 다 보인다. 단 구경을 할 때에 한해서다. 직접 참여하면 달라진다. 눈앞의 이익에 취해서 전체 그림을 못 본다. 곁에서 하는 박수나 환호가 이내 야속해지는 순간이 온다.

'나랑 친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땅이 안 되는 줄 알면서좋아해 주는 척을 했을까?' 하면서.


동네마다 놀이 전문가가 있었다. 그 아이들은 뭐든 척척박사였다. 땅따먹기를 해도 다 따 먹었고,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해도 판을 싹쓸이해버렸다. 그 아이는 재벌 부럽지 않았다. 당시엔 중고 구슬이나 딱지를 돈으로 사고팔았기 때문이다.


잘하는 아이는 그 동네에 있는 딱지나 구슬을 다 접수하고 나면, 여전히 배고프다는 식으로 옆 동네까지 원정을 갔다.


그 아이들은 그렇게 해서 집안에 산더미처럼 전리품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딱지나 구슬을 신품으로 살 때보다 가격을 다운시켜서 팔기도 하고, 먹을 것이나 다른 것들로 물물 교환하면서 부를 확장해 갔다.


그 아이들에게 갖다 바치기 위해 어마어마한 용돈을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붙었다 하면 빼앗기는 게 뻔한데도.


컴퓨터 게임이나 장난감이 없던 그 시절 놀이판의 추억이다. 주로 자연에서 얻은 흙과 돌멩이, 나뭇가지만으로도 우린 참 잘도 놀았다. 수학적 원리나 사회성을 깨우치는 데에도 그만한 교육이 없었다.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놀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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